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수 기자

등록 : 2017.12.05 17:30
수정 : 2017.12.05 19:15

초록 들판 노란 유자…겨울에 더 예쁜 ‘남해 뒷길’


특별할 것 없어도 눈부신...남해 창선면 한 바퀴

등록 : 2017.12.05 17:30
수정 : 2017.12.05 19:15

바닷바람이 차다고 해도 남해 들판엔 시금치가 지천이고, 가끔씩 수확하지 않은 유자도 볼 수 있다. 창선면 북측 해안도로변에 잘 익은 유자 뒤로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남해=최흥수기자

경남 남해는 겨울에 더 눈부시다. 세상 모든 산과 들이 색을 잃어가는 이 시기에 남해의 들과 바다는 상대적으로 푸르름이 돋보인다.

육지에서 남해를 가는 길은 2곳, 하동에서 남해대교를 건너거나 사천에서 삼천포~초양~늑도~창선대교를 차례로 지난다. 사천에서 다리를 건너 만나는 첫 번째 남해, 창선면을 한 바퀴 돌았다. 이름난 관광지도 없고, 특별할 것 없는 해안마을 풍경이 때로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유자, 시금치…남해에는 겨울이 없다

창선대교를 건넌 여행객은 대부분 3번 국도를 직진해 창선면을 그냥 통과한다. 독일마을, 상주해변, 금산 보리암, 가천 다랭이마을 등 유명 관광지로 향하는 발길이다. 빠른 만큼 차량이 많아 여유롭지는 못하다. 대신 창선대교 지나 첫 번째 교차로인 단항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남해의 또 다른 모습과 만난다. 섬의 북측을 한 바퀴 돌아가는 1024번 지방도에는 이따금 주민들의 차량만 지날 뿐이어서 뒤따르는 차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 운전이 한결 여유롭다.

단항마을 왕후박나무.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된 수령 500년이 넘는 나무다.

열 한 가닥으로 뻗은 밑동 둘레는 11m에 이른다.

단항마을의 평화로운 포구 너머로 작은 섬이 떠 있다.

남해에서는 한겨울에도 시금치를 수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낮은 산모퉁이를 돌면 가장 먼저 단항마을이다. 도로에서 완만하게 층을 이룬 밭과 집들이 부드럽게 바다로 연결된다. 비탈진 들판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왕후박나무가 이 마을에선 자랑거리다. 왕후박나무는 후박나무의 변종으로 진도 홍도 등 남부지방의 섬에서 자라는 활엽상록수다. 밑동에서부터 열 한줄기로 뻗은 가지를 한 바퀴 두르면 11m에 이르고, 너르게 퍼진 가지는 마을 앞 작은 섬을 덮고도 남을 듯하다. 마을에서 신성시하는 나무에 그럴싸한 이야기 하나는 기본이다. 500여년 전 마을의 노부부가 큰 물고기를 잡았는데, 뱃속에서 이상한 씨앗이 나와 뜰 앞에 뿌렸더니 이렇게 큰 나무로 자랐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왜병을 물리치고 이 나무 밑에서 휴식했다고도 전한다. 수령을 추정해 보면 물고기 얘기보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단항마을 앞바다에는 대초도와 소초도 등 2개의 작은 섬이 떠 있어 해변 풍경도 운치 있다.

단항마을을 지나면 소벽 율도 고순 사포 신흥 등 작은 포구를 낀 해안마을이 지족리까지 이어진다. 도로는 바다와 멀어졌다 가까워지고, 그 사이에 자리 잡은 해안가 논밭들은 겨울에도 푸르름이 가득하다. 한겨울 해풍 맞으면 더욱 맛있다는 시금치며 양파 밭에 초록이 눈부시고, 진작 추수가 끝난 논바닥의 벼 밑동에도 파릇하게 새싹이 올라왔다. 도로변에 남겨 둔 노란 유자가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도 이 무렵 창선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매서운 바닷바람만 아니면 남해에는 겨울이 없다.

남해토피아랜드의 공룡 모양 작품.

실제 공룡이 어슬렁거리는 주라기 공원을 연상하게 한다.

십이지신상도 각 동물의 특징을 포착해 만들었다.

대부분 꽝꽝나무로 작품을 다듬었는데, 일부는 주목을 이용했다.

이렇다 할 관광지가 없던 창선면에 올해 초 볼거리가 하나 생겼다. 신흥마을 뒷산 언덕에 문을 연 ‘남해토피아랜드’는 살아 있는 나무를 온갖 동물 형상으로 다듬은 토피어리 정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공작 가족과 십이지신상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옆에는 오리 가족이 평화롭게 쉬고 있다. 한 계단 올라서면 공룡 가족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주라기 공원을 연출하고, 갖가지 도자기와 식탁, 의자 모양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성장하는 나무를 다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토피어리 정원은 돈이 아니라 시간의 작품이다. 이곳에선 15년 전 정원수로 심은 꽝꽝나무를 주 재료로 사용한다. 꽝꽝나무는 상록활엽수이면서 잎이 작고 가지가 촘촘해 다양한 모양을 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불에 탈 때 공기 층이 부풀며 터지는 소리가 요란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하석진 대표는 기본적으로 10년 정도 수형을 다듬어야 작품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공원으로 이식을 기다리는 현재진행형 토피어리를 포함해 700여 작품이 정원을 이루고 있다.

토피어리 정원 뒤편에는 수령 50년 정도 된 편백나무가 빼곡하게 숲을 이루고 있고, 앞으로는 해바리마을과 지족해협으로 이어지는 바다가 정겹게 펼쳐진다. ‘해바리’는 횃불을 밝히고 낙지잡이를 하는 방식인 ‘횃바리’를 순화한 말로, 해바리마을은 갯벌체험과 유자 따기 등 다양한 농어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족해협 거센 물살 지켜온…위풍당당 죽방렴

해바리마을에서 조금 더 차를 몰면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연결하는 창선교에 닿는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2개 면이 ‘지족리’라는 지명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지족해협으로 물살이 빠를 때는 시속 13~15km에 달한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바닷물이 강물보다 빠르게 흐른다. 다리를 중심으로 설치된 26통의 죽방렴(竹防簾)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시설이다. 지족해협의 거센 물살을 이용한, ‘대나무어사리’라고도 부르는 원시어업 시설이다. 참나무 말목을 V자 대형으로 펼쳐서 갯벌에 박고, 그 사이에 대나무 발을 엮어 물고기를 원형 통발에 가두는 방식이다.

지족해협의 죽방렴.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됐다.

26통의 죽방렴이 이어진 모습이 멀리서 보면 대형 함대처럼 당당하다.

죽방렴 임통 주변으로 먹이를 노리는 새들이 몰려 든다.

죽방렴의 역사는 500년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예종 원년(1496)에 편찬한 경상도 속찬지리지(慶尙道 續撰地理誌) ‘남해현조’편에 ‘방전에서 석수어ㆍ홍어ㆍ문어가 산출된다’고 기록돼 있는데, 이 방전이 바로 죽방렴이다. 한때 참나무대신 철골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모두 참나무로 뼈대를 세워 2015년 국가중요어업유산 제3호로 지정됐다.

죽방렴 멸치는 살이 탱탱하고 맛이 좋아 남해에 가면 꼭 맛봐야 할 음심으로 꼽힌다. 삼동면 지족리에 멸치쌈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몰려 있다. 외지인의 눈에는 다 같은 멸치지만, 이곳에서는 크기에 따라 세세멸, 세멸, 소멸, 중멸, 대멸, 징어리 등으로 세분한다. 멸치쌈밥은 큰 멸치에 속하는 대멸과 징어리를 사용한다. 지족해협 죽방렴에 걸린 다른 물고기도 남해에서 최고의 횟감으로 대접받는다.

죽방렴 참나무 말목에 앉은 갈매기들

농가섬의 국화 너머로 창선면 지족마을이 보인다.

농가섬은 아기자기한 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입장료는 3,000원.

당저리 추도에서도 꽃을 볼 수 있다.

추도에서 본 일출 모습.

걸어서 창선교를 건너면 지족해협 죽방렴이 함대처럼 위풍당당하게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고, 삼동면 농가섬으로 연결되는 해상 교량에서는 코앞에서 죽방렴 속까지 들여다 보인다. 농가섬은 손바닥만한 작은 부지를 아기자기하게 꾸민 개인 섬이다. 초겨울 쌀쌀한 바람에 노란 국화 꽃잎이 날리고, 주인장이 만든 점토 작품도 판매한다. 입장료 3,000원에는 커피나 차 한 잔 값이 포함돼 있다. 창선면 당저리 추도에서도 꽃을 볼 수 있다. 도시인을 위해 분양한 텃밭엔 당연히 채소를 심기 마련인데, 이곳에선 취향대로 꽃밭을 꾸몄다. 지금은 다양한 색과 형태의 국화가 남해의 늦은 가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공원으로 꾸민 추도는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남해=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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