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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세상을 이해하는 힘, 지식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17.04.2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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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틴이라 불리는 단두대의 이미지는 극한의 공포다. 기요틴을 발명한 기요탱은 “이 기계장치가 천둥처럼 떨어지면 목이 날아가고 피가 튀면서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프랑스 혁명 시기 인민의 적으로 규정된 사람들은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이후 프랑스의 모든 사형은 기요틴으로 집행됐다. 사형제가 폐지된 것은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다. 당시 국민의 60% 이상이 사형제 유지 의견이었지만 미테랑의 공약이었던 사형제 폐지안은 결국 의회를 통과했다. 루이 16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을 벤 단두대가 20세기말까지 계속 사용된 걸 보면서 문명국가의 야만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단두대는 프랑스 혁명 시기 계몽주의 정치인이자 진보 성향 의사인 조제프 이냐스 기요탱이 인도적 처형법으로 고안한 것이다. 발명자 이름을 딴 기요틴은 죽음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사형을 민주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전까지 사형은 마차로 사지 찢기, 칼로 참수하기, 화형, 교수형 등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배경 지식과 기요탱 발명의 취지를 모르면 단두대는 단지 목을 베는 끔찍한 장치로만 보일 수 있다.

무기로 사용되는 폭탄도 처음부터 살상 목적으로 발명된 것은 아니다.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던 것은 탄광이나 수로 발파, 굴착공사 등에 사용해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노벨은 평화주의자였고 자신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인류발전에 기여하길 원했다. 그는 폭탄이 죽음의 무기로 사용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날 폭탄을 보면서 인도주의자였던 노벨의 발명 의도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다. 보이는 것과 그 이미지로만 주관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배경과 의도를 알면 좀 다르게 보인다.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레이크스 미술관에 가면 눈길을 끄는 그림이 있다. ‘시몬과 페로’라는 제목이 붙은 루벤스의 작품이다. 얼핏 보면 해괴망측하고 외설스럽다. 한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가슴을 물고 있는 그림이다. 가만히 보면 노인은 철사슬로 손이 묶인 죄수고 배경은 감옥이다. 해설을 찾아 보니 젖가슴을 드러낸 채 고개를 돌리고 있는 여인은 죄수의 딸이다. 노인은 투옥된 후 음식물 반입이 금지돼 감옥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출산 후 수유 기간이었던 딸은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어 헤치고 자신의 젖꼭지를 물린 것이다. 이런 맥락을 알고 나면 이 그림에 ‘로마인의 자비’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특히 예술작품의 경우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작가의 감정을 투영하거나 은유 등 상징적 방법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동양에서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고 서양에서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한다. 보지 않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객관적이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눈에 비치는 것은 겉모습과 이미지다. 하지만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현상을 뒤집어보려는 문제의식과 한꺼풀 벗기고 이면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세상은 왜곡된 모습으로만 보인다. 언론 기사도 맥락 없이 단편적 팩트만 읽으면 실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앨빈 토플러는 지식은 가장 민주적인 힘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배경과 맥락을 짚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지식이다. 지식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부단한 연구와 학습이 필요하다. 연구를 의미하는 영어 리서치(research)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또 찾는 노력을 말한다. 인공지능은 딥러닝(심화학습)을 하지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라이프롱러닝(평생학습)이다. 지식은 세상을 이해하고 움직이는 힘이다. 모르는 것은 약이 아니라 그냥 무지일 뿐이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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