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섭 기자

등록 : 2018.06.28 04:40

[서효인의 공은 둥글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건

등록 : 2018.06.28 04:40

파나마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역사적인 첫 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국이 멕시코에 졌을 때, 혹자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나, 동시에 공허한 문장이기도 하다.월드컵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선과 최선이 만나 누군가에게는 최선의 결과를, 그 상대방에게는 최악의 결과를 선사하기도 하는 게 축구다.

모든 플레이의 기본은 ‘최선을 다함’에 있다. 화려한 기술도 빠른 스피드도 강인한 체력도 모두 최선을 다하는 중에 나온다. 90분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선수가 경기의 끝을 알리는 휘슬에 그제야 피치에 드러누울 때, 그 순간이야말로 축구의 백미가 아닐까. 승리와 패배를 나누는, 그 냉혹하고 엄정한 결과를 떠나서 말이다.

운하로 유명한 북중미의 소국 파나마에 러시아월드컵은 첫 번째 본선 경험이다. 그들은 첫 경기에서 벨기에를 만나 3-0 완패를 당했다. 두 번째 상대인 잉글랜드는 더욱 거세게 그들을 몰아붙였다. 전반이 지났을 뿐인데 스코어는 5-0. 후반 시작해 얼마 되지 않아 해리 케인의 발뒤꿈치에 굴절된 볼이 골문 안으로 향하는 불운까지 찾아온다.

이제 여섯 골 차, 차라리 경기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 법한 상황. 파나마는 오히려 날카로운 역습을 몇 번 선보이더니, 이어진 프리킥 찬스에서 기어코 한 골을 집어넣고 만다. 역사적인 월드컵 첫 골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박창선이 넣었던 바로 그것이다. 승패는 일찌감치 결정됐지만 파나마 선수들은 환호했고 러시아까지 찾아온 그들의 팬도 최선을 다해 골 맛을 즐겼다. 승부는 싱거웠지만 축구는 전혀 싱겁지 않은, 그야말로 축구다운 최선의 순간이었다.

파나마와 달리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대국이며 축구 강국이다. 축구에 있어서는 인간이 아니라고 일컬어지는, 그러니까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인 리오넬 메시의 조국이다. 그들은 힘겹게 16강에 올랐지만 아이슬란드와 첫 경기 때 페널티킥을 놓치는 등 졸전 끝에 비기더니 급기야 두 번 째 경기는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0-3, 완벽한 패배를 당했다.

더욱 충격적인 장면은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세 번째 골이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오프사이드를 예감하며 동시에 네 명이 손을 들었다. 그러나 부심은 손을 들지 않았다. 그 후 드리블과 패스, 슛이 이뤄지는 짧지 않은 시간, 그들은 손만 들고 있었다. 이 게임은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악의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본인 축구에서, 그들은 축구의 기본을 배신했다. 팀 원 중에 한 명이 메시라 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정말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된 걸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선수나 팬이나 원하는 것은 승리다. 그러나 언제나 이길 수는 없다. 특히 월드컵의 상대는 모두가 강자다. 이기고 지고는 최선을 다하는 자세의 담보가 아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는 이 모든 담보와 약속을 파기시킨다. 우리가 월드컵을 기다리는 이유도, 그들이 최선을 다했음을 믿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피치에 있다. 거기에 월드컵의 설렘이 있을 것이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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