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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심판대 오른 평화적 해법

입력
2018.05.1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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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북미회담까지 신중히 지켜봐야

한미, 북의 명예로운 핵포기 유도 필요

마지막 핵 협상 속 정치공방은 거둬야

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1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거리에 도넛과 음료를 들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그린 벽화가 등장했다. LA=AFP연합뉴스
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1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거리에 도넛과 음료를 들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그린 벽화가 등장했다. LA=AFP연합뉴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미국의 기류는 북한의 핵 포기 의지를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로 나뉜다. 북한을 잘 알거나 협상 경험이 있는 대화파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불신하는 건 의외다. 얼마 전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와 워싱턴, 뉴욕을 돌아본 김종대 의원은 회의론자들이 70, 80%는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무력충돌이 우려되던 지난해 꾸준히 대화를 주문한 뉴욕타임스마저 ‘믿지 말고 검증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회의적인 워싱턴 전략가들에게 밀리진 않고 있지만, 순탄해 보였던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넘어야 할 파고는 여전히 높다.

미국의 신중한 분위기와 달리 서울은 낙관 분위기가 우세한 편이다. 진보와 보수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잣대가 대북관의 차이였다면, 지금은 김 위원장의 변화를 인정할 지가 새 기준이 되고 있다. 판문점 정상회담 드라마를 보면서 2018년 1월 1일 이후 김 위원장이 달라졌다고 보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백두산 들쭉술로 만든 폭탄주, 평양 옥류관의 서울지점 개설, 프리메이슨 자금의 대북투자 대기설까지 도를 넘어선 낙관론이 만발일 정도다.

대체로 서울은 4ㆍ27 판문점 정상회담을 계속 추동해갈 필요가 크지만, 워싱턴으로선 잘못하면 손해 보는 만남이라고 판단하는 흐름이 있다. 북한 역시 북미회담 무산을 경고하며 트럼프 정부를 믿어야 할지, 핵 포기의 대가가 충분할지 저울질하는 모습이다. 다만 북미회담 성공의 기대가 매우 높다는 게 최근 북한을 다녀온 데이비드 비즐리 유엔 세계식량계획 사무총장의 목격담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2차 북핵 위기가 터지자 영변 핵시설 공습론이 도졌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 급해지면서 북핵은 다행히 충돌이 아닌 평화적 틀인 6자 회담에서 다뤄질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더 거칠어진 북핵 위기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10여 년 만에 평화적 해법의 틀이 재가동된 것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확고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욱이 그 방향이 한반도 질서의 근본적 개편을 향하면서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게임은 사실상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다. 분명한 점은 남북미 3국의 생각이나 입장이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협상이 완료되기까지 북미 간 떠보기, 흔들기는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무력시위가 벌어질 개연성은 높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준비 등의 방식으로 주도권을 쥐려 할 것이란 시나리오도 있다. 앞서 1953년 휴전협정 조인 전에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북미 각축전은 치열했다. 1970년대 초 미국과 북베트남 간 평화협상도 기싸움 속에 진통을 거듭했다. 결국 미국은 B-52 121대로 이른바 크리스마스 북폭을 단행하고 나서 한달 뒤에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북핵 해법을 둘러싼 북미 간 진검 승부는 22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북미에 합리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북한에겐 굴욕 없는, 명예로운 비핵화의 길을 보장하고, 미국에겐 ‘비핵화’가 처음이자 마지막 의제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비록 상황이 낙관에 가까워 보이나 더 지켜봐야 하고, 무언가를 단정하기도 이르다. 한반도 주변에선 이처럼 회오리가 치는 데 정치적 미숙이 진영 논리와 결합한 국내 상황은 여전하다. 아직 이념의 굴레에 갇혀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1990년 10월 3일 베를린 제국의회의사당 앞에서 헬무트 콜 총리가 독일 통일을 선언할 때 그 옆에는 빌리 브란트 전 총리가 서 있었다. 보수의 콜과 진보의 브란트는 정치적 배경이 달랐지만, 독일이 하나의 국가라는 믿음은 다르지 않았다. 1982년 집권한 콜은 앞서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그 정신을 동독 붕괴 직전까지 그대로 계승했다. 독일통일은 급작스럽게 도둑처럼 닥친 게 아니었다. 북미협상이 잘 되지 못하면 후폭풍이 너무 클 지금은 불신의 덫을 놓고 정치공방을 펼 만큼 한가해 보이지 않는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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