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04 10:00
수정 : 2017.11.16 09:05

교토를 걷다… 또각또각 골목 돌면 뜻밖의 대숲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84)] 교토 서부 아라시야마ㆍ사가노 구역

등록 : 2017.11.04 10:00
수정 : 2017.11.16 09:05

나막신으로 불꽃 투혼하는 여행자의 또각또각 소리는 호즈강 물살의 코러스처럼 들린다.

탕탕과 나는 교토의 서쪽을 주목하고 있었다. 아라시야마(嵐山)ㆍ사가노(嵯峨野) 구역이었다.

쿄토에 첫발을 뗀 것이 오후 1시 무렵,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단번에 교토를 맛보고 싶다는 욕심과, 일처럼 여행하지 말라는 여유 사이에서 줄다리기했다. 두 가지 조건 아래 움직였다. 가능한 숙소에서 멀 것, 그리고 ‘일타쌍피’형의 포족한 반나절 코스일 것.

아라시야마ㆍ사가노 구역은 헤이안 시대의 왕족과 귀족의 별장지가 있던 터다. 호즈강이 관통하는 가운데 유네스코의 마음을 빼앗은 덴류지(天龍寺)를 비롯한 유서 깊은 사찰과 신사, 불상의 고향이었다. 깊은 숲과 너른 강, 배산임수의 이상적인 위치라···. 신선놀음은 우리의 것이었다. 좋아, 서쪽으로 먼저!

옛 귀족 타운으로 시간여행, 아라시야마ㆍ사가노 구역.

호즈강의 도게츠교.

버스에서 내리자니, 느닷없이 맹렬한 바람이 몸을 가격했다. 유명 관광지임을 알리는 인산인해의 소음보다 강물의 데시벨이 과하게 높았다. 호즈강의 물살을 토해내는 소리와 함께 아라시야마 산이 밀어내는 바람이 연신 볼을 때렸다. 뭉게뭉게 솜 뭉치 나무가 빽빽한 산 아래로 똬리를 치던 강은 아라시야마와 사가노를 가르며 육중하게 흘렀다. 도게츠교(渡月橋)는 이 두 구역의 중매자다. 154m 남짓한 목조 다리는 역사의 산 증인이요 목격자였다. 시대를 갈아타며 콘크리트로 분칠해 사람과 차의 무게를 이겨낸 지 어언 400년이 넘었다. 이름의 유래가 ‘달이 마치 다리에 걸려있는 모습 같다’고 했던가. 풍류와 사유를 즐긴 왕족과 귀족의 낭만에 젖기엔 웃고 떠드는 인파로 위기에 빠진 랜드마크 같았다. 발바닥까지 근육이 꽉 잡힌 사내가 끄는 인력거가 옛 낭만을 부채질하고, 그 곁엔 푸른 눈을 한 기모노 여인이 유령처럼 종종 걸음 중이었다.

도게츠교 바로 앞, 레스토랑과 가정집에 낀 이 문으로 진격.

고작 몇 계단을 올랐을 뿐인데, 발자국 소리가 메아리 치는 숲 속이다.

때론 잘못 들어섰다고 생각한 길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 호린지 사찰에서 맛본 뜻밖의 정상.

사가노 방면 인파에 지레 겁을 먹고 피신한 곳은 바로 호린지(法輪寺) 사찰이었다. 아라시야마 방면으로 도게츠교를 건너자마자 다이히카쿠(大悲閣)와 이치타니-유나카타 신사(櫟谷宗像神社)를 가리키는 이정표는 강을 따라 북으로 걷도록 종용했다. 절경이 있다는 푯말로 유혹하지만, 도심 전망대는 코앞에 있었다. 호린지 진입로는 가택 침입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되는 계단이다. 사찰은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허리 숙인 나무와 이끼 입은 돌계단으로 이어진 언덕으로 발길을 안내했다. 기원전 713년의 묵직한 위엄인가. 인파도 소음도 이곳에선 전멸했다. 세상을 무중력 상태로 만든 이 사찰은 오직 교토를 관조하는 전망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 뒤론 예능의 신을 모시기에, 바느질이나 악기를 잘 다루는 자녀의 손재주를 기원하는 부모의 염원이 나지막이 흐를 뿐이었다. 도게츠교로부터 사가노 구역의 등허리까지 길게 시선을 뺐다. 손재주를 얻는 기적이 일어날 리 만무했지만, 적어도 저 인파 속으로 들어갈 준비는 된 것 같았다.

작은 신사가 늘어선 덴류지로 가는 길목.

맹목적인 믿음이라기보단 필요에 따라 찾는 일본인의 신앙. 소망이 있기에, 내일을 산다.

덴류지 본당과 소겐치 정원으로 들어서는 입구이자 막다른 골목.

도게츠교를 지나 좌회전, 강을 역행하며 걸었다. 대나무 숲(竹林路)을 목표로 강행한 산책이다. 상점가를 뚫고 쉽게 진입할 수도 있지만, 이 방향이 고즈넉한 즐거움은 한 수 위였다. 신바람 난 물살을 가슴으로 받으며 걷는 길은 전통과 현대의 격돌하는 모습이었다. 이름난 바리스타가 커피를 뽑아내는 통유리 카페를 지나면 프리미엄을 강조하는 전통 료칸이 나오고, 그 곁은 언제 끝날지 모를 공사 현장이었다. 그 사이 꼭 끼인 골목길을 틈날 때마다 들락날락했다. 교토의 진가도 골목길에서 꽃피었다. 세파가 새겨진 기와 아래, 나무로 매무새를 마무리한 집과 매일 내 몸처럼 가꿨을 정원이 있었다. 작은 사찰은 어깨를 나란히 이어갔다. 가을 옷을 입은 낮은 담장은 소곤소곤 시를 읊는 풍경이었다. 남의 집을 훔쳐보는 나쁜 습관은 순전히 교토 탓이었다.

폭풍 같은 인파 속에서도, 대나무 숲은 자신을 비워내는 명상에 잠기게 한다.

감흥 없는 공원으로 올라 해석 불가한 일본어 이정표만 이어질 무렵, 치쿠린으로 가는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450m 남짓한 대나무 숲길이다. 1,000년 유구한 역사가 서늘한 바람을 몰며 성큼 마중 나왔다. 밀도 높은 대나무 줄기는 짙다 못해 거무죽죽했다. 하늘은 휘청거리는 대나무 이파리로 조각나고, ‘사각사각’ ‘쓱쓱’ 서슬 퍼런 가을 냉기가 회오리치고 있었다.

대 줄기 사이로 부서지는 빛이 안내하는 길은 덴류지 북쪽 문과 노노미야 신사(野宮神社)로 드라마틱하게 이어졌다. 사랑의 메신저로 통하는 노노미야 신사는 연애를 꿈꾸는 다국적 청춘들로 북새통이었다.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이질적 언어들은 사랑의 통역을 갈구했다. 숲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거짓말처럼 발걸음이 새뜻해졌다. 마른 이파리에조차 비워내기의 철학이 서려 있는 듯하다. 시시껄렁한 시름 따윈 기어이 이곳에 묻어버리리. 세계인을 교토로 이끈 힘의 원천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이유를 좀 더 탐험하고 싶다는 희망을 안고 시내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 편은 교토의 북쪽 킨카쿠지ㆍ키타노 구역으로 흘러갑니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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