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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도 청문회 통과 못한다고?

입력
2014.06.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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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논설위원
이충재 논설위원

총리 낙마 파동에 청문회 핑계만

마음 맞는 인물만 찾으면 인사실패

손바닥 수첩을 대학노트로 바꿔야

이런 개그, 이런 황당한 드라마가 또 있을까. 문창극 총리 후보자 사퇴와 정홍원 총리 유임으로 이어진 인사파동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귀국 후 처리한다던 문 후보자 거취 문제가 지연돼 뭔가 꼬인다 싶었다. 급기야 손에 피 묻히지 않겠다는 대통령과 명예회복 전에는 못 물러나겠다는 총리 후보자가 맞서는 희대의 광경이 전 국민 앞에서 연출됐다.

문 후보자는 기자들을 붙잡고 가죽가방에서 원고뭉치를 꺼내 아침저녁으로 20분씩 ‘역사강연’을 했다. 처절한 1인 시위는 정부가 ‘문 후보자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 같다’고 퇴로를 열어주고 나서야 어렵게 막을 내렸다.

여기서만 그쳤어도 ‘막장’이라는 말은 안 나왔을 게다. 이미 보따리를 싸놓은 정 총리를 다시 앉힌 것은 해외토픽 감이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 말마따나 “음식 상한 것 같다고 다시 해오라니까 먹다 남은 음식 내온 꼴”이다. 전날 청와대 직원들조차 총리 유임론을 주고 받으며 “설마, 그렇게까지야”라고 농담으로 여겼다니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이 총리 후보를 고르고 검증하고 청문회를 통과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의당 해야 할 일이다. 한데 “더 시킬 사람이 없으니 마음대로 해라”는 식으로 나오는 건 국민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행위다. 박 대통령은 5월19일 ‘눈물 담화문’에서 “이런 상황에서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개혁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담화대로라면 총리를 못 바꿨으니 이제 개혁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된 셈이다.

더 기가 막힌 건 인사 실패의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과 야당에 손가락질을 하고 애꿎은 청문회 제도에 분풀이를 하고 있다. 문 후보자 청문회가 열리지 않은 것은 박 대통령이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서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총리로 적합하다는 의견이 9%에 불과하고 새누리당 당직자들도 사퇴를 주장하자 마지못해 택한 고육지책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의 편협한 인사에서 비롯된 책임을 청문회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심지어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이런 식의 검증으로는 예수가 와도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변한다. 박 대통령은 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높아진 검증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고 말했다. 쓸 만한 사람을 공들여 찾아나 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마음에 드는 인물만 골라 쓰려다 보니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하지 않을까.

손바닥만한 수첩을 큼지막한 대학노트로 바꾸면 훌륭한 인물은 얼마든지 많다. 하다못해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주민등록은 딱 두 번 옮겼고 대학을 25년 만에 졸업해 학위도 돈도 관심 없고 논문은 쓸 일도 없었다”고 비꼬았다. 정치인은 야심이 많아 감당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꺼리고 진보성향의 인사는 사사건건 반대할까 봐 제쳐놓으니 인물난을 겪는 거 아닌가.

여권의 청문회 타령은 지난해 김용준 초대 총리 후보자 낙마 때도 나왔다. 그 때도 박 대통령을 비롯해 새누리당에선“청문회가 능력 검증보다 신상 털기에 집중하는 것 아니냐”며 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이 정도면 철 따라 나오는 유행가요 상습적인 트집이다.

이번 공세는 장관 후보자 8명에 대한 국회청문회를 앞두고 미리 방어막을 쌓으려는 의도가 짙다. 아닌게아니라 후보자 가운데는 비리 전력자가 수두룩하다. ‘논문표절 제조기’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차떼기’ 주역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나이롱 군복무자’인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등 태반이 도덕성과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국민의 눈높이에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만 골라놓고 청문회 탓을 한들 호응이 있을 리 만무하다.

논문 표절, 병역 특혜,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등 온갖 탈법과 편법을 써서 부와 명예를 얻은 이들이 과거의 관행이란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서 발 막대 휘둘러도 거칠 것 없는 서민들은 부도덕한 이들이 권력마저 차지하는 부당함을 받아들일 생각이 조금도 없다. 서민들 염장을 지르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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