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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던 반가운 맛...서울 3대 떡집을 찾아서

입력
2017.01.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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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일제 쌀 수탈 겪으며 신세 추락

공장 떡집 늘며 맛 하향 평준화

낙원떡집ㆍ비원떡집ㆍ경기떡집

代 이으며 맛ㆍ자존심 지켜

설 앞두고 활기 모락모락

서울 낙원동 낙원떡집이 내놓은, 디저트 케이크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떡들. 딸기 포도 녹차 백련초 아몬드 등 색다른 재료들과 떡의 궁합이 시각과 미각을 자극한다. 강태훈 포토그래퍼(Afro Studio)
서울 낙원동 낙원떡집이 내놓은, 디저트 케이크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떡들. 딸기 포도 녹차 백련초 아몬드 등 색다른 재료들과 떡의 궁합이 시각과 미각을 자극한다. 강태훈 포토그래퍼(Afro Studio)

“떡 사오 떡 사오 떡 사려오. 정월 보름 달떡이요, 이월 한식 송병(松餠)이요, 삼월 삼진 쑥떡이로다. 떡 사오 떡 사오 떡 사려오. 사월 파일 느티떡에, 오월 단오 수리취떡, 유월 유두에 밀전병이라. 떡 사오 떡 사오 떡 사려오. 칠월 칠석에 수단이요, 팔월 가위 오려송편, 구월 구일 국화떡이라. 떡 사오 떡 사오 떡 사려오. 시월 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동짓날 새알심이, 섣달에는 골무떡이라. 떡 사오 떡 사오 떡 사려오.”

서울에 내려오는 ‘떡타령’이다. 각 달을 대표하는 떡이 나온다. 1월 대보름에는 절편의 일종인 흰색 달떡을, 2월 한식에는 차례상에 올릴 송편을 지었다. 3월 삼짇날에는 지천에 널린 쑥을 뜯어 쑥떡을 빚었고, 4월 석가탄신일에는 느티나무의 여린 새순을 쌀가루에 버무려 느티떡을 쪘다. 5월 단옷날에는 수레바퀴 모양을 찍은 수리취떡을, 6월 유두절에는 햇밀을 빻아 밀전병을 만들어 먹었다. 7월 칠석날엔 꿀물에 잘게 썬 떡을 담아낸 시원한 수단을 만들어 더위를 이겼다. 8월 한가위에는 햅쌀로 송편을 빚었다. 9월에는 흐드러지게 핀 국화 꽃을 따서 국화 화전을 부쳤고, 1년 중 가장 좋은 달이라는 10월 상달엔 가을 무와 팥고물를 켜켜이 쌓은 무시루떡을 쪘다. 11월 동짓날엔 팥죽을 쑤어 나이 만큼의 새알심을 넣어 먹었고, 섣달 그믐에는 골무만하게 떼낸 골무떡을 먹으며 한 해를 보냈다.

전남 장흥의 ‘떡타령’에는 지역별 대표 떡들이 나온다. “섬 중 사람은 조떡, 해변 사람은 파래떡, 제주 사람은 감제떡, 산 중 사람은 번추떡, 들녘 사람은 쑥떡, 충청도 사람은 인절미, 일본 사람은 모찌떡, 전라도 사람은 몽딩이떡, 강원도 사람은 강냉이떡, 경상도 사람은 송편떡, 평안도 사람은 수시떡.”

설날 하얗고 깨끗한 가래떡으로 떡국을 끓여 먹는 건 마음을 가다듬으며 한 해를 시작하자는 뜻이다.
설날 하얗고 깨끗한 가래떡으로 떡국을 끓여 먹는 건 마음을 가다듬으며 한 해를 시작하자는 뜻이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떡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같은 명제는 떡에도 해당된다. 요즘 어디를 가나 떡이 있다. 지하철역 행상도 떡을 팔고 시장 떡집에도 떡이 지천이다. 목이 좋은 곳엔 떡 전문 프랜차이즈 상점이 자리 잡고 있다. 설날에는 가래떡을, 추석에는 송편을 의식처럼 챙겨 먹는다.

그러나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우리는 떡을 잘 모른다. 다양한 버전의 ‘떡타령’에 나오는 떡들의 태반이 생소하다. 4년째 풍년이라는 쌀이 남아 돌아 골칫덩이라고 한다. 밥을 지어 먹고 남은 쌀로 떡을 지어 먹으면 될 일 아닌가. 하지만 세상이 너무 빨리 변했다.

쌀 문화권에서 떡이 흔한 것은 당연하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국가들에도 저마다 고유의 떡이 있다. 밥 짓는 기술보다 떡 굽는 기술이 더 빨리 발달한 덕분이다. 구운 떡은 신석기 시대에도 있었다. 빗살무늬 토기를 비롯한 곡물을 갈고 빻는 데 사용한 도구, 집터 안의 화덕 터가 그 증거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는 요즘 형태에 가까운 찐 떡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농기구가 발달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이후에는 진보한 쌀농사 기술에 힘입어 지배계층 사이에 쌀이 주식이자 부식으로 자리잡았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기의 고분들에서 시루의 흔적이 나왔다. 고려시대에는 곡물 식단이 보다 대중화했다. 떡은 각 절기와 명절의 의미를 담은 절식(節食)으로 자리잡았다. 떡의 부흥기는 조선시대였다. 다양성과 화려함을 추구한 조선시대 떡은 꽤나 사치스러웠다.

일제강점기 들어 쌀 수탈을 겪으면서 떡의 신세가 추락했다. 유교적 신분제가 와해됨에 따라 떡을 성대하게 차려내던 의례나 행사들도 줄어들었다. 떡은 뒷방으로 물러나 명절 음식이나 부분적으로 남은 전통 행사용 음식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떡이 된 것이다.

가족, 이웃들이 모여 벌이는 동네 잔치가 사라지면서 떡은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 외환위기는 떡집들에도 타격을 안겼다. 떡을 직접 만들어 팔아서는 채산이 맞지 않게 되면서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떡을 받아다가 파는 떡집들이 늘었다. 떡 맛의 하향 평준화가 시작됐다.

서울 수송동 비원떡집의 대표 떡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추 올린 갖은편, 두텁떡, 잣 올린 갖은편, 쌍개피떡.
서울 수송동 비원떡집의 대표 떡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추 올린 갖은편, 두텁떡, 잣 올린 갖은편, 쌍개피떡.

떡의 위기…꿋꿋이 버티는 떡집들

‘떡의 위기’속에도 자존심과 전통을 지키고 있는 떡집 세 곳을 찾아가 봤다. 세 곳 모두 설 연휴 대목을 맞아 활기가 넘쳤다.

서울 낙원동 1번지의 ‘원조’ 낙원떡집. 한일강제병합으로 궁에서 쫓겨난 수라간 궁녀들에게 떡을 배운 고이뽀씨가 차린 떡집이다. 하지만 떡집이 언제 영업을 시작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1919년을 창업연도로 임의로 정했다고 한다. 고씨 딸 김인동씨는 한국전쟁 중 피난지에서 떡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꾸렸다. 휴전 이후 서울에 정착한 김씨 가족은 낙원동에 낙원떡집 간판을 걸고 떡을 팔았다. 지금 자리로 가게를 옮긴 3대 주인 이광순씨는 요즘도 떡집에 나와 세월을 가득 품은 몸으로 주문 전화를 받고 배송을 관리한다. 4대를 이은 이씨 아들 김승모씨가 낙원떡집의 상표권을 내려고 알아보니, 전국에 400여 곳이 낙원떡집 간판을 달고 떡을 팔고 있었다고 한다.

웬만한 식당이 3년 안에 닫는 것을 감안하면 4대째 떡집은 존재만으로 특별하다. 수십 년 전 최고급으로 마련한 떡 써는 칼은 세월을 이기지 못해 칼날은 몽땅해지고 손잡이는 홀쭉해졌다. 떡집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떡은 고루하지 않다. 한 입 크기로 개별 포장된 설기와 영양떡, 인절미, 두텁떡은 색도 아름답고 모양도 세련됐다. 떡과 어울릴까 싶은 딸기며 포도, 녹차, 백년초 등의 재료들을 과감하게 사용한 개성 있는 떡들도 있다. 가격은 대부분 몇 천원대로 겸손하지만, 재료는 전부 국산이다. 떡의 주재료인 쌀은 서울 신당동 중앙시장의 오랜 단골 쌀집에서 질이 놓은 것만 골라 쓴다. 대표 떡은 쑥 인절미. 얼려서 보관한 쑥을 성기게 갈아 넣는데, 쑥이 씹힐 때마다 쑥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서울 수송동 비원떡집은 궁중음식 전문가인 한희순 상궁에게 떡을 배운 홍간난씨가 1949년 문을 열었다. 홍씨 조카 안민철씨가 17세부터 떡을 배워 2대를 이었다. 간판도 달지 않고 아는 사람들에게만 주문을 받아 운영하던 떡집을 세상 밖으로 내놓은 것은 3대를 이은 안상민씨다. 인사동 건너편 외진 곳에 자리한 이 떡집은 찾기부터 쉽지 않다. 외관은 갤러리나 카페처럼 보인다. 내부는 비좁아 앉을 자리도 없지만, 주인공인 떡들은 서양의 고급 디저트처럼 종이상자에 곱게 포장돼 반짝거리는 쇼케이스 안에 진열돼 있다.

얇게 썬 석이버섯과 대추, 밤, 잣, 대추, 당귀를 고명으로 사용한 비원떡집의 갖은 편에는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린다. 거피한 팥 고물을 묻힌 두텁떡에는 호두, 밤, 잣, 유자, 대추, 꿀이 듬뿍 들어 있다. 시그니처 떡인 쌍개피떡은 팥소를 넣은 흰떡과 쑥떡이 한 쌍을 이루며, 푸근하게 씹히는 식감이다. 납작하게 빚은 떡을 기름에 지진 부꾸미는 단아하면서도 화려하다. 가격은 착하지 않지만, 돈이 아까운 맛은 아니다. 역시 국내산 재료만 사용하며, 재료 하나하나 손수 만든다.

영화 속 외계인 이티(ET)처럼 못생겼다는 이티떡(가운데)과 단호박 소담떡(위), 모둠영양찰떡.
영화 속 외계인 이티(ET)처럼 못생겼다는 이티떡(가운데)과 단호박 소담떡(위), 모둠영양찰떡.

서울 망원동에는 세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지키고 있는 2대째 떡집 ‘경기떡집’이 있다. 1970년대 서울 종로 흥인제분소에서 떡을 배운 최길선씨가 1996년 개업했다. 최씨의 네 아들 중 셋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셋째 아들 최대한씨는 전국 최연소 떡 명장 타이틀을 갖고 있다.

단골들이 가장 먼저 집는 것은 이티떡. 최길선씨가 쑥굴레찰떡을 변형해 개발했다. 쫄깃한 찰떡을 흰 팥소가 감싸고 있는데, 생김새가 못나서 “이티처럼 생겼네”하다가 자연스럽게 붙은 이름이다. 모둠영양찰떡에는 말린 크랜베리가 들어간다. 서양 디저트에 주로 쓰이는 크랜베리가 밤, 콩, 호박, 잣과 오묘한 조화를 낸다. 설기인 샛노란색의 단호박 소담떡은 최대한씨가 2011년 개발해 명장 대상을 받았다.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없고,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있는 떡. 떡집들은 명절이 다가오면 새벽부터 종일 떡을 빚어 명절 상을 쫄깃하게 꾸며준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떡이 나온다. 고소한 떡 향기다. 떡이 반가운 명절이다. 어느새 잊고 있었던 떡의 맛을 가족과 함께 즐겨보자.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강태훈 포토그래퍼(Afr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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