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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저는 정말로 개가 되고 싶어요”라고 내뱉은 후 개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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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저는 정말로 개가 되고 싶어요”라고 내뱉은 후 개가 된다면...

입력
2018.05.18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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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에 내뱉은 말에는 아무튼 간에 뭔가 힘이 있다는 것이다.” 박솔뫼 작가가 단편 ‘사랑하는 개’에서 슬쩍 던진 메시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입 밖에 내뱉은 말에는 아무튼 간에 뭔가 힘이 있다는 것이다.” 박솔뫼 작가가 단편 ‘사랑하는 개’에서 슬쩍 던진 메시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내키는 대로 이야기한 것뿐일지도 모르는데, 세상은 전위며 실험이라 불렀다. 등단 9년 차 소설가 박솔뫼(33). 새 소설집 ‘사랑하는 개’에도 어김없이 그런 수식어가 붙을 것 같다. 문장은 짧아야 하나, 묘사는 바지런해야 하나, 서사는 말쑥해야 하나. 박 작가의 소설은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한다. “여름의 골목만을 어딘가로 헤매는 마음으로 걷고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따라가보고 있었다.” 소설 속 문장이 그가 글을 쓰는 방식이다. 어지러울 수도, 신기로울 수도 있다.

책엔 단편 네 편이 실렸다. “저는 정말 개가 되고 싶어요.” 뱉은 말이 실현돼 정말로 개가 되는 이야기인 ‘사랑하는 개’, 제목 그대로 고깃집을 찾아 헤매는 게 줄기인 ‘고기 먹으러 가는 길’, 직진하는 시간을 잠시 끊어 주는 방편으로 보급된 동면(冬眠)을 상상한 ‘여름의 끝으로’, 그리고 이야기인 건 분명하지만 어떤 이야기라고 뚝 잘라 말하면 안 될 듯한 ‘차가운 여름의 길’. 소설에선 가습기 수증기에서 닭 세 마리가 피어 올라 말을 걸고, 피에로 복장의 사마귀 크기의 무언가가 나타나 곡예를 넘는다. 믿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라는 듯, 박 작가는 “문장이 꼬리를 이으며 쫓아가게” 할 뿐이다. “그것은 모두 어디선가 그럴 법한 일이야.” 그런데도 어쩐지 그렇게 믿게 된다.

사랑하는 개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발행∙152쪽∙1만원

박 작가는 “내가 앞으로 할 것들과 하지 못할 것들이 언제나 기대가 된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소설 속 인물들도 작가를 닮았다. 그들은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둔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개가 된 게 원통할까 싶은데, 받아들인다. “개로 사는 게 벌은 아니잖아요.” 미운 언니를 더 이상 혈연처럼 느끼지 않는 것으로 미움을 그만 두고, “지겨운 것들이라도 곧 사라져버리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시간을 견딘다. “모든 고기 먹으러 가는 길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누구의 말을 듣게 될지 모르”는 게 삶의 속성이므로.

이 낯선 소설에 익숙해지려면 박 작가의 구불구불, 좌고우면하는 문장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눈물이 흐르고 왜 눈물이 나는 것일까 생각하고 지금 슬픈 이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 그 일의 성공 가능성을 생각하면 일이 커질 것이고 그러니 생각을 하지 않을 거야” 같은, 말에 가까워 더 리얼한 문장들. 책은 1인 출판사 스위밍꿀이 크라우드펀딩으로 500만원을 모아 만들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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