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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베르타 멘추 툼의 노벨상

입력
2017.01.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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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9

과테말라 마야 소수부족 출신 리고베르타 멘추 툼이 1992년 12월 9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과테말라 마야 소수부족 출신 리고베르타 멘추 툼이 1992년 12월 9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과테말라 내전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마야 소수부족 인권을 위해 헌신한 리고베르타 멘추 툼(Rigoberta Menchu Tum, 1959~)이 1992년 12월 9일 노벨 평화상을 탔다. 그 상은 미국과 친미 군사독재정권에 희생된 이들과 여전히 폭력과 살해의 공포에 신음하던 모든 과테말라인에게 바친 인류의 양심이었다.

내전은 1954년 미 중앙정보국(CIA)과 해병대가 우파 반군을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앞서긴 독재와 다국적 농업기업 및 지주의 수탈, 정치적 부패 끝에 85% 지지율로 아레발로 베르메호 민주정부가 들어선 것은 1944년이었다. 아레발로 정부와 50년 집권한 하코보 좌파정부는 노조 파업권과 언론ㆍ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광범위한 토지개혁, 즉 대토지 소유주들의 농지를 유상 몰수해 땅 없는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정책을 펼쳤다. 그것이 바나나플랜테이션으로 안정적 수익을 얻던 유나이티드 프룻(UFC) 등 다국적 기업들의 분노를 샀다. 그들 뒤에 미국이 있었고, 미국은 과테말라 민주주의보다 반공이 더 중요했다. 그 끝이 쿠데타였다. 좌파 개혁주의 세력의 저항과 광범위한 게릴라전이 시작됐다. 54년 집권한 친미주의자 아르마스는 토지를 기업들에게 환원했고, 좌파 정당을 해산했고, 노골적인 테러정치를 펼쳤다.

멘추는 과테말라 서북부 엘 키체 출신 마야 원주민이다. 반군 거점을 없애기 위한 정부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그는 가족을 잃고 80년대 초 니카라과로 망명, 81년 멕시코로 이주한 뒤 조국 현실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83년의 구술사 ‘내 이름은 리고베르타 멘추, 내 의식은 이렇게 탄생했다’는, 훗날 일부 내용이 과장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키체족이 겪은 수 세기 억압과 배제의 역사, 현재의 과테말라 현실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였다. 84년 아프리카통일기구(OAU)의 난민인권선언인 ‘카르테헤나 선언’이 만들어졌다.

내전은 96년 집권한 중도 우파 아르주 이리고옌 정부에 의해 36년 만에 끝이 났다. 그 사이 마야 원주민 등 15만 명이 희생됐고 5만 명이 실종됐다는 사실은 이후 유엔 역사규명위원회 보고서 ‘과테말라 침묵의 기억들’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었다. 멘추의 노벨상 수상으로 저 역사의 전환을 촉구하는 함성이 커졌다. 멘추는 상금으로 인권재단을 설립했고, 유엔은 이듬해인 93년을 ‘세계 원주민의 해’로 지정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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