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30 16:27

[애니북스토리] 황금개띠 해, 40㎝와 입마개


등록 : 2018.01.30 16:27

지난 1월 21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동물단체, 반려견 행동전문가, 반려인들이 정부의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동그람이

새해 들어 이곳저곳에서 개와 관련한 인터뷰와 원고 청탁이 왔다. 한국의 개들은 2018년을 ‘40㎝와 입마개’로 열었건만 정작 인간은 ‘황금개띠 해’ 운운하며 아랑곳없는 모양새다.

체고가 40㎝ 이상인 개는 모두 입마개를 하라니 뒤통수 한 대 맞고 개의 해를 시작하는 한국의 개들이다.

1995년 베이징시는 개로 인한 사고의 위험성, 무책임하게 개를 키우는 사람들로 인한 불만이 많아지자 체고가 35㎝ 이상인 개를 키울 수 없게 규제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실제로 대형견을 잡아들이는 모습이 세계로 전해졌다. 35㎝라는 기준이 비과학적이고 실행 방법이 폭력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음에도 실행하는 모습을 보고 전체주의적 발상이 가능한 나라구나 생각했다. 길을 가다가 경찰에게 개를 빼앗긴 사람들이 돌려달라고 울부짖는 모습, 수많은 대형견이 살처분 당해 누워있는 사진이 아직도 끔찍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베이징시는 사람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규제라고 말했는데 35㎝ 규제로 인해 더 안전한 도시가 되었을까? 안전해졌다고 믿게 하고, 믿고 싶은 허상만 남은 게 아닐까.

몸의 크기가 공격성의 기준이 되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플리커

그런데 난데없이 2018년 근거를 알 수 없는 40㎝의 망령이 한국에도 찾아왔다. 체고 40㎝면 골든리트리버, 래브라도리트리버, 허스키 등 대부분의 중대형견이 해당된다. 덩치 큰 개들을 잠재적인 문제견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견종을 키우는 사람들은 안다. 대형견이 공격성이 적고 친화력이 좋은 ‘덩치 큰 동네 바보 형’ 성향이라는 것을. 현재 이런 규제를 야기한 결정적 사건은 유명 연예인의 반려견이 이웃을 물어서 사망케 한 사건이다. 그 사건을 일으킨 개가 대형견이었나? 아니다. 프렌치불도그의 체고는 대략 30센티미터이다. 견종의 문제도 아니다. 프렌치불도그는 순하고 활발해서 반려견으로 적합한 견종이다. 프렌치불도그가 문제를 일으켰다면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반려인의 문제이다.

물론 대형견이 사람을 물면 피해가 크다. 하지만 그간 일어난 사건사고를 찾아보면 대부분 줄에 묶이거나 갇힌 채 살면서 공격성이 커진 경우가 많다. 오히려 대형견을 집단으로 키우는 개식용 농장이나 투견 농장의 개, 인간과 어떤 교류도 없이 외부에서 짧은 줄에 묶여 키워지는 개의 관리가 먼저다.

개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고 싶다면 우리나라에 어떤 종의 개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곳에서, 어떤 식으로 키워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필요하다. 픽사베이

무엇보다 개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고 싶다면 우리나라에 어떤 종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곳에서, 어떤 식으로 키워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필요하다. 40㎝ 이상의 개에게 입마개를 의무화하고, 공격성 평가 후에 공격성이 없으면 입마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규정을 둔다고 한다. 코웃음이 났다. 사실 정부는 한국에 체고 40㎝ 이상인 개가 몇 마리인 줄도 모른다.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등록된 비율은 33%에 불과하다. 체고 40㎝ 이상인 개는 개식용 농장에 가면 수두룩하다. 만약 이번 정부안을 강행할 거라면 그곳의 개들에게도 공격성 평가를 꼭 해주기 바란다. 태어나 처음으로 땅을 밟을 수 있을 테니까.

영국에서 활동하는 반려견 행동심리 전문가인 잰 페넬은 “개의 문제는 99.9% 게으르고, 어리석고, 학대를 일삼은 인간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개가 인간을 공격하는 경우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을 때 보이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그런데 인간에게는 ‘정당방위’라는 말이 수용되지만 개의 경우에는 원인이 무엇이든 개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말리와 나>에 등장하는 레드라도리트리버. 픽사베이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 <말리와 나>의 주인공인 사랑스러운 래브라도리트리버 말리는 전 세계인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말리는 래브라도의 평균 체고인 60㎝보다 훨씬 더 컸고, 활동량과 번잡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수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그저 한바탕 소동일 뿐이었다. 말리는 덩치만으로 사람들에게 위협감을 줘서 범죄가 많은 곳에 사는 가족은 말리가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하지만 실제로 도둑이 들어온다면 말리는 도둑을 향해 달려들어 침을 처덕처덕 바를 거라는 것도 가족은 알고 있었다. 대형견은 소형견에 비해서 수명이 짧다. 13살 말리가 떠나는 날, 가족들은 말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는 골칫덩어리가 아니야. 한 순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말리, 넌 훌륭한 개야.”

덩치만으로 골칫덩어리가 되는, 1차원적인 정책은 폐기되기를 바란다. 부디 개를 아는 사람이 개에 대한 정책을 만들기를!

참고도서: <말리와 나>, 존 그로건, 세종서적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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