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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창조’는 어디로 갔나요?

입력
2016.09.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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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4월9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대로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서 태블릿피씨 더빈 시동 단추를 누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4월9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대로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서 태블릿피씨 더빈 시동 단추를 누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같은 해 11월 박 대통령의 영국 방문을 앞두고 정부가 대통령과 영국 유명 작가 조앤 롤링의 만남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은밀한 소식을 정부 관계자에게 들었다. 롤링은 언론과의 인터뷰도 꺼리는 은둔형 작가이기에 ‘빅 이벤트’는 성사되기 어려우리라 예상했다. 취재원이 전한 내용의 사실 여부야 어쨌든 둘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국정운영 전략으로 내세웠을 때 어리둥절하면서도 반가웠다. 창조라는 수식의 정체가 모호했으나 문화와 관계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박 대통령이 판타지소설 ‘해리 포터’ 연작으로 약 300조원의 경제효과를 만들어낸 롤링을 만나고자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추측은 확신이 됐다. 콘텐츠의 경제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부가 되리라 생각했다.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가 영화 ‘쥬라기공원’이 거둔 수익이 현대자동차 150만대 판매액과 맞먹는다며 영상산업 투자를 강조하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창조 뒤에 경제라는 단어가 뒤따르니 문화에 대한 좀 더 과감한 투자와 보다 체계적인 정책이 수립되리라 기대했다.

첫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부터 달랐다. 대선 공신이 아닌 반골기질 강한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이 임명됐다. 정치색이 엷고 30년 가량 문화행정 한 길을 걸었던 인물이라 나름의 정책을 소신 있게 펼쳐내리라 믿었다. 활동 목적이 불명확한 문화융성위원회라는 조직이 새로 만들어졌을 때도 창조경제를 위한 강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여겼다.

대통령의 행보도 기대를 키웠다. 집권 첫 해 정치적 해석의 여지가 전혀 없는 애니메이션영화 ‘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과 ‘넛잡’을 관람했다. 산업적 토대가 약한 국내 애니메이션계를 주목하며 국민들에게 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을 새삼 각인시키는 듯했다. 2014년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의 날로 지정해 문화 활동을 권장했다. 그리고… 희망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콘텐츠 산업 육성은커녕 문화계 곳곳이 시끄러웠다. 국내 대표적인 문화행사로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부산시가 개입하면서 침몰 위기까지 갔다. 1년 반 넘게 부침을 겪고 조직을 재정비했으나 아직 갈등의 불씨가 뜨겁다.

여러 문화단체장의 오랜 공석은 실망을 절망으로 바꾸어놓았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재공모를 거치며 1년 가량 빈 자리였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후임을 찾지 못해 9개월 동안 사실상 행정공백 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자리에 걸 맞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권 코드에 제대로 맞는 사람을 물색하느라 단체장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는 힐난이 문화계에서 나왔다.

문화정책의 수장도 절망감을 깊게 만들었다. 유진룡 장관은 2014년 후임이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면직됐다. 유 전 장관의 후임 김종덕 장관은 지난 5일 이임식에서 “(2년 동안)일 폭탄에 화장실조차 편하게 다녀올 처지가 못 되었다”고 밝혔으나 정작 문화계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뚜렷한 업적 대신 ‘괄목홍대’(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인 김 장관 임명 뒤 홍익대 출신 인사가 문화단체 주요 자리를 많이 차지했다는 의미)라는 불명예스러운 신조어가 재임 내내 따라다녔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 임명된 조윤선 문화부 장관의 등장도 뜨악하다. 오페라와 미술 애호가인 조 장관이 자신의 문화적 이상을 문화부에 이입하기엔 남은 시간이 짧다. 개각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문화부 장관을 바꿨다는 비판이 뒤따르는 이유다.

이쯤에서 궁금해질 수 밖에. 정권 초기 요란하게 외쳤던 창조경제의 창조는 어디로 갔는가. 전국 17개 지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짓고, 새 국가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만든 건만으로 창조경제는 완성된 것인가. 창조경제는 이 정권이 남길 큰 의문부호 중 하나다.

라제기 엔터테인먼트팀장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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