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양효진의 동물과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 날지 못하는데 행복할까… 정기적으로 깃 잘리는 동물원의 새

알림

[양효진의 동물과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 날지 못하는데 행복할까… 정기적으로 깃 잘리는 동물원의 새

입력
2017.12.22 14:00
14면
0 0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 앞에 7, 8m높이의 거대한 금색 새장이 있다. 특이하게도 동물이 없는 새장을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한시적으로 전시하는 중국 예술가의 작품이었다. 제목은 ‘금빛으로 빛나는 새장(Gilded cage)’.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사전적인 뜻은 ‘유복하나 자유가 없는 환경’이었다.

지난 10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를 찾은 사람들이 중국 예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인 ‘금빛으로 빛나는 새장(Gilded Cage)’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를 찾은 사람들이 중국 예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인 ‘금빛으로 빛나는 새장(Gilded Cage)’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목을 들으니 동물원의 새들이 떠올랐다. 센트럴파크 동물원 열대우림관 입구에서 본 금강앵무 세 마리도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잡아 먹힐 염려도 없고 먹이도 마음껏 먹을 수 있지만 날아다니기에 너무 협소한 공간이다. 벽에 그려놓은 푸르른 그림이 자연을 대신했다. 인간이 오래 전부터 새를 가두기 위해 사용해왔던 ‘새장’의 강력한 이미지 때문에 좁은 곳에 앉아있는 새들이 사람들에게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다. 새는 대부분의 포유류보다 더 넓은 공간을 쓰는데도 말이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은 금강 앵무들이 있는 열대우림관 벽에 자연을 대신해 그림을 그려 놓았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은 금강 앵무들이 있는 열대우림관 벽에 자연을 대신해 그림을 그려 놓았다.

일부 날지 못하는 새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새는 하늘을 날기 위해 진화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이빨도 없고 뼈의 일부도 비어 있다. 몸 속에 원활한 비행을 위해 공기를 비축하는 기낭(氣囊)이 있으며 깃털 달린 날개로 비행을 조절한다.

날기 위한 모든 능력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새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동물원에 완전한 날개를 가지고도 날 기회가 없는 새가 있는가 하면 불완전한 날개 때문에 날지 못하는 새도 있다.

그림 3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시 동물원 애니멀킹덤에 있는 금강앵무들. 이렇게 트인 곳에 새가 앉아 있다면 날개깃을 잘랐을 확률이 높다.
그림 3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시 동물원 애니멀킹덤에 있는 금강앵무들. 이렇게 트인 곳에 새가 앉아 있다면 날개깃을 잘랐을 확률이 높다.

동물원에서 한 쪽 날개 깃을 잘라 놓은 새들은 균형이 맞지 않아 날지 못한다. 이런 새들은 사진을 찍는데 이용되거나 야외에 전시된다. 좁은 공간에 가둘 필요가 없고 보기에 자연스럽다.

동물원들은 몇 달 만에 다시 자라는 새들의 깃을 정기적으로 잘라준다. 그 때마다 새를 붙잡을 수밖에 없다. 새들은 깃을 잘리는 것은 아프지 않지만 잡힐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어떤 동물원은 날개 뼈 끝부분을 아예 잘라 버린다.

대표적인 새는 홍학. 동물원들은 오래전부터 홍학의 날개깃을 잘라 전시했다. 그래서 홍학을 타조처럼 날지 못하는 새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 내 홍학들은 오른쪽 날개 깃이 잘렸다. 날개 깃이 잘린 새들은 균형잡기 어려워 날지 못한다.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 내 홍학들은 오른쪽 날개 깃이 잘렸다. 날개 깃이 잘린 새들은 균형잡기 어려워 날지 못한다.

바람이 불면 홍학은 바람을 타기 위해 본능적으로 날개를 퍼덕인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날개로 날 수 없으니 이내 날개를 접는다. 과연 홍학은 현실을 받아들인 것인지 궁금하다. 그래도 시멘트나 철장을 벗어나 햇빛을 받으며 땅과 물을 밟고 사는 홍학은 꽤 편안해 보인다.

벨기에 파이리다이자 동물원에 여러 종류의 새가 한데 모여 있다. 동물원들은 새들을 위해 큰 건물을 짓는 등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벨기에 파이리다이자 동물원에 여러 종류의 새가 한데 모여 있다. 동물원들은 새들을 위해 큰 건물을 짓는 등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새들의 더 나은 환경을 위해 고민하던 몇몇 동물원들은 큰 건물을 짓거나 기둥을 세우고 전체를 망으로 덮어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여전히 야생에 비하면 좁지만 온전한 날개로 날 수 있다.

야생의 새들은 넓은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지만 총에 맞거나 유리 건물에 부딪히고 전깃줄에 걸려 목숨을 잃는다. 유복하지만 자유가 없는 동물원 새들이 자유가 있지만 박복한 야생 새들보다 나은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 사람들 때문에 일그러진 지금의 삶보다 충분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글ㆍ사진 양효진 수의사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동물원 큐레이터로 일하고, 오래 전부터 꿈꾸던 '전세계 동물 만나기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자연보호구역, 수족관, 농장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

동그람이 페이스북 바로가기

동그람이 포스트 바로가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