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성
논설실장

등록 : 2016.07.11 20:00
수정 : 2016.07.11 20:00

[이계성 칼럼] 사드 배치의 역설

등록 : 2016.07.11 20:00
수정 : 2016.07.11 20:00

北 핵ㆍ미사일 위협 대응 조치라지만

도리어 북핵 기정사실화 역효과 우려

평화적 해결 그랜드 디자인도 멀어져

'사드 배치 반대 전국대책회의'와 '사드 배치 후보지역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사드 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

지난 8일 정부가 사드 한반도 배치를 전격 발표했을 때 퍼뜩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통과 후 영국민들의 반응이 떠올랐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소회를 주변 지인에게 밝혔더니 “영국은 그래도 국민투표라도 했잖아요”라고 퉁명스레 받는다. 국가 운명과 국민 생존이 걸린 중대사가 편협한 인식에 경도된 일부 집단에 의해 기습적으로 결정되는 게 옳으냐는 강한 불만의 토로였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국민투표 회부” 주장은 이런 반응이 바탕일 것이다.

사드 한반도 배치를 놓고 우리 사회가 극심한 갈등에 빠져들고 있다. 여당과 보수진영은 북핵ㆍ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옹호한다. 반면 야당과 진보진영은 한반도 평화와 국민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일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의 급격한 고조, 한중관계의 파탄과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 등을 들어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로 지옥문을 열었다”고 하는 견해까지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사드 배치가 한반도에 ‘지정학적 지옥문’을 열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북 핵ㆍ미사일 위협을 경감시키는 효과적인 대응일까, 한ㆍ미ㆍ일 대 북ㆍ중ㆍ러의 신냉전 구도 심화로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떨칠 수 없다. 물론 북 미사일에 대한 다층방어시스템 완성이라는 의미를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남한인구 절반이 북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 사정권에 사는 현실에서 성능도 불확실한 사드 1개 포대가 북한의 군사위협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러시아가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대열에 균열이 불가피하다. 6ㆍ25 발발 66주년이었던 지난달 2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반도 사드 배치에 강력히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이 북 핵과 미사일 개발을 빌미 삼아 자기들 나라를 포위하기 위한 미사일방어(MD) 체제를 한반도에 구축하려 한다고 굳게 믿는 두 사람이다. 그런 그들이 한반도 사드 배치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북핵 및 미사일 제재에 협력하고 싶을까.

북한은 그 틈새를 비집고 핵무기 소형화와 다종화, 무수단에 이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개발 등 투발 수단까지 완전하게 갖춰 명실상부한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려 할 게 틀림 없다. 사드 배치로 한국이 한ㆍ미ㆍ일 군사동맹의 최전선에 나선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이에 대항하는 북ㆍ중ㆍ러 군사동맹의 최전선 방패로 북한을 활용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구도 속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수준은 한층 높아지고, 중국과 러시아가 노골적 또는 암묵적으로 이를 지원하고 나설 수 있다.

북 핵ㆍ미사일 위협을 막겠다고 배치한 사드가 되레 북한이 핵ㆍ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줌으로써 그 위협을 키우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적의 새로운 무력에 상응하는 무력으로 맞서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브레이크 없는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이 안보 딜레마가 마침내는 모든 무력을 쏟아 붓는 전면전과 같은 대규모 군사충돌로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박 대통령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군사적 대응을 넘어 북 핵ㆍ미사일 위협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미ㆍ중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물론 남중국해 분쟁 등 동아시아에서 격화하는 G2쟁투 상황 속에 북 핵ㆍ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두 패권국의 협력을 이끌어 낸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더구나 그랜드 디자인을 구축할 상상력과 의지가 빈약한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팀 역량에 비춰서는 처음부터 기대난이었지만 그나마 사드 배치 결정으로 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 때 우리가 도대체 무슨 선택을 한 거야!” 땅을 치며 후회하는 날이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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