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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보다 잔혹한데… 소년범 무조건 선처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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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보다 잔혹한데… 소년범 무조건 선처해야 하나요”

입력
2017.09.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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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사건 일파만파

소년 강력범 매년 3000명

14세 미만은 형사 처벌 못해

영국ㆍ호주는 10세 미만에 적용

폐지 청원글에 17만명 동의

“처벌이 능사 아니다” 반론도

또래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소년법 폐지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인보다 더한 잔혹 소년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지만 미성년인 피의자들이 소년법에 근거해 선처를 받거나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나이 어린 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 하지만 판단력 등이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을 무조건 처벌하는 게 범죄 예방이나 근절에 능사가 될 수는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네티즌들은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이후 소년법 폐지 등 가해 학생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소년법 폐지 관련 국민청원이 두 건 올라와 있는데, 사흘 만(5일 기준)에 17만여명이 동의할 정도로 공감이 뜨겁다. 특히 지난 7월 여고생 6명이 동년배를 7시간이나 무차별 폭행한 ‘강릉 10대 집단폭행‘ 사건이 이날 뒤늦게 알려지면서 소년범 처벌 강화 목소리가 더 빗발치고 있다.

“자신이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형량을 적게 받을 것을 알고 이를 악용해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는 게 주요 이유로 거론된다. 실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가해학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피해 학생 사진을 버젓이 올리고 “(교도소에) 들어갈 것 같아?”라고 말하는 등 자신들의 범행 사실을 알리는 대담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소년법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나이를 기준으로 정해져 있는 처벌 상한선이 불만이다. 일단 형법은 14세를 기준으로 그 미만 미성년자에게는 형사처벌을 내리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신 10~13세(촉법소년)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 소년부로 송치해 봉사활동이나 보호관찰 등 보호처분을 받도록 하는 게 소년법이다. 소년법은 또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도 형법보다 우선 적용되는데, 최대 형량이 징역 15년형에 불과하다. 살인 같은 강력범죄의 경우, 소년법 대신 특정강력범죄법을 적용 받아 최대 징역 20년까지 선고가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3월 초등학교 2학년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에 있어 검찰이 주범 A양에게 공범인 B양(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20년을 구형했는데, 이 역시 A양이 16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2015년 11월 서울 송파구 일대 편의점 등 11곳을 턴 14세 미만 청소년 4명이 처벌 없이 풀려난 사례, 같은 해 경기 용인시 아파트 옥상에서 벽돌을 던져 50대 여성을 사망케 한 9세 아동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사건 등도 소년법 적용을 받았다. “같은 정도의 범죄를 저지른 성인과 비교해, 소년법이 ‘처벌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사건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

부산의 여중생들이 또래를 폭행해 피투성이로 만든 사건과 관련해 가해 학생들이 2개월 전에도 피해 여중생을 폭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여중생 2명이 피해자를 폭행하는 모습. CCTV 캡처=연합뉴스
부산의 여중생들이 또래를 폭행해 피투성이로 만든 사건과 관련해 가해 학생들이 2개월 전에도 피해 여중생을 폭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여중생 2명이 피해자를 폭행하는 모습. CCTV 캡처=연합뉴스

국내보다 엄격한 잣대를 가진 외국 사례도 폐지 주장에 힘을 싣는다. 영국이나 호주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형사미성년 연령을 한국(14세)보다 어린 10세 미만, 캐나다나 네덜란드는 12세 미만으로 정하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소년법 취지는 개선과 교화인데, 치밀하게 계획해 강력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의 교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또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5년간 살인 등 4대 강력범죄로 검거된 14~18세 미성년자들이 매년 2,000~3,000명에 이르고,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10~13세도 매년 400명 안팎에 달한다는 점 역시 강력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반면 아이들은 역시나 아이들일 뿐, 아직은 처벌보다 교화나 개선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어린 나이에 징역형 등 성인에 준하는 처벌이 내려질 경우 평생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은 물론 재범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우려가 녹아 있다. 이창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소년범을 보호하는 사법제도가 전세계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청소년이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며 “처벌 강화는 대증요법에 그칠 뿐이고 소년범죄를 저지르게끔 하는 환경을 개선하고 청소년 범죄를 사회적 문제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년법 폐지 찬반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살인과 같은 특정 강력범죄의 경우, 최대 형량을 제한한 소년법 적용을 받지 않는 내용의 특정강력범죄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해 현재 계류 중이다. 2011년 형사미성년 연령을 12세로 낮추는 형법 및 소년법 개정안 발의는 논란 끝에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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