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맞아 나들이 나온 시민들 "계속된 진보·보수 집회로 피로"
정치권은 갈등 조정 못하고 일부 언론은 무책임한 보도
13일 오후 유영환(37ㆍ가명)씨는 아내와 함께 여섯 살, 네 살 된 두 아들을 데리고 서울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평소 이곳에서 뛰놀기 좋아하는 큰 아들의 성화 때문이다. 거의 두 달 만에 찾은 광장 풍경은 낯설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농성 천막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바로 옆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특별법 제정 반대 구호를 외치는 곳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유씨는 “편한 마음으로 광장을 다시 찾기 어려울 것 같다”며 발길을 돌렸다.
주말을 맞은 광화문광장은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진영의 집회로 어수선했다. 가족들과 나들이 온 상당수 시민들은 ‘정치 염증’을 토로하며 광장을 떠났다. 시민들은 사건 발생 5개월이 되어 가지만 여전히 길바닥에 나앉아 있는 세월호 유가족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눈 앞에 펼쳐진 갈등의 현장에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모(44)씨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이해하지만 집회가 오래 지속되면서 알 수 없는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라며 “여기에 보수 진영이 반대 집회를 열면서부터 광화문광장에 아예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모(35ㆍ여)씨는 “특별법 제정을 두고 보수와 진보세력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는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관심을 끄고 살 생각”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비정치적 이슈인 세월호 참사와 특별법 제정을 놓고 정쟁을 벌이면서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오해와 피로감을 야기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가족이 주장한 세월호특별법의 기본은 시종일관 진상규명이었는데 정치권이 의사자 지정, 대학특례입학, 보상금 등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순수성을 훼손했다”며 “이로 인한 갈등의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고 꼬집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광화문광장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조차 전혀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치의 복원을 촉구했다.
일부 언론의 책임론도 대두됐다. 단식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벌인 극우 성향 일베(일간베스트) 회원 등의 ‘폭식투쟁’ 같은 자극적 퍼포먼스를 보수와 진보의 갈등 프레임으로 몰아가 시민의 피로도를 극대화했다는 비판이다.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일부 보수 언론이 정부 대처에 문제를 제기하는 유가족 등을 사회 분위기를 흐리는 이들로 몰아세우고 있다”며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키지 말고 진상 규명을 위해 책임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46일간의 단식을 멈춘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이날 열린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촛불문화제에서 “일베 등 저희를 반대하는 분들에게도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특별법은 꼭 제정돼야 한다”며 “처음이나 지금이나 억울하게 죽은 유민이를 위해 정부와 싸우고 있는 것이지 절대 정치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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