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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종교 박물관… 이슬람 문화유적의 도시 뉴델리에 뿌리내린 힌두 박띠 성자들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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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종교 박물관… 이슬람 문화유적의 도시 뉴델리에 뿌리내린 힌두 박띠 성자들의 사원

입력
2016.04.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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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악샤르담사원: ‘박띠’가 상품이 된 테마 파크

김우조/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교수

세계에서 홀로 7% 이상 경제성장을 하는 IT강국 인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문화의 다양성이다. 종교가 대표적이다. 인도가 힌두교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인도에는 자생종교로 힌두교, 시크교, 자이나교, 불교 그리고 외래종교로 이슬람교, 기독교, 배화교, 유태교 등이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 성지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교 관련 많은 문화 유산과 볼거리가 인도 전역에 산재해 있어 전 인도가 하나의 종교박물관과 같다. 남부 인도에 힌두 문화 유산이 주로 있다면 북부 인도에는 이슬람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가 인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된 것은 이슬람 통치가 시작된 12세기 말 또는 13세기 초 이후이다. 아프간ㆍ터키 계통의 델리 술탄들과 무갈제국의 황제들이 500여년 동안 뉴델리의 야무나(Yamuna)강을 따라 수도를 건설하고 성, 궁, 이슬람 사원, 첨탑, 묘궁, 정원 등을 건설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꾸뚭(Qutub) 첨탑, 휴마윤(Humayun)의 묘궁, 붉은 성(Red Fort) 등 뉴델리의 주요 관광지가 모두 이슬람문화 유적이다.

그러다 보니 수도 뉴델리에는 힌두 문화 관련 유적이나 볼거리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유일한 힌두 문화 관련 관광지는 인도 재벌 비를라(Birla)가문이 1933~39년 건립한 비를라사원이다. 실제 뉴델리에 유명한 힌두 사원이 없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건설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인도 뉴델리를 방문하면 지인들이 악샤르담(Akshardham)사원에 한 번 가보라고 권했다.

신이 된 박띠 성자에게 봉헌된 사원

인도 지인들이 시간을 잘 맞추어 가야 전시도 보고 배도 탈 수 있다고 말해 주었기 때문에 먼저 전시를 보고 ‘뱃놀이’를 했다. 홀오브밸류(Hall of Values)라는 건물에서 스와미나라얀(Swaminarayan, 1781~1830)의 생애의 주요 사건들을 오디오 애니메트로닉 시스템으로 생생하게 보여준 ‘사하자난다(스와미나라얀의 다른 이름) 보기’(Sahajaanand Darshan)를 경험하고 이어 아이맥스 극장에서 11세의 어린 요가수행가 ‘닐깐트’가 7년 동안 고행한 이후 성자 스와미나라얀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 ‘닐깐트의 순례(Neelkanth Yatra)’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어 인도 지인들이 자랑하던 ‘문화 뱃놀이(Sanskritik Nauka Vihar)’를 할 수 있다. 14분 동안 배를 타고 실내 운하 양 옆으로 재현해 놓은 베다시대 고대 인도인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에 중세 박띠 성자들의 상도 있었다. 최첨단 기술과 결합하여 시청각적으로 90분 동안 반복해 보여준 스와미나라얀의 생애를 접하면서 인도인에게 그가 이미 신이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악샤르담사원은 신이 된 구자라뜨(Gujrat)지역 박띠 성자 스와미나라얀에게 봉헌된 사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문자센터로 들어가는 입구의 이름은 ‘박띠의 문(Bhakti Dwar)’이다. 박띠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띠는 신에 대한 절대적이고 철저한 사랑을 의미하는 힌두교 관념이다. 중세 인도에서 박띠를 핵심으로 하는 종교ㆍ사회 운동이 범인도적으로 성행했다. 신과 하나되는 해탈을 위해 신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종교적인 감정이 중시되면서 정통 힌두교 체제 안에서 해탈이 가능하지 않았던 슈드라(Shudra), 여성 등에게도 해탈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중세에 위대한 박띠 성자들은 ‘오직 사랑’을 강조하면서 신상숭배, 의례, 신전, 카스트제도와 같은 모든 종류의 종교적ㆍ사회적 구습과 가식, 차별과 불평등을 반대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대한 박띠 성자의 추종자들이 중심이 되어 종단의 조직과 분열이 거듭되며 수많은 종단이 생겼다. 박띠에 근거한 본래 정신은 상실되고 박띠 성자들이 증오하던 속박과 구습이 성행하게 되었으며 박띠 성자들은 추종자들에 의해 신이 되었다. 스와미나라얀의 생애에 관한 전시를 통해서 알게 되는 사실은 말기 박띠 성자들은 스스로 신격화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원 건설 과정 자체가 완전한 박띠

0.4km²의 거대한 면적에 웅장한 사원과 문화 단지가 3,0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와 7,000여 명의 장인(匠人), 기술자들에 의해 5년 만에 건설됐다는 점도 경이롭다. 인도에서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단체는 ‘BAPS(Bochasanwasi Shri Akshar Purushottam Swaminarayan Sanstha)이다. 이 조직은 18~19세기에 스와미나라얀 종단의 한 분파이다. 스와미나라얀은 북부 인도 차빠이야(Chhapaiya)에서 태어난 뒤 구자라뜨에서 정착했다. 그의 신념은 완전한 박띠를 통해 해탈하는 것이었다. 그는 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절정을 사원 건설이라고 했고 생전에 구자라뜨에 사원 6개를 건설했다. 또한 그는 1830년 사망하기 전 자신과 자신의 후계자(Acharyas)가 세운 신상, 그를 잇는 후계자, 그가 입문시킨 성자 그리고 경전을 통해 스와미나라얀 종단에 머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결국 이 종단에서는 초기 박띠 성자들이 반대했던 신전, 신상을 통한 박띠를 주장하고 있다.

스와미나라얀 종단의 추종자들이 1907년 BAPS를 조직했다. 이들도 사원 건설을 중시하고 생명을 불어넣은 의식을 행하면 신들은 신상에 머문다고 가르쳤다. 이 분파는 스와미나라얀 외에 당대 자신의 영적 지도자를 중시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스와미나라얀이 악샤르(스와미나라얀의 주요 헌신자)의 형태와 자신의 거처에 현재(顯在)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믿는다. 악샤르담은 악샤르(스와미나라얀의 주요 헌신자)와 담(스와미나라얀의 거처)의 합성어로 그들의 믿음을 드러낸 것이다. BAPS의 이름을 구성하고 있는 ‘뿌루쇼땀(Purushottam)’은 스와미나라얀을 의미한다. 악샤르와 하나가 되어야 스와미나라얀에게 순수하게 예배할 수 있다고 하며 악샤르 전통은 현재 스승이며 지도자에게 이어져 온다. ‘악샤르담 스마라끄’의 중앙에는 3.35m 높이의 거대한 황금 스와미나라얀 상이 자리잡고 있고 그를 향해 있는 5명의 악샤르 황금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 악샤르들은 이 분파의 영적 지도자들이다.

이 단체는 이름(Bochasanwasi)에도 나와 있듯이 구자라뜨의 보짜산(Bochasan)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시작하여 미국 애틀랜타, 시카고, 휴스턴, 로스앤젤레스, 캐나다의 토론토, 영국 런던 등 주로 북미 및 서유럽 지역에 지부를 두고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구자라뜨 출신 해외거주 인도인들을 중심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 왔다. 이들이 재정적으로 많은 지원을 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추종자가 10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단체에서 거대한 힌두사원 문화단지를 조성했다는 것은 완전한 박띠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박띠가 상품이 된 테마파크

‘악샤르담 스마라끄’라는 화려한 사원을 나와 만나는 151개의 성스러운 강과 호수의 물을 108개의 암소 형태 꼭지를 통해 내보내는 ‘나라얀 사로바르’, 연꽃 형태의 음악분수 ‘야갸뿌루쉬 꾼드’, 또 다른 8개 연꽃 잎 모양의 ‘요기 가슴 연꽃’이란 이름의 야외 전시 정원, 약 8만9,000㎡에 조성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인도 정원’, 음식점과 기념품 판매소를 둘러보고 오후 6시께 나오는데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일몰 시에 ‘야갸뿌루쉬 꾼드’에서 진행되는 ‘사하즈 아난드’ 분수 쇼를 보기 위해서다. 인도에서 대형 분수 쇼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인도인들에게는 너무 재미 있게 시간을 보내고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사원은 박띠도 상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종합 테마파크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악샤르담 델리’의 자료에 따르면 1968년 당시 지도자가 야무나강변에 ‘쉬카라’ 있는 사원을 건설하고 싶은 소망을 표현하면서 토지를 요구했고 2000년에 공적으로 토지 취득이 허가되었다고 한다. 타지 마할을 비롯해 대표적인 이슬람문화유적이 자리잡은 야무나강변에 거대한 힌두사원이 세워진 것은 ‘힌두들의 인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토지를 공적으로 허가받은 시점이 힌두 근본주의세력이 부상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2013년 11월 인도를 방문했던 찰스 영국 왕세자를 비롯, 뉴델리를 찾는 여행객의 70% 이상이 악샤르담사원을 방문한다. 이 사원은 앞에서 언급한 이슬람 문화유산을 다 제치고 두 번째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뉴델리의 대표적 관광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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