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인기 덕분에 한국과 역사에 관심 갖게 돼
내가 싫으면 바로 찡그리는 시대 어떻게 이웃과 좋은 관계 맺나
“오겐키데쓰카?” ‘잘 지내십니까’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인에게는 낯선 말이었다. 1990년대 후반 이 일본어는 젊은 층에서 크게 유행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장난스레 던지는 안부 인사로 종종 활용됐고, ‘오뎅 끼워놓았을까’라는 맥락 없는 유머의 재료로도 쓰였다.
유행어 ‘오겐키데쓰카’의 진원지는 일본영화 ‘러브레터’였다. 설원에 선 젊은 여인이 세상을 떠난 옛사랑을 그리며 사무치게 ‘오겐키데쓰카’를 외치는 장면이 한국 젊은 층을 파고들었다. 불법적으로 복사된 비디오테이프가 PC통신을 고속도로 삼아 빠르게 퍼졌다. ‘러브레터’를 못 본 20대는 유행에 뒤처진 이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섬세한 영상미로 그려낸 ‘러브레터’는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한국 대중들의 경계심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1998년 9월 김대중 정부가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문호를 열자마자 ‘러브레터’는 99년 1월 공식적으로 한국극장가를 찾았다. ‘러브레터’는 90년대 후반부터 꽃피기 시작한 한일 문화 교류를 상징하는 영화가 됐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영화 ‘러브레터’가 제작 20주년을 맞았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서 지난달 26일 개막해 4일까지 열리는 제4회 마리끌레르 영화제는 ‘러브레터’ 20주년을 맞아 이 영화를 연출한 이와이 슌지(52) 감독 특별전을 열었다. 영화제 참석을 위해 27일 한국을 찾은 이와이 감독을 28일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러브레터’ 제작 20주년을 맞았다. 어떤 느낌인가?
“20년 동안 ‘러브레터’가 사랑 받았다는 자체, 그 뒤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게 행복한 일이라고 느꼈다. 특별히 20이라는 숫자나 해당 기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모든 작품을 할 때마다 하나하나 새로운 마음, 젊은 마음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전의 일들은 돌아보지를 않는다. ‘아 내가 긴 시간 영화를 만들어왔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우리 회사 스태프들이 ‘감독님 20주년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서야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걸)깨달았을 정도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러브레터’는 한일 대중문화 교류의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 덕분에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일본감독이 됐다.
“일단은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개방은 역사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고 역사적인 것과 관련해 문화가 차단된 것이다. 대중문화가 개방되면서 내 영화도 공식적으로 개봉했다. 사실 젊은 시절 한국과 한일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러브레터’가 한국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내가 배우고 알게 된 것이 많다. 모르고 지나갈 수 있던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배우고 알게 됐다. 일본에만 있었으면 몰랐을 것을 영화가 (한국과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러브레터’가 한국인의 사랑을 받던 시기에 비해 한일 관계는 퇴보한 듯하다. 공교롭게도 올해가 한일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다.
“지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 영화를 준비 중에 있다. 사람들은 SNS를 통해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SNS를 만든 사람들은 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이 돈을 벌기 위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는 이웃과 대화를 하기보다 ‘주위가 시끄럽다’ 정도의 이야기만 한다. 개인들이 삶을 그렇게 살면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에도 반영된다. 요즘 사람들은 남에 대한 배려보다 본인 위주로 살고 있다. 한일관계를 살펴보기 전 ‘이웃과 좋은 관계란 무엇인가’를 우리의 삶에서부터 먼저 되돌아봐야 한다. 이웃이나 주위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 배려부터 해야 이웃나라와의 관계, 한일관계가 나아지지 않을까.
-국가간에도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요즘 사람들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도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앨리베이터 안에서도 인사하지 않는다. 오프라인에서는 관계가 그렇게 소원해지고 있는데 묘하게도 인터넷상으로는 친구가 생기고 사이가 좋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어떻게 알게 됐어요’라는 질문에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요’, ‘같은 전철을 타고 다녀서요’라는 대답이 정말 옛일이 되고 말았다. 예전에는 영화 속에서도 이런 인연이 존재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영화를 만들 때도 ‘뭐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연인이 된다고?’라고 의문을 품는 현실이 됐다. 이런 이상한 사회현상이 개인간의 관계, 국가간의 관계에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최근 유치원생들이 떠드는 게 소음 문제로 대두될 정도다. 전철에서 아이가 울 수도 있는데, ‘시끄럽다’ ‘왜 그러냐’는 반응이 나온다. 내가 참고 상대를 위해서 웃어주는 게 사회 공헌의 시작이다. 지금은 그런 사회공헌이 없는 시대가 됐다. 내가 싫으면 내가 바로 찡그리는 사회다. 그런 사회 속에서 내 이웃과도 그렇게 지내는데, 어떻게 국가와 국가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3.11도호쿠 대지진 뒤 일본이 우경화 됐고 아베 신조 정권의 탄생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는 분석이 한국에서 나온다. 한국의 특정 세력도 반일감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분석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기본적으로 (일본)정치에 있어 여야가 서로 싸워 한쪽이 이겨는 의회 제도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정치가 상대방과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는지(의문이다). (정치가)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야 개인도 바뀌고 국가간의 관계도 바뀐다. 배려와 상대(의 입장을) 감안하려는 생각이 부족하다. 2시간짜리 영화에 많은 것을 담고, 음악으로 여러 좋은 것을 묘사하나 이들은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거나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서로를 배려하고 생각해야 국가 사이도 변한다. 정치하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많은 것이 변화하기 어렵다.”
이와이 감독은 현실의 폭력이나 상실에 상처 받은 사람들의 내적 투쟁을 그려왔다. 화려하진 않으나 꼼꼼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를 포착했다. 첫사랑 영화 ‘러브레터’로 달콤한 이미지가 강하나 오래 전부터 원자력발전 가동 반대 운동을 펼치는 등 사회 운동에 적극 참여해왔다. 도호쿠 대지진 이후 원전 반대 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1년엔 다큐멘터리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을 만들어 원전이 지닌 문제점을 설파하며 탈원전을 강조했다. 최근엔 자신의 첫 애니메이션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을 완성했다. 일본의 원로 애니메이션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는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을 본 뒤 “이와이 감독은 내 후계자”라고 극찬했다. 다카하타 감독은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동설립자로 ‘반딧불이의 묘’ 등을 만들었다.
-영화감독으로서 원전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선 이유는?
“1980년대 원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비꼬는 노래가 이미 발표됐다. 그런데 그 노래는 발매 중지가 됐다. 이는 원전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가졌고 (원전과 관련)잘못된 것이 있다고 생각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3.11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당신이 가사를 만든 노래 '꽃은 피네'가 지난해 한일 고교생이 참석한 한 문화행사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곡으로 불렸다. 어떤 기분이 드는가?
“전혀 몰랐던 이야기다. ‘꽃은 피네’ 노래 가사는 언제나 복잡한 심정이 들게 한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엄청난 일을 겪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든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가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굉장히 괴롭다. 한국에서 이 노래가 불려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마음의 치유가 되었다면 내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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