61년 전 김일성-마오쩌둥 선 곳서
시진핑 옆에 푸틴과 나란히 자리
北 최룡해는 오른쪽 끝편에
한미일 vs 북중러 기존 구도 붕괴
동북아 외교전 새판 짜기 예고
美中 균형외교 본게임 이제부터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성루에 선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은 덤덤해 보였다. 황금색 재킷을 입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선 장면에서는 1992년 수교 이후 가장 돈독한 한중관계와 동북아 역내 위상의 변화가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중국이 전세계, 특히 미국을 향해 ‘군사 굴기’를 과시하는 행사에 미국의 동맹국 정상 가운에 유일하게 참석했다는 점을 의식한 탓인지 행사 내내 박 대통령은 신중한 표정을 유지했다.
한중러 정상이 나란히 선 성루외교
박 대통령은 3일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톈안먼 성루의 한가운데에 나란히 앉아 1시간 30분간 진행된 중국의 ‘항일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를 지켜 봤다. 500여 종이 넘는 신무기와 함께 중국 핵심 병력 1만2,000여명이 동원된 군사 퍼레이드에 우리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성루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푸틴 대통령과 함께 각기 시 주석의 왼편과 오른편에 위치해 돈독한 한중관계를 과시했다.
박 대통령의 자리는 중국의 혈맹이라는 북한 대표와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졌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대신해 참석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자리는 박 대통령이 앉은 맨 앞줄의 오른쪽 끝이었다. 더구나 이 성루에서 1954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마오쩌둥(毛澤東) 국가주석이 나란히 서서 중국 건국 5주년 기념 열병식을 참관하며 ‘항미원조(抗米援朝)’ 혈맹을 과시했던 역사를 감안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이날 성루외교로 ‘역대 최고의 한중 우호관계’구축에 사실상 화룡정점을 찍었다. 이로써 한중관계의 질적인 도약은 변화된 북중관계와 특별히 대비됐다. 워싱턴포스트는 2일자에서 “중국의 열병식에는 시 주석의 진정한 친구가 옆에 서게 되는데,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이 아니라 한국의 박 대통령”이라며 “이런 모양새가 북한과 중국이 얼마나 냉랭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성루외교는 동북아 지역에 신질서 태동을 알리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우리의 전통적인 동맹국 정상이 참석하지 않는 행사에 박 대통령이 사회주의의 이념적 전통을 지닌 중국, 러시아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점을 근거로 일부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깨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마저 제기하고 있다.
동북아 신질서에 미중 균형외교 난제
박 대통령은 이번 방중을 통해 중국의 협조로 북한의 도발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판을 확보했다.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을 계기로 동북아 신질서 재편을 주도하고 중국을 지렛대 삼아 군사대국화를 시도하는 일본을 견제하는 성과도 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방중을 통해 양국이 그 어느 때보다도 미래지향적, 발전적 관계로 우호 협력을 증진시켰다"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를 공고히 하는 큰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국면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선 북핵 문제의 실질적 해법을 찾는 문제가 남아 있다. 북핵 관련 6자 회담 재개 조건에 대한 미중의 입장 차가 큰 상황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본게임은 10월1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박 대통령의 이번 중국 방문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ㆍ중국 사이에서의 어려운 외교 환경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까지 남은 40여일 간 ‘중국 경도론’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북한 문제에 대한 미중 간 입장 차를 좁혀 한반도 평화통일과 비핵화 등을 위한 미중의 공조를 전략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미국이 10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 정리를 요구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10월말 또는 11월초 열릴 가능성이 큰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베이징=최문선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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