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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8할은] 책의 부활 보며 소설을 다시 쓰고 싶어졌다

입력
2017.07.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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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에선 전 직장 월급의 절반만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을 하며 돈도 벌 수 있었으니까. 한국일보 자료사진
'출판저널'에선 전 직장 월급의 절반만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을 하며 돈도 벌 수 있었으니까. 한국일보 자료사진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책 두 권을 출판한 20대 후반의, 말하자면 풋내기였다. 풋내기에겐 모자라는 게 많다. 당연히 생각도 짧아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 그래서 두 번째 소설이 나온 뒤, 이제 그만 써도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떻게 된 일인지 글 쓰는 일에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간, 나는 주로 나이 먹는 일에만 몰두했다.

더 늦기 전에 여기저기 원서를 내고 입사시험을 쳤다. 주로 잡지사가 대상이었다. 면접도 여러 번 봤다. 그러다가 한 여성지에 기자로 취직하게 됐다. 거기서는 기쁨도 슬픔도 없이 글 쓰는 법을 배웠다. 폴 오스터는 생계를 위한 글쓰기를 빵 굽는 타자기에 비유했는데, 내게는 그게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였다. 기자의 글쓰기에는 감정만 없었을 뿐 아니라 낭만도 없었다. 바로 그 점이 내 마음에 들었다. 감정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는 글쓰기라니.

거기까지 배운 뒤, 다른 잡지사로 이직했다. 월급은 전 직장의 반밖에 주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긴 중앙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죽치고 앉아 있던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읽어온 출판전문지 출판저널이었으니까. 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은 책을 읽는 일이고, 세 번째로 좋아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다. 물론 가장 좋아하는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다. 그래서 돈을 벌어 가장 좋아하는 그 일을 하려고 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돈을 벌게 된 셈이었다. 출판저널은 서울 삼청동 초입에 위치한 출판문화회관 2층에 있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출판계는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었다. 그럼에도 신간은 쏟아져 나왔다. 매주 두 차례 여산통신(언론사 등에 신간을 배포하는 전문업체)에서 끈으로 묶은 신간들을 들고 와 편집장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신간이 든 각 출판사 봉투들을 개봉할 수 있는 자격은 편집장에게만 있었다. 내가 내 인생에서 어떤 지위를 탐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봉투를 모두 개봉하고 나면 편집장은 중요한 신간 몇 권을 따로 챙긴 뒤, 나머지는 다음호 제작을 위해 책상 옆 서가에 꽂았다. 기자들은 그 서가를 훑어보며 기획안을 작성했다.

편집부도 조직이니 엄연히 서열이 있다. 거기의 서열은 담당 분야로 나뉜다. 인문과 역사가 노른자위다. 동서고금의 명저가 바로 거기에 속했다. 서평을 청탁하려면 학계 사정에 밝아야만 하기 때문에 신입 기자는 애당초 그 분야를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에 버금가는 게 소설과 시다. 스타들이 있는 분야라 비유컨대 연예부에 가까워 인터뷰든 리뷰든 기사가 화려하고 돋보이니 선배들 차지다. 기자들이 한창 애들을 키울 때였던지라 아이들 책도 인기가 많았다. 반면에 경제, 경영, 실용, 자기계발, 에세이 등은 별 인기가 없었다. 바로 그게 내 담당이었다.

날마다 읽고 날마다 쓰는 그곳에서 육신이 죽듯 죽어간 책의 무덤을 보았다. ‘왜 어떤 책은 육신이 부활하듯, 다시 태어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소설가란 사실을 알고부터 글쓰기가 삶보다 더 흥미진진해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날마다 읽고 날마다 쓰는 그곳에서 육신이 죽듯 죽어간 책의 무덤을 보았다. ‘왜 어떤 책은 육신이 부활하듯, 다시 태어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소설가란 사실을 알고부터 글쓰기가 삶보다 더 흥미진진해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몇 주가 지나 새 잡지가 나오면 신간 서가는 말끔히 비워졌다. 더 이상 기획안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책들은 회의실 옆의 좀 더 큰 서가로 옮겨졌다. 하지만 서가에는 이미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기 때문에 결국 바닥에 쌓아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후에 기자들은 필요에 따라, 혹은 새로 관심이 생겨 거기 쌓인 책 더미에서 책을 뽑아갔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나 연말이 되면, 거기 남은 책들을 모모한 도서관들에 기증하곤 했다.

이따금 야근이 끝나 사무실의 불을 끌 때가 있다. 안쪽부터 불을 꺼나가다가 어둠 속에 쌓인 책들을 볼 때면 왠지 무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책들의 무덤. 글쓰기의 낭만 같은 건 더 이상 믿지 않게 됐다고 앞에서 말했거니와 그렇게 나는 책들의 무덤이라는 현실도 깨닫게 됐다. 그 현실 앞에서 나는 병들어 죽는 인간을 처음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싯다르타처럼 세상에 죽지 않는 책은 없는 것인가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됐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싯다르타의 결론과 마찬가지다. 누구도 죽지 않은 집의 겨자씨는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것. 세상의 모든 책도 마찬가지다. 모든 육신이 죽듯이 모든 형태의 책도 죽는다.

그런데 육신이 죽은 뒤, 어떤 영혼은 새로운 몸을 얻어 다시 태어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나는 신과 구원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어둠 속 책들의 무덤을 바라보던 내 마음속에서 그런 믿음이 생겨났다. 물질적으로 봤을 때 모든 책은 죽는다. 간혹 몇 백 년의 세월을 이기고 보존되는 책이 있긴 하지만, 그건 미라처럼 예외에 속한다. 대신 어떤 책들은 물질적으로 죽은 뒤에도 새로운 형태로 계속 출판된다. 마치 새로운 몸을 얻은 영혼처럼. 그러니 인간의 신은 믿지 못하더라도 책의 신은 믿을 수밖에.

사무실의 불을 모두 끄고 계단을 내려가는 나의 마음속으로는 이제 오롯한 한 가지 의문만 남았다. 대부분의 책은 모두 사라지는데, 왜 어떤 책은 다시 태어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사람은 기자인 내가 아니라 소설가인 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글쓰기는 나의 삶보다 더 흥미진진해졌다.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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