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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해운 치킨게임에서 살아남기

입력
2016.09.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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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

현대상선도 추가지원 없이 못 버텨

중국ㆍ유럽처럼 정책적 지원 필요

“20여 마리가 줄을 연결해 끄는 개썰매를 타고 탐험을 하던 도중 덩치 큰 개가 한번 넘어지자 다른 개들이 순식간에 물어서 죽였다. 배 부위를 물어뜯어 내장부터 먹어 치웠다. 소름 끼쳐서 볼 수가 없었다. 말리려 했다가는 우리도 위험했을 것이다.”

한국일보가 2011년 창간 57주년을 앞두고 파견했던 그린란드 종단 탐험대가 52일간의 탐험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홍성택 탐험대장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그린란드 개들은 썰매를 힘겹게 끌더라도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약한 모습을 안 보이려 한다고 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뒤에서 달려오던 개들이 먹잇감으로 생각해 곧바로 물어뜯고 나머지 개들까지 순식간에 달려들어 형체도 남지 않는다. 사고가 수습된 뒤 탐험대는 다시 개썰매의 흐트러진 실타래를 풀어 대오를 정리해 길을 나서야 했다.

지금 한진해운이 이처럼 약한 모습이다. 반도체 시장과 마찬가지로 해운업계도 이미 치킨게임에 돌입한 지 오래다. 상당수 해운업체가 고사 직전의 상태다. 업계 불황이 얼마나 더 오래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국적 대형선사 두 곳, 즉 현대상선과 한진해운도 이미 치킨게임에서 패색이 짙다. 치킨게임에서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불황이 닥치자 중국과 유럽의 각국이 정부 차원에서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해 자국 선사들을 지원해 온 이유다. 해운업계는 지금과 같은 불황에서는 덩치 큰 업체가 한둘 쓰러지면 덕분에 나머지 업체들이 먹고 사는 형국이다. 당장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바닥을 기던 운송요금이 2~3배 오르고 있다. 덕분에 해외 선사들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세계 5위의 해운사 에버그린 주가가 최근 일주일간 20% 가까이, 일본의 닛폰유센(NYK)의 주가도 10% 가까이 올랐다. 치킨게임의 승자와 패자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현대상선은 현대증권을 매각하면서 유동성을 확보해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고 채권단의 지원도 확보했다. 반면 법정관리로 가게 된 한진해운은 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 법정관리 소식이 전해지자 한진해운 운용 선박 141척 중 85척이 억류되거나 공해에 표류하면서 글로벌 물류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배로 짐을 부쳐야 할 국내외 화주들도 비상이 걸렸다.

대응 시나리오조차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한진해운을 법정관리에 서둘러 밀어 넣은 것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실책이다. 몇 달 전부터 줄기차게 제기된 해운업계의 요구를 깔아뭉갰다. 한진해운 사태를 단순히 1개 업체의 회생 문제에 국한해서 본 게 잘못이다. 현대상선도 일단 회생을 했지만, 올 상반기에만 4,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영업적자가 누적되는 글로벌 업황을 고려할 때 2018년까지는 영업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따라서 조만간 채권단의 추가지원이 없으면 다시 위기에 봉착하기 십상이다. 우리 해운업계 위기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진해운의 문제는 세계 6위인 우리나라 해운산업 전체의 생존 문제로 접근해야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한진그룹이 내놓겠다는 1,000억원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우리 해운산업 전체를 큰 그림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의 행태는 무능을 넘어 무책임의 극치다. 문제 해결능력은 빵점에 가깝고 책임을 피하려는 복지부동의 자세만 확연하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법정관리 기업에 국민세금이 무책임하게 투입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환자를 쓰러뜨려 놓고 주사도 놓지 않겠다는 격이다. 이제 한진해운 사태는 이미 국경을 넘어 국제적 문제가 됐다. 한진해운이 아니라 해운 네트워크를 살리자는 얘기다. 해운업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구조에서 대동맥과 같다. 해운 네트워크를 살리지 못하면 우리 산업의 미래도 어둡다. 정부의 현명한 판단과 결정이 필요하다. 이들 업체가 치킨게임에서 버틸 수 있도록 중국이나 유럽처럼 정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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