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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의 손(手)축구] ‘진짜 문제’가 뭔지 모르는 축구협회장

입력
2017.10.20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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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규)는 최근 ‘실기(失期)’에 실기를 거듭했다.

축구협회는 러시아 월드컵 진출이 확정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신태용(48) 대표팀 감독을 중계권사 카메라 앞에 세워 “9회 연속 본선에 나간 소감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답을 하도록 만들었다. 팬들은 ‘월드컵 진출을 당했다’며 분개하는 상황에서 선수단이 태연하게 헹가래를 치는데 현장에 있던 임원, 스태프 중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히딩크 논란’ 초기 축구협회 수뇌부들은 하나같이 “히딩크 감독이 그럴 리 없다”고 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에야 지난 7일 프랑스로 날아가 히딩크 감독을 직접 만나 뒷수습을 했다. 물론 이 사태는 히딩크 감독의 메신저를 자처하는 히딩크재단 노제호 사무총장의 ‘자가발전’으로 시작해 일파만파 커진 측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대중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느냐다.

정몽규(55) 축구협회장은 1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입장을 표명하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 달 6일 처음 히딩크 부임설이 불거지고 한국 축구가 쑥대밭 된 지 44일 만이다. 사과에도 타이밍이 있는데 부정적인 일일수록 발생 초기에 해야 효과적이라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정 회장의 사과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방향도 잘못 짚었다. 정 회장은 “경기력 부진이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축구계 안팎의 목소리는 다르다. 축구협회 내부의 경직된 의사 결정 과정이 곪을 대로 곪아 한꺼번에 터진 결과물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최근 대표팀 경기력과 축협 내부 비리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사과의 뜻을 나타내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최근 대표팀 경기력과 축협 내부 비리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사과의 뜻을 나타내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매주 월요일 정 회장이 주재하는 부회장단 회의가 열린다. 필요할 때는 실무팀장이 배석해 직접 보고도 한다. 형식은 다 갖췄다. 하지만 내용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회장이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예스맨 회의’가 돼 버렸다. 축구협회 한 인사는 “부회장단 회의에서 요즘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 바로 정 회장”이라고 혀를 찼다. 민감한 사안에는 부회장들이 입을 꾹 다문다는 의미다. ‘지도자 간담회’나 ‘심판 간담회’ 등 현장 목소리를 듣기 위한 자리도 종종 있지만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피드백이 거의 없다는 전언이다. 다른 인사는 “현장에서 100개를 건의하면 1~2개는 받아들여져야 의욕이 생긴다. 안 된다 해도 이유와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와야 하는데 회장은 그저 듣기만 할 뿐”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한국이 러시아 월드컵 진출을 확정하고 돌아온 뒤 분위기 파악을 못한 축구협회 수뇌부는 자축 행사를 열려고 했다. 안기헌 축구협회 전무이사가 주재하는 월간팀장회의에서 한 실무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재고해 달라”고 했다. 안 전무가 얼버무리고 넘어가려 하자 실무자는 재차 삼차 요청했다. 안 전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는 전언. 결국 행사는 취소됐는데 축구협회 직원들은 안 전무 앞에서 반대 의견을 낸 실무자의 용기에 놀라고 그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에 두 번 놀랐다고 한다. 아래서 위로 의견 수렴이 거의 안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축구협회 한 직원은 “아랫사람의 의견 제시를 임원들이 도전으로 받아들이니 아무도 건의하려고 안 한다”고 답답해 했다.

이날 정 회장 입장 표명도 갑자기 잡혔다. 이 소식에 프로축구 관계자들은 황당해 했다. 이날 같은 장소에서 먼저 열린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프로축구 슈퍼매치 기자회견이 축구협회 이슈에 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프로축구에서는 K리그 최고 흥행카드인 두 팀의 격돌(10월 21일)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일찌감치 예고하는 등 적지 않은 공을 들여왔다.

“정 회장 입장 표명이 꼭 오늘이어야 했느냐”고 묻자 축구협회 관계자는 “회장님 일정상 오늘 밖에 안 된다”고 답했다. 프로축구 관계자는 “한국 축구를 총괄하는 수장이면 프로축구 활성화를 위해 슈퍼매치를 이슈화 시켜줘도 모자랄 판인데 도대체 뭐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축구협회가 회장 일정만 신경 쓰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 회장은 “모든 잘못은 제게 있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진짜 문제가 뭔지 아직 잘 모르는 듯하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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