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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2만5000㎞, 그가 고통을 즐기는 이유

입력
2016.12.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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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란도너’ 박종하씨가 경기 성남 사무실에서 그가 조립한 휠셋과 함께 밝게 웃고 있다.
‘슈퍼 란도너’ 박종하씨가 경기 성남 사무실에서 그가 조립한 휠셋과 함께 밝게 웃고 있다.

2만4,332.5㎞, 20만9,177m. 박종하(35)씨가 12월 6일 현재까지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 올라간 높이다. 서울-부산을 30차례 이상 왕복하고 에베레스트를 23회 이상 오른 격이다. 순전히 자전거로 말이다. 평일엔 50㎞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주말엔 전국 각지를 돌며 200㎞가 넘는 장거리를 달린다. 전문 선수를 제외하면 그가 올해 자전거 탄 거리는 우리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 일하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 안장 위에서 보낸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가 타는 자전거는 스페셜라이즈드의 루베 익스퍼트 모델로 오랜 시간 먼 거리를 편안하게 달릴 수 있도록 충격흡수장치와 유압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돼 있다.
그가 타는 자전거는 스페셜라이즈드의 루베 익스퍼트 모델로 오랜 시간 먼 거리를 편안하게 달릴 수 있도록 충격흡수장치와 유압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돼 있다.

그가 자전거를 탄 것은 올해로 13년째. 군에서 전역한 2004년 10월 40만원짜리 저가 산악자전거를 구매하면서 자전거 생활이 시작됐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여느 ‘자전거족’과 마찬가지로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듬해 동호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남산을 올라 다니며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탔다. 동호회에서 서울에서 대구까지 320㎞를 탄다고 해 운동화에 평상복차림으로 무작정 따라 나섰다. 엉덩이 여기저기 상처가 났다. ‘내가 이러려고 자전거 탔나’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면서도 끝까지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부산 라이딩에도 도전했다. “대구 완주 때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완주했을 때 성취감은 모든 고통을 잊게 할 만큼 크다”고 말한다. 자전거에 완전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전거 정비사를 거쳐 현재는 자전거 바퀴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자전거 정비사를 거쳐 현재는 자전거 바퀴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자전거가 좋아서 자전거를 일로 선택했다. 동호회 통해 알게 된 자전거 가게에 들어가 정비업무를 배웠다. 하지만 그 역시 좋아하는 것을 일로 선택했다 후회하는 경우에 속했다.

“자전거 고치는 일은 타는 일과 완전히 다르다. 주말엔 자전거 타는 이들이 많은 만큼 정비해야 할 자전거도 많아진다. 내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일이 많아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나. 남들 타는 시간에 못 타니 못하겠더라. 이쪽 일을 했지만 정작 자전거 탈 시간은 없었다. 자전거는 역시 타야 제 맛이다” 정비 일을 관두고 공장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자전거 탈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래서 더 많이 탔다. ‘대관령 힐클라임대회’, ‘오디랠리’ 등 하루짜리 대회에도 나가봤다. 그렇게 달리는 것이 좋았다.

조립한 자전거 바퀴 앞에서 밝게 웃고 있는 박종하씨.
조립한 자전거 바퀴 앞에서 밝게 웃고 있는 박종하씨.

2011년부터 동호인 자전거 대회인 ‘투르 드 코리아 스페셜’에 참가하기도 했다. 대회 참가를 위해 팀에 가입하고 함께 훈련하면서 자세, 핸들링, 페달링, 변속, 체력 안배하는 법을 배웠다. 경쟁 대회 참가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울 근교를 다니는 것과 또 달랐다. “자전거를 많이 타서 자신 있었지만 대회에 나가보니 잘 타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만날 뒤로 흘렀다. 완주하기도 벅찼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자전거는 알면 알수록 끝이 없었다. 그렇게 그의 ‘자전거 세상’은 더 넓어졌고 깊어졌다. 일도 다시 자전거로 돌아왔다. 풍부해진 자전거 경험을 바탕으로 정비 업무는 능숙해지고 세밀해졌다.

전국 방방곡곡을 자전거로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 고개를 많이 넘기 때문에 비석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 많다.
전국 방방곡곡을 자전거로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 고개를 많이 넘기 때문에 비석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 많다.

지난해부터 그의 자전거 생활은 또 다시 달라졌다. ‘한국 란도너스’에 참가하면서부터다. 란도너는 프랑스어로 장거리 여행자를 뜻하는데 자전거 분야에서는 200㎞에서 1,000㎞에 이르는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지정된 날짜에 정해진 구간을 제한 시간 안에 자전거로 이동해야 하는 ‘브레베’가 열리고 여기서 완주하면 ‘란도너’ 인증을 받는다. 그는 주말마다 브레베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올해만 200㎞ 6회, 300㎞ 2회, 400㎞ 2회, 600㎞ 2회,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1,000㎞와 1,200㎞도 완주했다. 가장 긴 코스인 1,200㎞에선 완주자 58명 중 1등으로 들어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거리별 브레베 완주자에게 주어지는 ‘수퍼 란도너’ 타이틀도 갖게 됐다. 개인이 코스를 스스로 만드는 ‘퍼머넌트’도 참여해 14회 완주했다. 완주에 실패한 것은 단 한 번. 속도 계산을 잘못해 출발을 늦게 했을 때였다.

“자전거를 오래 탈 때는 뜨는 해인지 지는 해인지 구분이 안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오래 탈 때는 뜨는 해인지 지는 해인지 구분이 안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제한시간 안에 완주하기 위해선 잠을 2시간 밖에 못 잔다. 잠도 부족하고 오랜 시간 자전거로 이동하다 보면 뜨는 해인지 지는 해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높은 고개를 여러 차례 넘고 내려오면서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며 하루에 4계절을 겪기도 한다. 안개 속을 달릴 땐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상주 200㎞ 브레베 땐 멧돼지를 만나기도 했다. 놀란 멧돼지가 헛발질하면서 달아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밤에도 달리다 보니 고라니, 고양이와 사고도 많이 난다”

그가 올해 란도너로 달린 거리는 1만㎞가 넘는다. 전국 각지 자전거로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출퇴근과 대회 출전을 합치면 그가 자전거로 달린 거리는 2만5,000㎞에 이른다. 웬만한 승용차보다 많이 달린 셈이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을 올라간다. 딱딱한 길바닥 위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고통을 알기에 현실에 더 만족하게 되는 것 같다. 먼 거리를 완주하고 숙소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 맞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실 때 느끼는 작은 행복.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는 내년에도 란도너로서 페달을 밟을 계획이다. 대회 참가도 늘릴 생각이다. 그의 자전거 세상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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