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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레 상처 주고 분노 부르는 ‘위안부 위로금 1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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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레 상처 주고 분노 부르는 ‘위안부 위로금 1억’

입력
2017.01.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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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할머니 고개 끄덕이게 해 수령

입금 직후 양손녀에게 빠져나가거나

뒤늦게 재단에 반환 의사 밝히기도

위안부 피해자 B할머니 통장. 나눔의 집 제공
위안부 피해자 B할머니 통장. 나눔의 집 제공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A할머니는 17세에 중국으로 끌려가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현재 경기도 한 요양시설에 있다. 알츠하이머(치매) 증세에 중풍 등으로 반신불수 상태다. 그런 할머니는 ‘화해ㆍ치유재단’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 위로금을 수령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직접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안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해온 한 인사는 “할머니를 돌보는 지인 김모씨가 재단 관계자들이 방문할 것을 대비해 위로금 수령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도록 가르쳤다”고 증언했다. 위로금도 김씨가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를 중국에서 모셔오는 역할을 한 김씨는 “중국에 있는 할머니 양자를 대신해 통장을 내가 관리하고 있을 뿐”이라며 ‘고개 끄덕임을 가르쳤느냐’는 질문엔 답을 거부했다.

#. 위안부 피해자 B할머니는 지난해 10월21일과 11월18일 각각 2,000만원과 8,000만원의 위로금을 재단에서 받았다. 하지만 입금된 돈은 당일과 사흘 뒤 각각 빠져 나가고 할머니 통장에는 2만1,681원만 남았다. 돈을 인출한 사람은 B할머니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양손녀였다. 정부가 별도로 매월 지급하는 지원금 126만원도 고스란히 양손녀에게 빠져나갔다. 양손녀는 다른 지역에 살고 있으며 두세 달에 한번 정도 할머니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손녀 측은 “할머니가 돈이 필요 없으니 모두 쓰라고 했다“는 입장이다.

22일 나눔의 집을 비롯한 시민단체ㆍ시민활동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른 일본측 위로금이 본인 동의가 없고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할머니들에게까지 무리하게 지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지원금들은 정작 할머니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쓰이지 않고 있다는 증언이 속속 나온다.

재단은 2015년 12ㆍ28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생존 피해자 할머니 46명에게 1억원, 사망 피해자 유족 등에게는 2,00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개별 피해자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46명의 당시 생존자 가운데 31명에게 지급을 완료했고, 3명은 지급 절차가 진행 중이다. 12명은 지급에 동의하지 않거나, 설명 중인 상태다.

허광무 화해ㆍ치유재단 사무처장은 “어르신들을 일일이 만나 뵙고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지난 한 해 동안 총 4차례나 거쳤다”며 “신청서 작성 시엔 가족이 동석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재단은 현재 신청서 작성을 위해 자택을 방문할 땐 각 지자체에서 할머니를 담당하던 공무원과 가족, 혹은 간병인 등과 동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눔의 집에 따르면 충북에 사는 C할머니의 경우 지난해 말 가족이 동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단 관계자들이 찾아와 위로금 수령에 동의했다. C할머니는 최근 양아들의 손을 잡고 나눔의 집을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내가 그땐 정신이 없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일본의 돈은 받을 수 없다’며 거부하며 싸우고 있는) 할머니들한테 미안하다”며 연거푸 사과했다. 당시 감기 등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할머니가 얼떨결에 위로금을 받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크게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김복득(99) 할머니의 경우, 김 할머니가 치매 증세를 앓고 있고 본인의 동의가 없었는데도 조카 부부가 돈을 받았다고 통영거제시민모임이 폭로했다. 이 단체 송도자 대표는 “할머니가 울면서 또렷하고, 단호하게 재단에 돈을 돌려주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당시 김 할머니가 동의할 때 조카가 곁에 있었다”며 “동의를 강요했다는 것은 시민단체들의 억측”이라고 반박했다.

무리한 일본 위로금 지급 추진과정에서 피해 할머니들과 가족들은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D할머니의 아들은 “어머니가 위안부라는 것을 알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셨는데도 정부가 막무가내로 위로금 지급 설명에 나섰다“고 했다.

특히 재단 측이 지난해 11월 할머니들에게 보낸 위로금 ‘지급결정 동의 및 지급청구서’ 안내 예시 문서에는 ‘대필이 가능하며, 서명 대신 도장을 찍어도 된다’고 붉은 글씨로 설명돼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위로금을 수령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은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대필을 하는 경우 청구서에 어떻게 동의 받았는지 대필자가 적도록 하거나 동의 증언 녹취록을 첨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이사회에서 지급 결정이 통과된 사람들에게 보내는 문서이고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신청인들에게 의사확인을 거쳤다”고 말했다.

1억원의 위로금이 정작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재단이 사후관리도 안하고 위로금 지급에만 바빠 상처를 치유하기보다 상처를 주는 꼴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위로금 지급 외에 추모 사업과 명예회복 등의 사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지난해 11월 화해ㆍ치유재단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집에 우편으로 보낸 지급결정 동의 및 지급 청구서 예시 샘플. 나눔의 집 제공
지난해 11월 화해ㆍ치유재단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집에 우편으로 보낸 지급결정 동의 및 지급 청구서 예시 샘플. 나눔의 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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