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27 10:00
수정 : 2017.07.27 10:00

의사ㆍ점술가ㆍ연예인…제주의 종합예술인 '심방'


강정효의 이미지 제주(39)-14일 큰굿 개인 감당 역부족, 당국의 지원 절실

등록 : 2017.07.27 10:00
수정 : 2017.07.27 10:00

얼마 전 제주에서는 의미 있는 굿판이 펼쳐졌다. ‘두이레 열나흘 굿’, ‘차례차례 제 차례 굿’ 등으로 불리는 제주큰굿 한마당이 열린 것이다.

14일간 여러 심방(무당)이 나서 제의를 펼치는 큰굿은 제주도 굿의 결정판이라 불릴 정도로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종합적인 연희다. 2001년 8월 16일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돼, 지금은 제주큰굿보존회를 중심으로 계승되고 있다.

두이레 열나흘굿의 본풀이

제주큰굿은 신을 모셔 들이는 청신의례를 시작으로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대접하는 공연(供宴)의례, 기원·영신의례, 천도·해원의례, 오신의례, 가신·조상의례, 송신의례 등의 순으로 진행하는데 신의 내력을 담은 본풀이를 풀어낸 뒤에는 신을 맞이하는 의례를 진행하거나 신을 즐겁게 놀리는 놀이를 진행한다.

큰굿은 심방집 큰굿과 사가집 큰굿으로 나뉜다. 심방집에서 진행하는 신굿은 심방으로 인정받기 위한 하나의 절차로, 신 길을 바로잡기 위하여 당주(堂主)의 길을 닦는 여러 당주맞이 제차를 삽입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제주에서 심방들은 14일에 달하는 큰굿의 본주가 되어 신에게 역가(役價)를 바쳐야 비로소 심방으로서의 그 신분을 인정받는다. 큰굿을 한 번(초역례) 하면 하신충, 두 번(이역례) 하면은 중신충, 세 번(삼역례)을 해야 심방사회 최고 지위인 상신충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일정의 자격증 취득 과정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신굿을 하지 않은 경우 ‘소미’라 하여 구분해서 부른다.

심방으로 독립하면 그의 조상신을 집안에 모시는데 이곳을 ‘당주’라 하고, 신의 상징물인 맹두를 모신다. 그리고 굿 의뢰를 받으면 그 맹두를 가지고 출장 굿을 한다. 맹두를 활용하여 신을 청하고 점을 치고 여러 가지 굿을 함은 그 수호신의 보조를 받아 직능을 수행함을 의미한다.

시왕맞이 군문열림

심방의 신칼

심방을 굿에서는 ‘신의 성방’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신(神)의 형방(刑房)이라는 뜻이다. 신의 사제로서 심방은 아픈 이들의 병을 고치는 의사, 마을과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점술사, 굿을 매개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연예인 등의 역할까지 맡는다. 그 결과 그들을 통해 ‘열두본풀이’라 불리는 세계적 수준의 신화가 구비문학으로 이어졌고, 놀이굿을 통해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공연문화를 전수하는 제주민속문화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제주신화의 가치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제주어(제주말)가 지금껏 남아 전해지는 곳 또한 굿판이고, 그 중심에 본풀이를 풀어내는 심방들이 있다. 실제로 고령층 할머니들을 제외한 제주의 중ㆍ장년 층은 심방의 본풀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다. 제주어는 2010년 유네스코에서 언어 소멸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한 바 있다.

심방집 당주

전상놀이

하지만 팔자를 그르쳐 심방이 된다고 할 정도로 심방들은 기구한 운명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심방이 되는 과정을 보면 부모의 무업(巫業)을 계승해 세습하거나, 무구인 맹두를 줍는 경우, 무병을 앓다가 어쩔 수 없이 심방이 되는 경우, 심방과 혼인함으로써 저절로 되는 경우, 생활수단으로 입무(入巫)하는 경우 등 대부분 하나같이 일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많다.

팔자 그르친 심방의 운명은 무조신(巫祖神)인 ‘젯부기 삼형제’ 이야기를 다룬 초공본풀이에 이미 정해져 있는데, 최초의 심방인 유정승 따님애기의 사례가 그것이다. 유정승의 따님애기가 어렸을 때 길 가는 스님으로부터 팔자를 그르쳐야 산다는 말과 함께 엽전 두 푼을 받자 놀이로 땅에 묻어 놓았다. 그러나 일곱 살 때부터 10년 주기로 병이 들었다가 낫기를 반복해, 일흔 일곱에 비로소 팔자를 그르쳐 심방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팔자를 그르쳐 심방이 되었다지만 제주의 전통문화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이나 크다. 일만팔천 신들의 고향, 신화의 섬, 무속의 보고라 불리는 중심에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치에 비해 심방들은 이제껏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해왔다. 과거 미신타파라는 이름으로 제주의 굿과 심방은 탄압의 대상이었고, 고령화로 지금의 심방 문화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문화재 확대 지정과 더불어 예산을 지원해서라도 제주큰굿이 자주 열리게 해야 한다. 오늘날 14일에 달하는 제주큰굿 비용을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제주큰굿 전수학교를 운영해 젊은 심방들을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고려해야 한다. 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시급하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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