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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베시 콜먼(1.26)

입력
2018.01.26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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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주민 혈통의 흑인 여성 첫 비행사 베시 콜먼.
미국 선주민 혈통의 흑인 여성 첫 비행사 베시 콜먼.

베시 콜먼(Elizabeth ‘Bessie’ Colemen, 1892.1.26~1926.4.30)은 1921년 6월 15일 프랑스에서 항공운항 자격증과 국제항공연맹(FAI)의 국제운항자격증을 딴, 미국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의 흑인 여성 비행사다.

베시 콜먼은 체로키 인디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의 13남매 중 열 번째 아이로 미국 텍사스주 애틀란타에서 태어났다. 소작농 아버지는 베시가 아홉 살이던 해에 “돈을 벌기 위해” 오클라호마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떠났고, 가족은 어머니와 큰 아이들의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야 했다. 베시는 6㎞ 남짓 떨어진 흑인학교를 걸어 다녀야 했고 면화 수확 철이면 일을 거드느라 결석하기 일쑤였지만, 읽고 쓰기와 수학 실력이 남달랐다고 한다. 18세에 흑인대학인 오클라호마 농업ㆍ일반대학(현 Langston대)에 진학했지만, 한 학기 만에 돈이 떨어져 중퇴했다.

오빠들이 살던 시카고로 건너간 23세(1916년)의 그는 이발소 매니큐어리스트(네일아티스트)로 일하던 중 1차 대전 참전 파일럿들의 이야기를 듣고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 학비를 모으기 위해 낮일 외에 칠리가게 야간 점원으로도 일했다. 흑인, 더욱이 흑인 여성을 받아주는 비행학교는 없었다. 그는 ‘시카고 디펜더’라는 주간지를 발행하던 흑인 변호사 로버트 애버트(Robert Abbott) 등의 도움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파일럿이 됐다. 하지만 일할 곳이 없었다.

1922년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고급 비행기술을 익힌 뒤 귀국한 그는 ‘반스토밍(barnstorming)’이라 불리는 곡예비행 조종사가 됐다. 급강하와 회전강하, 비행 중 복엽기 날개에 오르기 등 묘기를 선뵈는 쇼 조종사였다. 그는 22월 9월 여성 최초로, 미국 에어쇼에 참가하는 등 남성과 견주어 손색 없는 곡예비행사로 명성을 날렸다.

그의 꿈은 자신의 비행기를 갖는 것과 여성 파일럿 양성학교를 세우는 거였다고 한다. 22년 4월 그는 복엽기 ‘커티스JN-4’를 구입해 첫 꿈을 이뤘다. 하지만 기체가 워낙 낡은 데다 정비사 실수까지 겹쳐 4월 30일 에어쇼 시험비행 도중 조종석에서 튕겨 나와 추락사했다. 향년 34세. 그가 온전히 비행사로 활동한 건 4년이 채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자신을 위한 비행이 아니라 관객을 위한 비행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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