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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호모 엠파티쿠스

입력
2018.07.27 10:33
수정
2018.07.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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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픔을 겪던 친구 하나가 하소연을 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었지만 좀체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가 큰 탓이었다. 그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맞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기쁨, 슬픔, 아픔마저도.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듣기에만 좋은 가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존재다.

성선설을 주장했던 맹자는 선함은 네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가르쳤다. 남의 불행을 측은하게 여기는 측은지심,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수오지심, 겸손하고 양보하는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시비지심이다. 타인의 관계 속에서 측은지심, 사양지심이 나타나고 남을 보고 비교하면서 부끄러워할 줄 알고 시비를 분별하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해도 내가 남이 될 수 없고 남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역지사지, 이심전심으로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른바 공감 능력을 갖는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종이 된 것은 뛰어난 공감 능력 때문”이라고 단언하며 공감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호모 엠파티쿠스’라 불렀다. 한편 과학자들은 인간의 공감능력을 타고난 본성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할 때 자신이 그 행동을 할 때와 똑같이 작동하는 신경세포인 ‘거울 뉴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사람을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성적인 사고, 언어를 사용해 타인과 소통하는 것, 도구의 발명과 사용 등은 모두 인간의 위대한 능력이지만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에 가능하다. 외딴 섬에 혼자만 살 때의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하면 조금 더 영리한 동물 정도에 불과하다. 사회에 소속돼 더불어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을 통해 탄생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다. 자유와 평등만으로는 불완전하며 반드시 박애가 뒷받침돼야 한다. 박애는 오늘날 연대의 가치로 발전했다. 연대는 자비나 동정심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공감이다. 공감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연대가 이루어진다.

누구나 한 번쯤 죽을 것 같은 슬픔과 아픔을 겪은 적이 있고, 주변 도움이 절실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픔은 개인적으로 겪는 것이더라도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아픔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걸 이겨 내는 것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교수가 실증적 연구사례를 제시하면서 “서로의 존재가 연결될수록 더 건강해지고 오래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책의 명언은 단연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땐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신영복 선생이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했던 말에서 빌려왔다. 진정한 친구는 기꺼이 함께 비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이다. 최근 부산의 한 아파트 경비원들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해 화제가 됐다. 폭염의 날씨에 시공업체가 에어컨을 놓으려 했지만 이 아파트는 에어컨 없는 집이 더 많은 영구임대아파트인지라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며 한사코 에어컨을 마다했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건강한 사회란 이런 경비원들처럼 함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이가 많은 사회를 말한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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