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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앤더슨 공군기지

입력
2017.08.1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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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평시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웠던 지리적 스케일로 펼쳐지기도 한다. 태평양전쟁을 촉발한 일제의 진주만 공격 역시 그랬다. 1941년 8월 마침내 미국 등이 일본에 대한 석유금수조치를 선언하자 일제 군부는 ‘제국국책수행요령’ 등을 통해 본격적인 미국과의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무력 발동’ 시기를 12월 초로 특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대다수 일반인들은 전쟁은 물론이고, 태평양의 낙원이라 불려온 섬 하와이가 최초의 전쟁 무대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 하지만 일제에 진주만은 필연적인 공격목표였다. 우선 일제는 단기전 후 협상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미국 본토나 민간인에 대한 공격보다는 핵심 군사기지만 타격하는 게 옳았다. 따라서 미국 본토 서해안에 있다가 전진 배치된 진주만의 태평양함대야말로 최적의 공격 포인트였던 셈이다. 태평양함대는 일본의 동남아 항로를 견제해 온 눈엣가시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미국을 향한 일제의 첫 공격은 1941년 12월 7일 일본에서 무려 3,500 마일이나 떨어진 태평양의 섬 하와이에서 이루어졌다.

▦ 일제는 진주만 공격과 함께 미국의 또 다른 동남아 항로 전진기지인 괌섬을 공격해 점령하고 이름을 ‘다이큐도’로 바꾼다. 괌의 전략적 중요성을 확인한 사건이기도 했다. 괌은 이후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미국에 탈환됐으며, 도쿄를 향한 B-29 폭격기의 발진기지로 쓰였다. 그리고 당시 기지를 이끌던 로이 앤더슨 준장의 이름을 딴 ‘앤더슨 공군기지’가 건설됐다. 종전 후 앤더슨 공군기지는 6ㆍ25 전쟁 때 항공기와 전쟁물자 수송기지로 역할했고, 베트남 전쟁 때는 B-52 폭격기의 발진기지가 됐다.

▦ 괌은 그동안 우리에게 사이판과 종종 한 묶음으로 얘기되는 피서지 정도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지리적 아득함과 달리, 그곳 앤더슨 공군기지는 여전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의 운명을 쥐고 있는 미군기지다. 미공군 태평양사령부 산하 제36비행단이 배치돼 있으며, 한반도 돌발사태 시 대북 선제공격의 핵심기지로 꼽히고 있다. 최근 한반도 상공에 자주 전개되는 ‘죽음의 백조’, 곧 장거리 전략 폭격기 B-1B의 발진기지이기도 하다. “괌을 포위 사격하겠다”는 북한의 최근 도발이 존망을 가르는 엄연한 전쟁의 지리학을 새삼 일깨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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