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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북한 ‘선제 타격’ 발언은 없었다

입력
2016.09.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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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선제 타격 발언을 한 것으로 와전된 마이크 멀린 전 합참 의장. 사진은 멀린(오른쪽) 합참 의장이 2011년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북한 선제 타격 발언을 한 것으로 와전된 마이크 멀린 전 합참 의장. 사진은 멀린(오른쪽) 합참 의장이 2011년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지난 17일 마이크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이 미 외교협회(CFR) 주최 토론회에서 북한 선제 타격 발언을 했다는 워싱턴발 보도가 나온 뒤 국내에서 홍수를 이룬 ‘선제 타격론’은 우리 언론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일이어서 되새겨볼 만하다. 국내 언론들은 멀린 전 의장이 언급했다는‘선제 타격’ 발언을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때 빌 클린턴 행정부가 외과 수술식 타격을 검토했던 것에 빗대며, ‘미국에서 20년 만에 선제 타격론이 대두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냈다. 가뜩이나 국방부가 선제 타격을 거론하며 초강경 모드를 보이는 터라 ‘북한 타격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일부에서는 그가 언급한 게 미사일 발사 징후 시 타격하는 선제 타격(preemptive strike)이 아니라, 아예 예방 차원에서 북한의 핵 시설을 선제 공격하는 의미의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이란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멀린 전 의장은 둘 다 언급하지 않았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도리어 북한과의 소통 중요성을 강조하며 즉각 대화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는 미국 대북전문가 17명이 참가한 CFR의 대북 특별보고서 발간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비판하며 문턱을 대폭 낮춘 대북 협상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발간하며 미 외교가의 기류 변화를 보여준 토론회가 국내에선 180도로 뒤바뀐 것이다.

당시 보도에서 멀린 전 의장은 “만약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에 아주 근접하고 미국을 위협한다면 자위적 측면에서 북한을 선제 타격할 수 있다고 본다”, “선제 타격은 다양한 잠재적 옵션의 하나이지만 김정은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 등 선제 타격을 두 번 거론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CFR 홈페이지에 게재된 토론회 스크립트에 따르면, 멀린 전 의장은 한 질문자가 선제타격을 거론하며 미사일 발사지역 공격 여부 등을 묻자 “사실 나는 ‘선제’라는 용어를 아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며 ‘선제 타격’이란 용어 자체에 대해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우리는 자기방어(self-defense)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만약 그들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전력에 아주 근접하면 우리 자신을 방어하는 전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이론적으로 미사일 발사대의 발사 전력이나 발사된 미사일을 제거할 수 있다. 사드와 미 해군에 배치된 미사일 방어 전력이 그 일환이다”고 말했다. 미사일 방어 개념에서 이론적으로 미사일이 발사된 후 또는 발사대 단계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그는 또 북한이 도발 행위를 할 경우 군사적 대응을 묻는 질문에 “다양한 잠재적 옵션이 있다. 그건 김정은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도 선제 타격 발언은 없다. 다만 사회자가 “선제적 행동은 없을 거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해도 되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옵션 중의 하나로 생각한다”며 간단히 언급했다.

멀린 전 의장과 함께 보고서 TF 공동의장을 맡은 샘 넌 전 의원은 이 토론회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제재가 완벽하게 작동한 뒤 대화로 가는 것을 기다릴 수 없다. 당장 대화에 착수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등 여러 차례 대화를 강조했다. 그는 1994년 북핵 위기 때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했던 일도 거론했다. 실무 책임자인 아담 마운트 선임연구원도 “한반도 비핵화의 유일한 길은 대화”라며 북한에 실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핵 동결을 첫 번째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정치권에서 핵무장론, 전술핵 배치, 선제 타격 등 비현실적인 주장들이 거침 없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이 폭주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이성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찌 보면 이 과격한 주장들은 북한의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는 우리의 무기력함을 덮으려는 시도다. 언론이 이를 냉정히 검증해야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안보 포퓰리즘을 더 부추기는 데 앞장서 안타깝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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