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 기자

등록 : 2018.06.07 04:40
수정 : 2018.06.07 17:57

골반 틀어질 때까지 왼발 연습… 지단 “아시아에 이런 선수가”

[너, 어느별에서 왔니] <3>대표팀 막내 이승우

등록 : 2018.06.07 04:40
수정 : 2018.06.07 17:57

초6년 때 제주대회 득점왕 놓치자

은사 최광원 감독 “반쪽선수” 자극

한 달 동안 왼발만 써 양발선수로

남아공 유소년 축구대회서 득점왕

FC바르셀로나 유스팀 입단

“A매치 데뷔전 제 실력 발휘 대단”


[편집자주] 신태용호는 허약한 수비조직력 때문에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3전 전패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비아냥을 듣지만 태극전사들의 면면을 보면 너무 야박하다는 평가다. 특히 중원과 공격진에는 역대 한국 축구에서 나오기 힘든, 재능 있는 선수들이 가득하다. 아시아 출신 중앙 미드필더는 유럽 빅 리그에서 통하기 힘들 거란 편견을 보기 좋게 깬 ‘캡틴’ 기성용(29ㆍ스완지시티), 세계적인 공격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손흥민(26ㆍ토트넘)이 대표적이다. 황희찬(22ㆍ잘츠부르크)과 이승우(20ㆍ베로나)는 ‘미완의 대기’지만 도전적인 돌파와 빠른 드리블 등 결이 다른 플레이로 팬들의 지지를 받는다. K리그를 호령하는 이재성(26ㆍ전북)은 지금 당장 유럽 무대에 내놔도 손색없다. 은사와 가족, 지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들 5인방의 성장기와 숨은 뒷이야기를 소개하는 <너, 어느 별에서 왔니>를 연재한다.

국가대표 공격수 이승우가 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레오강 슈타인베르크 스타디온에서 훈련하고 있다. 레오강=연합뉴스

5일 오전(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레오강의 스테인베르크 슈타디온.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전속력으로 달린 뒤 오른발과 왼발로 슈팅을 번갈아 시도하는 훈련을 했다. 선수들의 평소 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 이승우의 왼발을 떠난 볼이 낮고 강하게 날아 골문에 꽂히자 취재진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이승우는 신태용호의 막내다. A매치 경험은 단 2회. 그러나 가장 주목 받는 스타다. 등번호도 ‘에이스의 상징’ 10번을 받았다.

이승우는 지난 달 28일 온두라와 평가전에 깜짝 선발 출전했다. 날고 기는 스타들도 A매치 데뷔전에서는 대부분 눈앞에 하얘진다고 고백한다. 이승우는 달랐다. 경기 초반 잠깐 조심스러운 듯 했지만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며 손흥민의 결승골을 도왔다. 한 베테랑 에이전트는 “A매치 데뷔전에서 주눅들지 않고 제 실력 발휘 하는 선수는 처음 본다”고 했다. 아버지 이영재씨는 “승우가 성인리그 데뷔전(2017년 9월 라치오전. 후반 26분 교체 투입)을 치를 때 관중석에서 초초하게 지켜봤는데 정작 승우는 아무렇지 않게 뛰더라. ‘내 아들이 원래 저렇지’라고 새삼 느끼고 나니 A매치 데뷔전은 긴장이 안 됐다”고 웃었다.

이승우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지난 달 30일 전주에서 있었던 팬 공개 훈련 뒤 함께 셀카를 찍은 이승우. 전주=연합뉴스

이승우는 어렸을 때부터 ‘강심장’이었다. 대동초 최광원 감독은 이승우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를 스카우트 했다. 당시 최 감독은 강경수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였는데 다른 유소년 클럽에서 뛰던 이승우 경기를 보려고 전국 팔도를 돌았다. 최 감독 눈을 사로잡은 건 적극성이었다. 팀이 지고 있는데 공이 나가면 이승우는 가장 먼저 달려가 주워왔다. 한두 살 위 형들에게도 “빨리 빨리 하자”고 독려했다. 그런 성격을 눈 여겨 본 최 감독은 그 전까지 미드필더였던 이승우를 대동초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변신시켰다.

어린 시절의 이승우. 이승우 인스타그램 캡처.

이승우가 6학년이 되던 2010년 2월 대동초는 전국대회인 제주 칠십리배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이승우는 다른 학교 선수에게 밀려 득점왕을 놓쳤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최 감독은 “대동초가 우승하고 득점왕 못 탄 건 네가 처음”이라며 “네가 오른발 밖에 못 쓰는 ‘반쪽 선수’라 그렇다. 왼발로 때릴 슈팅을 접어서 오른발로 차다가 실패한 것만 넣었어도 득점왕이 됐을 것”이라고 일부러 강한 자극을 줬다. 이승우는 다음 날부터 왼발로만 공을 차기 시작했다. 최 감독은 “한 달 동안 왼발만 쓰다가 결국 왼쪽 골반이 틀어져서 한 동안 쉬었다. 그 정도로 독종”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대동초 최광원(오른쪽) 감독과 이승우. 최광원 감독 제공

왼발 킥까지 장착한 이승우는 펄펄 날았다. 2010년 9월 남아공에서 열린 다농컵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에 대동초가 한국 대표로 참가하며 그는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40개 넘는 세계 유수의 클럽이 참가한 대회에서 이승우는 득점왕을 차지했다. 최 감독은 “시쳇말로 승우가 다른 나라 선수들을 가지고 놀았다”고 했다. 2-0으로 뒤지다가 이승우가 4골을 넣어 4-2로 역전한 경기장에는 대회 홍보대사 지네딘 지단(프랑스)이 와 있었다. 지단이 따로 이승우를 불러 “이런 선수가 아시아에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이 대회 활약을 바탕으로 이승우는 약 1년 뒤 스페인 축구명문 FC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 입단한다. 최 감독은 “왼발이 없었으면 지금의 이승우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레오강 슈타인베르크 스타디온에서 훈련 도중 대화를 나누는 손흥민과 이승우. 레오강=연합뉴스

이를 악물고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소화하는 이승우(왼쪽). 오른쪽은 문선민. 레오강=뉴스1

최 감독이 제자들에게 양 발을 다 쓰라고 강조하는 건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씨 영향을 받아서다. 최 감독과 손씨는 학창시절 충남대표로 소년체전에 함께 출전해 친해졌고 지도자가 된 뒤에도 인연을 이어갔다. 손씨는 1년 후배인 최 감독에게 “우리는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 한 발만 쓰는 ‘반쪽 선수’로 살았지만 제자들은 그렇게 키우지 말자”고 늘 강조했다. 어릴 적 아버지 손씨 지도를 받은 손흥민도 왼발, 오른발 가리지 않는 슈팅 덕에 세계 톱 레벨의 공격수 반열에 올랐다. 물론 이승우의 왼발 킥을 지금의 손흥민과 비교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토양에서 보기 드문 두 선수가 탄생했고 러시아월드컵에 나란히 출전하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풀뿌리 지도자들의 신념이 맺은 열매다.

이승우는 지난 해 5월 전주에서 열린 U-20 월드컵 2차전 아르헨티나와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를 연상케 하는 50여m 드리블에 이은 감각적인 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축구 팬이 선정한 ‘2017년 한국 최고의 득점’이었다. 그 때 이승우는 등번호 10번을 달고 있었고 상대를 무너뜨린 마지막 칩 슛은 왼발이었다. 러시아에서도 이 장면을 또 볼 수 있을까.

지난 해 5월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와 경기에서 이승우가 50여 미터 드리블에 이은 감각적인 왼발 칩 슛으로 골을 터뜨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레오강(오스트리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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