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36.5도] 19대 국회가 결자해지할 것들

입력
2016.04.14 20:00
0 0

“며칠 전 제왕절개 수술을 받느라 척추에 마취주사를 맞았어요. 레지던트 선생님이 주사를 놓을 부위를 잘 찾지 못하더라구요. 죽은 예강이가 자꾸 생각 났습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최윤주(40)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얼마 전 딸을 낳은 최씨는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관심은 온통‘신해철법’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었다. 의료사고 피해자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하면 병원 동의 없이도 조정이 시작되도록 한 법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소송을 하는데 시간적ㆍ경제적인 부담을 느끼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어려움이 꽤 경감될 터다.

2014년 1월 초등학교 3학년이던 최씨의 딸 (전)예강양은 서울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요추천자(척수액을 얻기 위해 허리뼈 사이에 바늘을 넣는 것) 시술을 받다가 사망했다. 경험 없는 레지던트들이 무리하게 시술하다 딸이 목숨을 잃었다는 게 최씨의 주장이다. 병원 오기 며칠 전까지 멀쩡했던 딸의 급작스런 죽음도 황당했지만, 최씨를 상심하게 한 것은 사인 해명 요구에 “소송으로 해결하라”고 사무적 응답만 일삼는 병원의 태도였다. 조정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했지만 병원의 거부로 조정은 시작조차 안됐다.

최씨의 바람은 단순히 딸의 죽음에 대한 신원(伸寃)이 아니다. 간단한 진료기록조차 얻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제도’를 만들어야겠다는 것. 그 사이 신해철씨의 사망(2014년 10월)으로 의료사고 문제가 공론화됐고, 법안은 상임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이 여전하고, 법사위에서 법안 심의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와 요즘 최씨의 마음은 편치 않다. 특히 이번 국회는 법사위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의 발목을 잡는‘월권 논란’으로 유독 시끄러웠다.

그러나 최씨의 가장 큰 걱정은 이번 국회가 조기휴업에 들어가 법안이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총선에서 이긴 정당은 이긴 정당대로, 패한 정당은 정당대로 뒷수습을 하느라 법안 처리에 신경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번 폐기된 법안이 다음 회기, 심지어는 그 다음 회기에도 처리되지 못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최씨와 같은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것은 이번 국회가 해결해야 할 마지막 의무다. 사실 이번 국회에는 신해철법처럼 입법 타당성 여부를 충분히 검증 받았지만 법제화 문턱에 걸려 있는 법안들이 꽤 된다. 이른바 ‘생활임금법안’(최저임금법 개정안)도 그 중 하나다. 주거ㆍ교육ㆍ문화비 등‘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으로 소득불평등을 개선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담겨 있는 법이다. 특히 여당의 태도 변화는 필수다. 상임위는 물론 법사위 심의까지 끝냈으면서도 정작 이 핑계 저 핑계로 본회의 상정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며 선거 때마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겠다고 공약하기보다는, 이미 9부 능선까지 도달한 이 법안 통과에 애쓴다면 훨씬 진정성이 느껴질 터다.

자영업자도 아니고 근로자도 아닌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특고노동자의 산재보험 확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이 법안이 사실상 정부의 법안인데도, 법사위에 상정된 지 1년이 넘도록 여당의원들이 심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국민에 대한 태업으로 밖에 설명할 수 밖에 없다. .

낙천ㆍ낙선ㆍ은퇴하는 의원들로 국회의 마지막 회기는 으레 철시한 상가처럼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야는 지난 18대 회기 막바지인 2012년 5월 머리를 맞대 최대 쟁점 법안이었던 ‘국회 선진화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19대도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필요한 법안을 임기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논의하는 것,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 아닐까.

이왕구 사회부 차장대우 fab4@hankookilbo.com

[이왕구] 100416 2010-04-16 (한국일보)
[이왕구] 100416 2010-04-16 (한국일보)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