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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눈 내리는 날의 슬픔에 관하여

입력
2018.01.26 14:4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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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온다! 라고 외치면 모두들 하던 말을 멈추고 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탄성. 이것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다. 비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비가 올 경우 웬만한 가뭄을 겪은 와중이 아니라면 비의 출현이 보통 환호성을 동반하진 않는다. 액체이든 고체이든 하늘에서 대지로 수분이 공급된다는 것만큼은 같지만, 눈이 가져다 주는 드라마틱한 경관의 변화는 실로 괄목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눈 내림은 잠자던 영혼을 자극하고 북반구 민족의 마음을 움직인다. 특히 한 해에 내리는 첫눈일수록.

첫 눈의 흥분과 동반해서 시작되는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내리는 눈이 불러일으키는 감동 바로 1초 뒤에 늘 뒤따라 차오르는 슬픔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염화칼슘이다. 하늘이 눈을 뿌리면, 인간은 염화칼슘을 뿌린다. 그때마다, 예외 없이, 언제나. 그것도 듬뿍, 팍팍, 엄청 많이. 지구를 처음 방문한 외계인 과학자의 시선으로 보면 눈과 염화칼슘의 밀착된 상관관계가 너무나 강해서 아마 자연적 인과관계로 볼 것이다.

당연한 소리라고 치부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눈이 소복이 쌓인 아름다운 광경, 이것이 언제나 염화칼슘이라는 오염물질의 대량살포를 정확하게 의미한다면, 당신은 과연 괜찮은가? 그림 같은 설국이 만들어지는 날마다 우리 환경이 그만큼 악화되는 이 기형적인 구조를 알고도 아픔과 슬픔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뭔가 잘못된 것이다. 해악이 혼자 도래해도 힘든 판에, 순백의 아름다움과 짝 지워져 찾아오는 해악이라 더 마음을 후벼 파는 무언가가 있다.

염화칼슘이...뭐가 문제냐고? 음. 미끄러운 눈을 녹여 우리의 생활을 도와준다는 염화칼슘의 순기능만 아는 이에겐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이미 뭔가 이상한 낌새는 차릴 만한 게 염화칼슘이다. 어떤 화학적인 ‘염’을 포대기로 땅에다 뿌리는데 그게 어떻게 문제가 없겠는가 말이다.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면 그냥 문제 정도가 아니다. 염화칼슘은 우선 흙의 염분을 높여 가로수와 식물을 죽이는 심각한 토양 오염원이다. 실제로 경기도 파주에 심은 가로수 100여 그루가 염화칼슘의 영향으로 갈변 또는 고사하였다. 염화칼슘에 의해 높아진 염분은 식물의 잎을 괴사시키고 저항성을 낮추기도 한다.

어디 이뿐이랴. 염소는 토양과 결합하지 않기 때문에 유출되어 지하수 및 하천을 오염시킨다. 한 번 지하수로 유입된 염소는 자연적으로 잘 제거가 되지 않아 오랫동안 남는다. 물과 식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건 너무나 당연히 생태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된다. 피해는 자연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도시의 시멘트 콘크리트, 철판, 철근을 부식시켜서 도로, 교량 및 차량의 안정성을 저해한다. 목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염화칼슘이 건조되면 미세한 먼지로 변해 기관지에 유입되어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간추린 재앙의 목록은 모두 국산 친환경 제설제가 버젓이 생산되고 있음에도 매년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는지. 점도, 탁도, 부식성, 환경안정성 등에서 염화칼슘에 비해 훨씬 우수한 제품이 그저 가격이 1.5~2배라는 이유만으로 지자체들이 쓰지 않고 있는 사실도 말이다. 어떤 제품은 심지어는 이런 장점에 덧붙여 재결빙이 잘 되지 않아 미끄럼을 방지하는 장점마저 갖추고 있다. 예산을 써야 할 곳이 있다면 지자체 호화청사가 아니라 바로 여기이다. 재작년엔 조달청도 친환경 제설제와 다수공급자계약을 체결하면서 독려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늘도 눈의 낭만 대신 거친 염화칼슘만이 뽀득뽀득 밟힌다. 이런데 눈이 오는 날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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