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준 기자

등록 : 2017.04.11 14:51
수정 : 2017.07.06 14:10

[딥 포커스] '장성' 막히자 열도로… K팝 막내들 ‘겁없는 도전’


등록 : 2017.04.11 14:51
수정 : 2017.07.06 14:10

日팬들, 가수 향한 충성도 높고

CD판매ㆍ공연 등 유료시장 건재

신인 가수 키우는 과정 즐기는

특유의 ‘소극장 문화’도 매력적

트와이스 6월 데뷔 앨범 발표

인엑스 등도 ‘제2의 초신성’ 꿈

올 여름 일본 진출을 앞둔 그룹 트와이스는 현지에서 이미 10대들의 스타다. 일본 도쿄의 대형 쇼핑센터에 걸린 그룹 트와이스 사진(왼쪽). 지난달에는 일본인 멤버 미나의 생일을 맞아 현지 팬들이 전광판에 광고를 해 축하 인사(오른쪽 위)도 전했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일본 고등학교 축제에 등장한 트와이스의 ‘TT’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 코리아플라자의 전광판. ‘앞으로도 계속 꿈을 좇아가면 꼭 꿈이 현실이 될 거야.’ 그룹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인 미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현지 팬들의 응원 문구가 영상으로 떴다. 일본에서 데뷔 앨범도 내지 않았지만, 트와이스는 현지에서 이미 10대들의 스타다. 오키나와의 지넨고등학교 재학생들은 학교 축제에서 트와이스의 히트곡 ‘TT’(‘티티’)의 춤과 노래를 똑같이 따라 불렀고, 이 영상이 지난 2월 온라인에 올라오자 국내 네티즌은 ‘한국인 줄ㅋ’(박은*, 박우*)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학생 딸을 키우며 도쿄에서 사는 김은미(41)씨는 “일본 중학생들 사이 ‘티티춤’은 이미 유행”이라며 “딸 반에서도 트와이스를 모르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더라”고 말했다.

이 인기를 발판 삼아 트와이스는 6월 일본 데뷔 베스트 앨범 ‘해시태그 트와이스’를 내고, 7월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쿄체육관에서 쇼케이스를 열어 일본 공략에 나선다. 소녀시대(2010)이후 일본에 진출한 걸그룹 중에선 가장 큰 규모의 데뷔 행사다. 트와이스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 공식 팬클럽 회원을 상대로 한 쇼케이스 신청에 인터넷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 행사 횟수를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지난해 7월 한국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후 활로가 막힌 중국 대신 일본에 진출해 세를 넓히려는 모양새다.

신인그룹 인엑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순)와 에이디이, SF9, 헤일로는 중국 대신 일본을 해외 시장의 거점 기지로 택했다. NA엔터테인먼트·투에이블컴퍼니·FNC엔터테인먼트·하이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드 문제로 재조명 받는 일본 음악 시장

사드 문제로 인한 중국의 보복성 한류콘텐츠금지령(한한령)이 장기화되면서 K팝 가수들이 일본으로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 한류의 문이 닫힌 중국이 아닌 일본을 거점으로 해외 시장에서 숨통을 트려는 움직임이다. 국내를 비롯해 중국에서 조차 설 자리를 잃은 1~3년차 신인 가수들이 특히 일본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이그룹 로미오(4월-이하 데뷔 앨범 발매 시기), 몬스타엑스(5월), SF9(6월), 인엑스(7월)와 걸그룹 에이디이(5월) 등이 대표적이다.

독도 문제를 빌미로 조성된 ‘반한류’로 2010년 이후 신인들이 일본 진출에 몸을 사렸던 것과 대조적이다. K팝 한류가 2000년대 초 ㆍ중반 일본에서 전성기를 누리다 2010년대 중국으로 건너간 뒤 최근 다시 일본에 둥지를 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한류 열풍이 사그라지긴 했지만 K팝 가수들에게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좋아하는 가수를 향한 팬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아 CD 판매 및 공연 등 유료 음악 시장이 아직도 건재하다. 이 문화적 기반에다 동방신기와 카라 등 한류 스타들이 앞서 다져 놓은 일본 내 K팝 고정 팬덤을 활용해 사드로 가로막힌 대륙에서의 손실을 만회하려는 게 신인 그룹들의 전략이다.

K팝 무명 그룹이 일본 진출에 도전하는 이유

한국에서 무명에 가까운 그룹들이 과감하게 일본 진출을 노릴 수 있는 데는 현지 특유의 ‘소극장 공연 문화’가 있기에 가능하다. 로미오의 소속사 CT엔터테인먼트 조대형 이사는 “일본은 100~30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이 많은 데다 소규모 공연도 활발히 열려 신인들이 설 곳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 “일본 팬들은 가수를 키워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특성”(김상화 음악평론가)이 있다. 인지도가 없어도 소규모 공연장을 찾아오는 관객층이 꾸준히 있고, 이를 통해 팬덤을 쌓을 수 있는 여건이 형성돼 신인 그룹들이 일본을 찾는다는 것이다.

소극장 무대는 현지 기획사의 ‘캐스팅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엑스 소속사 NA엔터테인먼트 나건태 대표에 따르면 애초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결성된 인엑스는 한한령으로 대륙 활동에 발목을 잡혀 일본으로 활동 방향을 틀었고, 지난해 9~11월에 소극장 공연을 하다 일본 회사(CJ 빅터) 관계자의 눈에 띄어 계약을 맺었다. K팝 신인 그룹이 한류의 블루오션으로 알려진 태국 등 동남아시아 진출보다 레드오션이라 여겨지는 일본 진출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 여름 일본 진출을 준비중인 보이그룹 소속사의 고위 관계자는 “동남아 지역은 신인 그룹이 활동하기엔 팬층이 얇고 시장도 크지 않을뿐더러 현지 에이전시 등이 적어 환경적으로도 자리잡는 데 제약이 크다”고 봤다. 사드 문제로 K팝 한류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일본 외 동남아 시장을 신인 그룹의 해외 시장 거점으로 삼기엔 무리가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로 인해 K팝 신인그룹들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일본 시장 안착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로미오는 일본의 실용음악과 교수와 학생 등으로부터 곡을 받아 현지 데뷔 앨범을 꾸린다. 헤일로는 지난 1월까지 2년 동안 동아리 활동 등 현지 학교의 풍경을 재연하는 콩트를 공연에 넣어 팬들과 문화를 공유하며 친숙함을 쌓았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일본에서 ‘제2의 초신성 신화’를 쓰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일본 대형 음반 유통사 관계자는 “일반인들에 어필하려면 K팝 그룹들이 지상파의 유명 프로그램에 나와야 하는데 이젠 (반한류로) 어렵다”며 “동방신기나 카라 같이 일본에서 사랑 받는 그룹이 나오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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