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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내 안의 ‘소년’을 품는 이유

입력
2015.08.2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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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자꾸 늘어가고 있다. 아쉽게도 ‘용기’보다는 ‘안주’에 더 매달리는 내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온다. 나이 값에 대한 체면은 중년의 뱃살처럼 늘어만 가는데 더 나은 성장에 대한 열망은 점점 약해지는 내 꼴이 영 못마땅하기만 하다. 나는 잘 할 수 있는 일 앞에서는 꽤나 당당하지만 그렇지 못한 일에서는 무지무지 허둥댄다. 그래서인지 세월의 더께가 쌓여갈수록 남들에게 못나거나 모자란 모습을 내보이는 게 무척이나 두렵다. 험한 현장쯤 마다하지 않고 누비던 왕년의 모습은 점차 가뭇해지고 “이 나이에 무슨 일을 벌이냐” 하면서 그다지 달콤하지도 않은 현실에 슬며시 안주해가는 나의 나태함이 아프게 눈에 밟힌다.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현재의 내 자신이 아닌 맑고 투명한 소년의 세계를 지닌 ‘나’를 찾아 손을 잡아 끄는 것이다. 소년인 나는 의식의 성장을 위한 꿈을 찾아가는 일에 두려움이 없다. 단지 철없는 어린 시절의 막무가내가 아닌, 원형질로서의 내 자신이자 의미 있는 삶이길 소망하는 ‘존재자아’인 것이다. 내가 보낸 것인지 ‘나’를 떠난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소년은 내게서 멀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아예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마다 흠칫 놀라 가슴을 부여잡는다.

최근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그 ‘소년’을 찾아 품에 안았다. 늦은 나이에 심리상담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한 것이다. 이미 어느 정도 궤도를 찾아 가던 중이었지만 사진행위를 자신의 삶과 마음을 살피는 쓰임의 도구로 활용하길 권유하는 ‘사진심리상담사’로서 더 깊은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주에 열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보니 쑥스럽게도 동기 13명 중 내가 최고령(몇몇 사람은 나를 교수님으로 오인하기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부분 20, 30대인 동기들과 전공 선배들은 강의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지무지 허둥대는 나를 동기대표로 선출하는 관용을 베풀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로 스물 두 살의 나이차가 있는 여자 동기생 총무와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외칠 수 있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늦깎이 학생의 본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가슴 속 내 자신인 ‘소년’이 격려의 뜻으로 내 어깨를 감싸 안은 것은 물론이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5·18 고문피해자 분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적 트라우마와 맞서게 하는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본인 스스로 대면의 도구인 사진행위를 통해 상처로 점철된 기억과 용기 있게 마주하면서 일부나마 고통을 덜어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사진 속 카메라를 든 이는 1980년 ‘오월 광주’의 시민군이자 고문피해자인 황의수씨이다. 이미 환갑이라는 나이를 훌쩍 넘긴 채 자신을 포함한 아홉 명의 5·18 고문피해자들의 사진 앞에서 카메라를 든 그는 무엇을 응시하고 있었을까. 한국현대사의 치부인 국가폭력과 정면으로 맞섰던 ‘그’일까. 아니면 온전히 평온한 일상을 이루어 가며 자신의 꿈을 설계하던 ‘소년’ 자신이었을까. 알 길은 없으나 얼추 짐작은 된다.

곧 9월이다. 다시 품에 안긴 ‘소년’과 더불어 이제 맘껏 가을바람을 누리고 싶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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