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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시진핑 대신 트럼프 택한 김정은

입력
2018.03.14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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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제서야 차를 돌리라고?”

지난 2013년 5월24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베이징을 찾은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지 못한 채 귀국 비행기를 타려다 막판에야 이러한 전화를 받았다. 더구나 시 주석을 만나러 간 최 특사에게 중국측은 군복을 벗고 ‘알현’할 것을 요구했다. 할 수 없이 최 특사는 옷을 갈아 입은 뒤 이른 시일 안에 만나길 바란다는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의 제안을 묵살했다. 최 특사는 물론 김 위원장에게도 지우기 힘든 수모였다. 지난해 11월 시 주석의 특사로 평양을 찾은 쑹타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장관)이 결국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치욕과 무관하지 않다. 북중 정상회담은 지금까지 성사되지 않고 있다.

한 때 혈맹이던 북중 관계가 더 이상 악화하기 힘들 정도로 추락했다는 것은 외교가의 상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돌파구는 우리나라와 미국일 수밖에 없다.

사실 미국과 중국은 지금 전 세계 패권을 놓고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점점 옛 제국 시절로 돌아가려 하는 중국을 미국도 계속 방관할 순 없다. 이러한 미중 간 충돌이 남중국해의 인공섬 건설과 항행의 자유 갈등, 한반도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힘겨루기 등으로 표출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김 위원장의 파격 행보는 이러한 미중 대결의 큰 그림 속에서 북한이 중국 대신 미국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북미 정상회담 자체가 사상 최초지만,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북중 보다 북미 정상회담을 먼저 진행하는 것도 김일성ㆍ김정일 시대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에 위기 의식이 가장 큰 곳은 중국이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12일 중국에서 시 주석은 물론 양제츠 국무위원과 왕이 외교부장을 잇따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북미 정상회담 추진에 대해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귀띔도 받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가장 반색하는 곳은 미국이다. 그 동안 중국에 가장 가까웠던 북한이 중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돌아설 경우 오랫동안 공들인 미국의 아시아 복귀 정책 중 가장 큰 성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 중국의 남쪽인 인도차이나 반도의 미얀마와 베트남에 이어 중국의 동쪽인 한반도의 북한에서도 전통적인 중국의 힘을 줄이고 미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면 중국을 사실상 봉쇄할 수 있고 G2 대결에서 쐐기를 박을 수도 있다.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외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며 황제 대관식을 준비중인 시 주석의 한 판 승부도 판가름이 난다.

최근 남북 관계의 급변은 이처럼 한반도에 국한해서 볼 게 아니라 미중 간의 세기적 대결이란 큰 시야에서 문맥을 파악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우리도 이런 구도 아래 북한은 물론 미중을 상대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아쉬워진 중국에게 이젠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사드를 빌미로 옹졸하게 경제 보복을 지속할 경우 중국은 어디서도 친구를 얻지 못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중국에서 이례적 환대를 받았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경제적 실익부터 챙겨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를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 될 수도 있는 북미 정상회담 추진을 가능하게 한 우리에게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북핵의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다. 미국은 잠재적 피해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조건 없는 회담 분위기를 이끌어 낸 대가를 미국에게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근거 없는 환상이나 섣부른 기대에 취하기 보다 국가적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저성장과 양극화, 고질적인 청년 실업난에 찌든 한국 경제에도 이젠 봄이 와야 하지 않겠는가. 박일근 경제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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