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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 신은 변호사…축구 마케팅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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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 신은 변호사…축구 마케팅 나섰다

입력
2017.01.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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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력 사원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입사한 이종권씨가 2일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K리그 행정 일을 꿈꿨던 이 씨는 월급이 30% 이상 깎이는 것을 감수하고도 이직을 결심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최근 경력 사원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입사한 이종권씨가 2일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K리그 행정 일을 꿈꿨던 이 씨는 월급이 30% 이상 깎이는 것을 감수하고도 이직을 결심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판사, 배심원이 아니라 이제 스폰서를 설득 해야죠.”

프로축구연맹 ‘1호’ 변호사 직원 이종권(32)씨가 미소 지었다.

이 씨는 최근 경력 직원으로 프로축구연맹에 입사했다. 프로연맹이 자문변호사를 둔 적은 있어도 정식 직원으로 뽑은 건 처음이다. 더 눈에 띄는 건 그의 업무다. 법무 팀에 배치된 사내 변호사가 아니라 마케팅 팀에 발령받은 일반 직원이다.

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프로연맹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한 이 씨는 “내가 좋아하는 K리그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프로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전업’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첫 출근한 그는 “주변에서 선배 직원들이 축구 종사자들과 미팅하고 통화하는 모습을 보니 심장이 막 뛴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했던 이 씨는 고교시절(대신고) 단체로 응원을 다니며 ‘직관(직접 관전)’의 매력에 빠졌다. 작년 K리그 최우수선수 정조국(33)이 고교 1년 선배다. 본격적으로 K리그를 즐긴 건 군대를 다녀오면서부터다. 집에서 가까운 FC서울 홈 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종종 찾았고 큰 경기가 열릴 때면 지방 원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올 여름 휴가 때도 포항으로 내려가 포항 스틸러스 경기를 직접 봤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한 그는 로스쿨을 이수하고 2015년 1월, 변호사 시험해 합격해 그 해 3월부터 법무법인에서 근무했다. 주로 조세 관련 소송을 맡아 24시간이 모자라게 지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늘 K리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작년 9월 변호사 출신 직원을 뽑는다는 프로연맹 공고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조연상 프로연맹 사무국장은 “법률적인 전문성뿐 아니라 축구 산업에 대한 철학을 가진 멀티 플레이어 직원을 원했는데 적임자를 찾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의 반대가 만만찮았다. 부모님은 “변호사로 자리부터 잡고 나중에 자문 역할로 축구를 돕는 게 낫지 않느냐”고 걱정했다. 친구들도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 씨는 “더 나이 들면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할 거고 가족도 부양해야 하는데(그는 아직 미혼이다) 책임감이 더 크지 않겠느냐. 지금 아니면 도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직을 하며 월급이 30% 가까이 깎이는 것도 감수했다.

오히려 동료 변호사들은 그를 지지했다. 이 씨는 “우리나라 변호사가 2만 명이 넘는다. 변호사가 하나의 직업인 시대는 지났다. 많은 변호사들이 법률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동료들은 새로운 곳을 개척해보라며 응원해줬다”고 밝혔다.

그의 필드는 이제 법정이 아닌 축구 판이다. 마케팅 팀에 속했으니 발품을 팔며 스폰서를 만나야 한다. 프로축구 시장이 침체돼 있는 편이라 스폰서 앞에서는 늘 ‘을’의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이 씨는 자신감이 넘쳤다.

“K리그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이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중에 통일이 됐을 때 남북 주민들의 화합을 끌어낼 수 있는 종목으로 축구만한 게 있나요?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게 변호사입니다. 제 강점과 무기를 살려 스폰서를 설득해야죠.”

축구가 취미인 것과 직업으로 삼는 것은 엄연히 다를 거라는 우려에도 “그게 두려워 축구를 취미로만 남겨두고 싶지 않다. 그 정도의 스트레스는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프로축구에 종사하면 주말 반납은 필수다. 시즌 중 경기가 늘 주말에 열리기 때문이다. 이 역시 그는 개의치 않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주말 조기축구를 한 번도 못할 정도로 바빴어요. 업무강도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합니다. 그래도 여기서는 가끔 축구는 할 수 있겠죠? 아, 그리고 멋진 파카(프로연맹 후원 용품)도 하나 주던데요.(웃음)”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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