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31 04:40
수정 : 2018.03.31 09:14

“뭉치면 산다” 물벼룩, 좁쌀만 한 것들의 생존투쟁


[아하!생태]

등록 : 2018.03.31 04:40
수정 : 2018.03.31 09:14

낮엔 천적 물고기 피해 수심으로

밤에 표층으로 올라와 영양 섭취

새벽에 다시 수십 미터 아래로

어떤 물벼룩 종류는 정어리처럼

리터당 3만마리가 무리를 형성

새끼를 포식자로부터 보호

안정된 환경에선 처녀생식하지만

먹이 적어지면 수컷 생산해 짝짓기

우직한 수컷이 암컷에 선택받아

옛 속담에 ‘벼룩도 낯짝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다’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고 하찮은 벼룩도 양심이 있어 창피하고 미안한 걸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라면 양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속담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과연 벼룩이 속담에 쓰일 만큼 하찮고 양심이 없는지는 한번 되짚고 넘어갈 일입니다.

여기서 주로 이야기 해 볼 물벼룩은 벼룩과는 다른 종이지만, 물속에서 톡톡 튀듯 헤엄치는 모습은 벼룩과 매우 흡사합니다. 절지동물문 갑각강(키틴질의 껍질을 가진 무리)에 속하는 물벼룩은 세계적으로 100여 개 속의 생물을 가리키는 말로 약 600종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물벼룩은 일반적으로 동물플랑크톤(zooplankton)의 범주에 속합니다. 그리스어인 ‘planktos’에서 기원한 이 분류군은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닌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물벼룩의 수영 솜씨는 내세울 만하지 않습니다. 하천에서 주로 발생하는 흐름은 이들의 움직임을 교란합니다. 이러한 탓에 이들은 주로 흐름이 적은 늪이나 습지에서 주로 살아갑니다.

물벼룩의 옆모습은 눈과 입, 동그란 몸체를 가져 그럴싸한 모양이지만, 앞에서 보면 두 개일 것 같은 눈이 한 개 밖에 없고 몸체가 납작하게 눌려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물벼룩의 눈은 2개?

이들의 낯짝을 살펴봅시다. 교과서나 웹서핑을 통해 찾을 수 있는 물벼룩은 대부분 옆모습입니다. 물벼룩이 죽은 상태에서는 무게 중심이 옆으로 기울기 때문입니다. 옆모습은 그런대로 그럴싸한 얼굴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데굴데굴 굴리는 새까만 눈도 있고, 볼록하게 튀어나온 이마며, 매부리코까지... 그러나, 앞에서 본 모습은 영 다른 모습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염치가 없었는지 얼굴은 좌우로 심하게 눌려 있고 커다란 눈알의 위치만 보일 뿐입니다. 옆모습에서 반대쪽에도 있을 것 같은 눈이 가운데 크게 하나만 있는 건 참으로 의외입니다. 통통할 것 같은 몸통은 납작하게 눌려 있는데, 이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라고 합니다.

수생태계 대부분의 서식종들이 물벼룩을 먹이원으로 활용한다. 이 중 잠자리 유충은 물벼룩의 가장 위협적인 포식자이다. 이들은 머리 아래에 있는 큰 턱으로 물벼룩을 잡고 머리부터 먹기 시작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

봄은 물벼룩의 먹이인 식물플랑크톤이 많아지는 시기이지만, 물고기 역시 물벼룩 등 먹잇감이 풍부해지는 시기에 번식을 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기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이 시기에 습지의 표면은 물벼룩이 살기에 적당하지만, 낮에는 너무 밝아서 눈을 부릅뜨고 물벼룩을 잡아먹으려는 물고기의 눈에 잘 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에 맞서 물벼룩은 물고기를 피하기 위해 일명 ‘도망가기’의 전략을 사용합니다. 물벼룩은 물고기의 냄새를 맡으면, 낮에는 물고기들이 꺼리는 깊고 어두운 수심 부근까지 도망쳐 내려가 춥고 배고픈 시간을 버티고, 밤에 물고기들이 눈뜬장님이 되면 표층으로 올라와 배불리 먹습니다. 행복도 잠시, 새벽이 되면 혼비백산해 다시 저층으로 내려가는데, 이런 행동이 낮과 밤을 주기로 이루어지기에 일주기 수직이동(Diel Vertical Migration)이라 합니다. 뛰어봐야 벼룩이라지만, 좁쌀만한 녀석들이 하루에 수십m 이상을 오르내린다니, 살아남는다는 것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송촌보 인근 영산강에서 찾은 물벼룩(Moina macrocopa) 떼. 포식자를 피해 수변부에 무리를 형성한 것을 볼 수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무리 짓기’의 방법 또한 포식자를 피하는 전략으로 활용됩니다. 우리는 다큐멘터리에서 수천~수백만의 정어리 떼가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무리 짓기로 인해 포식자인 상어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배회하다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개체를 간간히 사냥합니다. 모이나 마크로코파(Moina macrocopa)라는 물벼룩의 경우, 치어의 밀도가 높아지는 시기에 수초가 많은 가장자리로 몰려와 리터당 3만마리에 달하는 무리를 형성합니다. 놀랍게도 이들 무리들은 화학적 신호를 통해 새끼를 낳는 시기도 동일하게 맞춰 내 새끼만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방지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개복치가 3억 마리의 알을 낳는 것도 포식자의 포식에 살아남을 새끼 수까지 계산된 전략입니다. 포식자가 배불리 먹으면 더 이상의 손실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뭉치면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전략은 포식자가 다양한 물벼룩과 같은 피식자의 생존에 꽤나 도움이 됩니다.

장이 직선인 물벼룩은 소화시간이 짧아 먹는 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화력은 낮은 편이다(오른쪽). 반면 꼬인 장을 가진 몇몇 물벼룩은 소화시간이 길고 먹이를 찾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왼쪽). 국립생태원 제공

꼬인 장과 직선인 장

대부분의 물벼룩 종류는 장이 직선입니다. 몸을 감싸고 있는 양쪽의 갑각 앞쪽에 모인 6~10개의 다리를 이용해 물을 여과시켜 유기물을 섭식합니다. 그러나 물을 여과시켜 어렵사리 섭취한 음식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항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 나옵니다. 음식물의 장내 보유시간이 짧기 때문에 적은 에너지만 흡수됩니다. 모자라는 에너지 보충을 위해 물벼룩들은 대단히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씨물벼룩이라고 하는 물벼룩을 이와 비교해 볼까요.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직선 장이 아닌 꼬인 장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한번 꼬인 장은 놀라운 차이를 나타냅니다. 씨물벼룩은 움직임이 거의 없습니다. 이들은 장내 음식물의 보유시간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소화 흡수력도 그만큼 높습니다. 그래서 자주 움직이며 먹이활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움직임이 적은 탓에 어류와 같은 포식자에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생물은 한번에 사냥한 먹잇감으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먹이에 대한 선택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섭취한 먹이를 어떻게 에너지화 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벼룩의 처녀생식(왼쪽)과 유성생식(오른쪽) 개체의 모습. 물벼룩은 환경 변화에 따라 생식 방법을 달리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물벼룩의 새끼는 ‘복제품‘?

지구상에 대부분의 생물들은 암컷과 수컷이라는 성별이 존재하며, 이들은 번식을 위해 짝짓기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모든 생물들이 암컷과 수컷의 짝짓기를 통해 번식 하지 않습니다. 수컷 없이 암컷 혼자서 번식하는 종도 있습니다. 이른바 처녀생식(Asexual Reproduction)이라고 하는 이 생식방법으로 번식하는 종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물벼룩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사실 물벼룩의 수명은 약 한달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새끼에서 성체가 되기까지 약 8~10일 정도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약 20일 동안 생식활동을 하는 셈입니다. 모든 생물의 궁극적인 목표가 ‘유전자의 전달’에 있다던 리처드 도킨스의 말을 인용하면, 본래 물벼룩은 유전자의 전달을 위해 열심히 짝을 찾아 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물벼룩은 수명이 짧고 포식자에게 언제 잡아 먹힐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작은 크기 탓에 망망대해처럼 느껴질 습지나 호소 안에서 짝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점을 볼 때 짝짓기 과정과 같이 번거로운 과정 없이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는 처녀생식은 물벼룩에게 적합한 생식방법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처녀생식을 통한 생산된 자손은 유전자가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복제품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또한 비슷한 양상을 가집니다. 만약 적응하지 못하는 환경 변화가 닥치면 종의 절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유전자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다양한 환경에서의 적응 때문입니다.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새가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유전자 다양성으로 인해 각 서식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개체가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낮은 수온 등 환경이 나빠지면 물벼룩은 수컷 생산을 하여 유성생식으로 전환한다. 물벼룩의 짝짓기 장면. 아래쪽 작은 개체가 수컷이고, 위쪽에 큰 개체가 암컷이다. 국립생태원 제공

물벼룩의 짝짓기와 진화

물벼룩이 서식하기에 안정된 환경에서 물벼룩은 여러 세대 동안 처녀생식으로 번식하지만, 너무 많은 물벼룩이 과도하게 번식해 먹이가 적어진다든가 하는 불안정한 환경이 되면 수컷을 낳기 시작합니다. 암수 짝짓기를 통한 유성생식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물벼룩 암컷은 위 아래로 움직이며 주로 먹이활동을 하는 반면 수컷은 좌우로 주로 헤엄칩니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암컷과 접촉 확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짝짓기 시간은 보통 0.3~0.4초 정도입니다. 암컷이 수컷의 접촉 시에 강하게 뿌리치기 때문에 짝짓기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그럼 물벼룩 수컷은 어떻게 암컷에게 선택받으려고 할까요? 사실 대부분의 하등동물들은 수컷 경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달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 물벼룩이 수컷 경쟁을 한다는 것도 웃긴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암컷과의 접촉시 먼저 들이대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암컷은 강하게 뿌리치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들이댑니다. 이 가운데 힘이 세고 건강한 수컷은 암컷의 뿌리침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다가가 충분한 짝짓기 시간을 가질 것이고, 약한 수컷은 접촉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이 물벼룩 수컷의 우직함은 지금까지 물벼룩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약하거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전자가 자연스럽게 도태되었기 때문입니다.

최종윤 국립생태원 생태공간조사평가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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