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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감시와 권력 사이

입력
2017.06.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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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암이 자라고 있는 걸 알게 된 환자가 지방에서 올라와 암 치료를 잘 한다는 서울의 한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이 병원은 장비가 모자라니 다른 병원에서 영상 촬영을 해오라며 돌려 보냈다. 병원을 다시 수소문하고 예약하는 동안 환자는 속이 타 들어갔을 것이다.

최근 서울 노원구의 한 공공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오래 돼 고장이 잦은 영상장비를 교체하는데 무려 1년이 걸리는 사이 많은 환자가 이런 혼란을 겪어야 했다. 이 병원이 소속된 공공기관의 노동조합은 “지난 정부에서 보낸 감사의 전횡” 때문이라며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다.

노조는 해당 감사가 지난해 부임 이후 자신의 결재 권한을 확대해 의료장비 구입 결재를 반려하는 바람에 환자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감사실은 이에 대해 장비 구입 과정에서 특정 업체가 혜택을 독점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현장 조건에 맞는 장비 제조사는 한 업체뿐이어서 결국 그 업체 장비가 약 1년 만에 투입됐다.

노조에 따르면 해당 감사는 연구비로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감사실은 “연구과제 수주를 돕기 위해서”였다지만, 원장 아닌 감사가 과제 수주에 직접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또 전용 차량을 “다른 기관과 ‘급’을 맞출 필요가 있어서” 월 임대료가 기존보다 약 1.7배 많은 고급으로 교체했다. 2011~15년 적자였던 이 기관은 직원들의 임금 동결과 삭감으로 지난해 겨우 적자를 면했다 올해 다시 적자 운영 중이다.

공공기관의 감사는 방만경영을 비판ㆍ견제ㆍ감시하는 게 주 업무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피해자가 생기거나 감사 개인의 이익이 발생한다면 설사 감시 목적이 정의로웠다 해도 다수의 공감이나 동의를 얻기 어렵다. 견제와 감시 기능이 권력과 멀지 않기 때문이다. 올바른 견제와 감시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정부의 원자력 진흥 일변도 정책에 급제동이 걸렸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수명연장과 신고리 5ㆍ6호기 건설허가 과정을 계속 비판하고 감시해온 시민단체가 큰 역할을 했음이 자명하다. 덕분에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운 원자력발전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신재생 발전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될 거란 기대도 높다.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고 실행에 옮기는 건 원자력 정책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건 새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런데 일부 시민단체가 더 나아가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빨리 중단할 것과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어떤 단체는 에너지 공기업 경영진과 비공개 모임을 갖거나, 정부 고위층과의 만남을 주선한다는 후문도 들린다. 물론 목적은 소통이겠지만, 아슬아슬하다.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ㆍ견제ㆍ감시가 시민단체 본연의 역할이다. 정책 결정에 직접 관여하려 할수록 견제와 감시 기능은 권력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원전에 생존이 달린 국민도 있다. 어렵사리 마음을 정하고 원전 건설에 따른 혜택을 기대했던 일부 지역 주민들과 기존 원전 정책을 믿고 투자한 기업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원전 관련 한국 중소업체를 인수해 국내 시장에 진출한 한 독일계 기업 대표는 “예측 불가능한 정책 때문에 어려움이 크다”며 “새로 고용한 인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원자력뿐 아니다. 4대강 보 수문이 열린 날 일부 농민들은 시름이 깊어갔지만, 한 시민단체는 보 철거를 위한 투쟁을 다짐했다. 어떤 단체들은 특정 인사를 공직에서 배제하거나 처벌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시민단체 인사의 공직 진출에 대해선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목적이 온당하더라도 반대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공직 인사에까지 관여하는 감시 기능은 스스로 명분과 신뢰를 잃게 된다. 견제와 감시 기능은 투명한 조직, 건전한 사회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단 권력과 거리를 둘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임소형 산업부 차장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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