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혜정 기자

등록 : 2017.07.22 08:00
수정 : 2017.07.23 15:44

[인물 360˚] 린킨파크의 심장이 멈췄다…체스터 베닝턴

등록 : 2017.07.22 08:00
수정 : 2017.07.23 15:44

록그룹 린킨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지난달 독일 노이하우젠에서 열린 ‘사우스사이드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며 팬들과 손을 잡고 있다. 린킨파크 공식 페이스북.

21일 트위터 등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엔 ‘편히 쉬어요 체스터 베닝턴’ 이란 추모의 메시지가 끊이지 않았다( #RIPChesterBennington ). 20일(현지시간) 41세의 나이로 사망한 세계적인 미국 록밴드 린킨파크(Linkin Park)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을 향한 전세계 팬들의 애도였다.

로스엔젤레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그의 사인은 자살로 추정된다. 베닝턴의 사망 4시간 전 공개된 신곡 ‘토킹투마이셀프(Talking to Myself)’의 뮤직비디오에는 그의 생전 공연 모습이 담겨 팬들의 마음을 더욱 울리고 있다.

[린킨파크의 7집 앨범 ‘원모어라이트(One More light)’의 신곡 ‘토킹투마이셀프(Talking To Myself)’의 뮤직비디오]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은 목소리

린킨파크는 ‘흑역사’가 없는 밴드다. 지난 2000년 데뷔앨범 ‘하이브리드띠어리(Hybrid Theory)’가 발표되자마자, 스타덤에 올랐기 때문이다. 음반은 발매 첫 해에 2,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이후 발매된 음반들까지 합하면 전 세계에서 팔린 이들의 앨범은 6,000만장이 넘는다. 2002년 발매한 두 번째 앨범 ‘메테오라(Meteora)’에 수록된 곡 ‘페인트(Faint)’는 이 밴드의 대표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데뷔 이후 18년 동안 이들은 2번의 그래미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수상하면서 음악성도 인정받았다. 또한 2009년 독일 작곡가 한스 짐머와 함께 영화 ‘트랜스포머’의 배경음악을 제작하는 등 활발한 창작 활동까지 이어왔다.

한국에서도 이들의 인기는 상당했다. 2003년 열린 첫 내한공연에는 1만명이 넘는 관중들이 몰렸다. 데뷔 3년 차 해외 밴드의 인기가 베테랑 팝스타 못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장성진(31)씨는 “콘서트에 가고 싶어서 참고서 살 돈도 안 쓰고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 다니며 돈을 모았었는데 예매 경쟁이 치열해 결국 실패했었다”고 회상했다. 그 이후 두 차례 이어진 린킨파크의 내한공연 역시 매번 매진이었다.

[린킨파크 2집 수록곡 ‘페인트(Faint)’의 뮤직비디오]

린킨파크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출생한 소위 ‘밀레니얼 세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유의 실험적인 음악도 매력 요소였지만, 인간이 겪는 좌절과 절망 등 내면 심리를 다룬 가사들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빼앗았다. ‘나는 노력했고/많이 나아갔어/하지만 결국/다 소용없었지(1집 인디엔드ㆍIn the end)’, ‘너무 지쳐서/이제 난 눈을 떴어/이제 난 바뀌어/내가 원하는건/너와 달라지고 나다워지는거야(2집 넘ㆍNumb)’. 김희진(31ㆍ가명)씨는 “린킨파크의 가사는 대체로 어두웠지만 듣다 보면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하는 묘한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가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베닝턴의 목소리였다. 절규하는 것처럼 내지르는 그의 강력한 음색은 밴드의 핵심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의 음악을 들어왔다는 신동현(27ㆍ가명)씨는 “베닝턴이 없는 린킨파크는 프레디 머큐리가 없는 퀸과 같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전설적인 록밴드 퀸(Queen)이 천재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사망 이후 힘을 잃은 것처럼, 린킨파크의 역시 음악의 핵심을 잃었다는 얘기였다.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했지만…

베닝턴의 목소리에서 전해온 진정성은 그의 불우한 유년시절에서 비롯됐다는 평이 많다. 1976년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부터 주변 남성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어린 베닝턴은 도움을 청하지도, 이 사실을 알리지도 못했다. “사람들이 나를 동성애자로 보거나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는 게 싫다”는 이유였다. 11살 때 그의 부모가 이혼하면서 베닝턴은 더 조용한 아이가 됐다. 그의 아버지는 아동 성 학대 사건을 다루는 경찰이었지만, 그를 돕긴커녕 때때로 감금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베닝턴은 청소년 시절 마약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유년기를 이겨내려 했다. 2011년 인터뷰에서 그는 마약 중독은 물론 한때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뎌내기 위해 마시던 술도 끊었다며 “나는 멀쩡한 정신으로 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음악 역시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인생의 아픔과 절망에 대한 가사는 그가 작곡 중에 ‘끊임없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생각한’ 결과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당신을 다치게 하려는 사람을 겁내면 안 됩니다. 삶을 두려워하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된 인생에서 나온 통찰이었다.

그러나 모든 아픔을 씻어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2006년 두 번째 부인 탈린다 벤틀리와 결혼한 뒤 자녀들을 키우며 안정을 찾는 듯 했지만 그는 계속 내면의 고통에 시달렸다. 지난 5월 그의 절친한 친구인 가수 크리스 코넬이 스스로 세상을 뜬 뒤로, 그는 극심한 우울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린킨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지난달 독일 노이하우센에서 열린 ‘사우스사이드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린킨파크 공식 페이스북.

‘당신의 목소리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린킨파크는 일주일 뒤인 27일부터 콘서트를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베닝턴의 사망으로 공연을 모두 취소했다. 밴드 멤버인 마이크 시노다는 그의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충격적이고 가슴이 무너지지만, (베닝턴의 죽음은)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팬들과 팝스타들은 ‘베닝턴의 목소리를 잊지 않겠다’ ‘좋은 음악을 남겨주어서 고맙다’며 추모를 이어가고 있다. 린킨파크의 내한공연을 기대하던 한국 팬들 역시 깊은 슬픔에 빠졌다. 베닝턴은 생전에 ‘우리 팬들은 세계 최고의 팬이자 우리가 음악을 하는 이유’라고 말하곤 했다.

27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린킨파크의 ‘원모어라이트’ 콘서트 대표 포스터. 린킨파크 공식페이스북.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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