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라 하면 아무래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떠올리게 된다. 수출, 고용 등에서 하는 역할 그리고 전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이 두 기업은 한국경제에서 ‘빅2’라 불러도 손색없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빅2 기업들이 위기를 겪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으로 오르게 했던 ‘기술의 삼성’이라는 이미지가 ‘갤럭시노트7의 폭발 사고와 연이은 생산 중단’으로 실추되고 있는가 하면, 실적이 내려앉는 가운데서도 기업의 이익을 서로 더 많이 가지려는 노사 사이의 충돌이 매년 계속되고 있는 현대자동차 파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편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조선산업을 필두로 철강, 석유화학 등 다른 주력산업들이 줄줄이 구조조정의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지금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졌던 빅2의 불안한 움직임은 한국경제 전체를 흔들리게 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향후 운명을 좌우할 것만 같은 이들 빅2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시선은 어떨까. 기실 이들 빅2의 구성원들만 독야청청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은 항상 부러움이 섞인 질시의 대상이 되어 왔고, 최근 복잡한 국내문제를 피하면서 해외생산에 박차를 가해온 이들 기업의 행보도 마뜩잖게 여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들 빅2가 한국경제에 해 온 역할과 끼친 공로를 과소평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리다시피 하는 수출 측면에서 이들 두 기업이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고, 이들 기업이 직접으로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일하는 협력기업들이 간접으로 고용한 인력들의 규모를 생각해 보아도 한국경제는 이들 기업들에 큰 신세를 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들 빅2의 제품들이 세계 곳곳에서 애용되고 있는 현장을 보면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심리적 자신감을 안겨준 것은 덤으로 여겨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지금까지의 기여가 과실보다는 컸다는 다소 편향된 시각을 가진 필자이지만, 이들 빅2 기업들이 한국경제에 훨씬 더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 기업이 지금까지 성장하면서 한국경제에서 입은 혜택을 갚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꼭 해야 할 기여는 한국 산업생태계에 스필오버(파급) 효과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이들 빅2 기업들은 많은 협력기업의 기술능력을 키워왔기 때문에 충분한 스필오버 기여를 해왔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잘 살펴보면 자신들을 정점으로 하고 그 아래에 협력기업들로 이루어진 자신들만의 ‘닫힌 산업생태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만 그런 기여를 해 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 닫힌 생태계 속으로 진입하지 못한 다른 기업들이나 혹은 다른 경제주체들은 이들의 대단한 기술력이나 마케팅 능력 등에 접근할 수 없었고 이들의 자랑할 만한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들 생태계 밖의 기업들은 무서운 능력을 갖춘 이들이 자신들의 사업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기만 할 뿐 이들과 협력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실리콘밸리의 신생 거대기업들이나 심지어는 중국의 새로운 IT 거대기업들이 이른바 열린 산업생태계를 열어놓고 많은 다른 기업들, 스타트업들과 협력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들 빅2 기업들이 겪고 있는 위기도 그들만의 닫힌 생태계 속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형성된 좁은 시각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서는 이들 빅2의 미래 운명 자체도 이들이 열린 산업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렸지 않을까 싶다. 이들 기업의 닫힌 생태계는 기술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감탄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 왔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변화가 요구하는 명제인 ‘새로운 혁신 아이디어를 바깥세상으로부터 받아들이는’ 데는 극히 취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빅2가 자신들의 세상을 밖으로도 활짝 펼치고 이들의 훌륭한 업적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좋은 스타트업들이 한국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역동성 있는 산업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모습을 보려는 것은 필자의 지나친 욕심일까.
김도훈 경희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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