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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깨알 같은 엄지공주의 마법, 벽장서 세상 밖으로

입력
2018.01.31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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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 작가가 만든 비빔밥ㆍ구절판ㆍ떡국 등 영상, IOC 페북서 평창 홍보 맹활약

세탁소 운영 아버지 그리워 재봉틀ㆍ다리미 주문해 납골당 제사상에 올리고

좋아하는 연극배우 위해 무대ㆍ소품 등 똑같이 재현해 단 하나뿐인 선물 전하기도

'묭스' 장미영씨가 제작한 비빔밥 미니어처 동영상이 IOC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왔다. 장미영씨 제공
'묭스' 장미영씨가 제작한 비빔밥 미니어처 동영상이 IOC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왔다. 장미영씨 제공

“비빔밥. 재료는 시금치, 고사리, 양파, 고기 등 다음과 같습니다. 비빔밥은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지고 사랑 받는 음식입니다. 비빔은 섞었다(Mixed)는 뜻이고, 밥은 쌀(Rice)을 뜻합니다.”

2016년 11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1분45초짜리 비빔밥 소개 동영상. 평범한 음식 소개라고 여기기 쉬운 이 게시물은 13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세계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엄지손톱보다 작은 프라이팬과 그 프라이팬에 쏙 들어가는 미니 재료들을 능수능란 다루는 ‘미니어처 장인’의 손이 등장해서다. ‘왜 이렇게 작게 만들어?’라는 외국인 댓글에 IOC 공식 페이스북 계정은 ‘한국에서 열릴 다음 (평창)동계올림픽의 맛을 조금만 보여주려고’라는 재치 있는 답을 달았다. ‘평범한 주방에서 거인이 요리하고 있는 거 아냐?’라며 작디작은 비빔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해당 영상 속 ‘거인 손’의 주인공은 미니어처 작가 ‘묭스’ 장미영(41)씨. 6년 전부터 미니어처를 만들기 시작해 관련 서적도 출간, ‘미니어처 장인’이라 통한다. 장씨는 “IOC 홍보부에서 먼저 미니어처로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다”고 당시 사연을 소개했다. IOC 해당 페이지에선 비빔밥 외에 장씨가 만든 미니어처 구절판, 미니어처 떡국 영상도 볼 수 있다. “일반 음식보다 미니어처 동영상이 더 재미있지 않겠나”라고 되물은 장씨는 “모두 진짜 식재료로 만든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라고 강조했다.

“어차피 실제 사용하지도 못할 거 만들어서 뭐해?”라는 비아냥이 무색하게 미니어처들은 이미 벽장을 뛰쳐나와 각종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영상 및 광고에 활용되는 것은 물론, 공간 인테리어 소품이나 의미 있는 선물로도 각광받고 있다. 장씨와 같이 미니어처 작품을 의뢰 받아 제작, 판매하는 공방들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미니어처가 단순 취미에 그치지 않고 소비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묭스' 장미영씨가 제작한 제사상 미니어처. 장미영씨 제공
'묭스' 장미영씨가 제작한 제사상 미니어처. 장미영씨 제공

납골당 제사상이 대표적이다. 추석이나 설을 앞두고 고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납골당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미니어처 제사상을 주문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 제사상 외에도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을 미니어처로 제작해 납골 봉안 공간에 넣어두기도 한다. 장씨는 “기본적으로 제사상 주문이 가장 많다”라면서도 “보일러 수리공이던 장인 어른을 위해 보일러 관련 도구를 만들어 달라는 사위, 세탁소를 운영했던 아버지를 위해 다리미와 재봉틀을 주문한 딸이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묭스' 장미영씨가 제작한 수리공구 미니어처. 장미영씨 제공
'묭스' 장미영씨가 제작한 수리공구 미니어처. 장미영씨 제공

경기 성남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백곰작가’ 김성중(41)씨는 “납골당에 넣기 위해 ‘영원히 지지 않는’ 미니어처 꽃바구니나 꽃다발 등을 주문하는 고객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경기 고양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하향숙(51)씨도 “요즘은 고인이 생전 즐겨 쓰던 취미생활 용품이나 좋아했던 음식을 많이 주문하고 있다”고 했다.

'백곰작가' 김성중씨가 제작한 '옥탑방 고양이 연극무대' 미니어처. 미니어처 드림 제공
'백곰작가' 김성중씨가 제작한 '옥탑방 고양이 연극무대' 미니어처. 미니어처 드림 제공

미니어처는 누군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선물이 되기도 한다. 김성중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주문제작 작품으로 연극 ‘옥탑방 고양이’ 연극무대를 꼽았다. 연극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선물하기 위해 팬이 ‘연극무대를 똑같이 재현한’ 작품을 의뢰했단다. 김씨는 열고 닫을 수 있는 문과 창문, 옥상 외곽 간접조명은 물론, 삼선운동화, 가스레인지, 노트북, 맥주 등 연극에 들어간 모든 소품을 미니어처로 똑같이 구현했다. 의뢰인과 함께 연극을 본 뒤 직접 미니어처를 전달했다는 김씨는 “선물을 받은 배우, 의뢰한 팬이 모두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제작자로서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백곰작가' 김성중씨가 만든 '도민준 서재' 미니어처. 미니어처 드림 제공
'백곰작가' 김성중씨가 만든 '도민준 서재' 미니어처. 미니어처 드림 제공

미니어처는 인테리어도구로 공간을 아름답게 꾸며줄 뿐 아니라, 다른 사물들을 더욱 빛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장미영씨의 미니어처 작품들은 책 홍보를 위해 지난해 6월 광화문 교보문고 여행서적 코너에 전시됐다. 2m 크기 세계지도 위 파리여행 책 옆에 에펠탑과 라타투이(프랑스 프로방스 지역 대표 요리) 미니어처를, 이탈리아여행 책 옆에 피사의 사탑과 피자 미니어처를 함께 전시하는 식이었다. 장씨는 “‘미니어처를 놓은 뒤 책이 엄청 많이 나갔다’고 여행서적 코너 직원이 말하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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