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23 14:00

알고도 속고 속아도 모르는…중남미 국경 넘기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78)

등록 : 2017.08.23 14:00

국경(國境)【명사】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 국계(國界). 국어사전이 풀이하는 이 단어에 이견은 없다. 여느 '사이'처럼 국경에도 은밀한 감정선이 있다.

나보다 잘난 사람도 같은 국적이기에 평등하고, 국적만으로 자신의 존재가 결정되기에 그만큼 불평등하다. 세상을 호령하는 위인도 환영 받지 못하는 국적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곳이 바로 국경. 국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한, 국경 앞에서 나(뿌리다)는 한국인이요, 탕탕은 프랑스인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국경인 코스타리카 식사올라(Sixaola)와 파나마 과비토(Guabito)를 연결하는 서스펜스 다리. 양편 모두 출입국 심사 오래하기 대회가 있다면 챔피언이다.

국경인 코스타리카 식사올라(Sixaola)와 파나마 과비토(Guabito)를 연결하는 서스펜스 다리. 양편 모두 출입국 심사 오래하기 대회가 있다면 챔피언이다.

14개국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19차례 국경을 넘었다(일부 국가에 복수 출입을 했기 때문). 한국인인 내가 볼리비아 비자가 필요한 것 외에 국경을 넘는 걸림돌은 없었다. 프랑스인인 탕탕에겐 중남미 그 어느 나라에서도 비자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리 보면 국경 넘기란 쉽고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유럽에서 국경을 통과할 땐 출입국 스탬프가 없어 불평하지만(때론 찍어달라고 우린 애원하지 않는가!), 중남미 국경에선 (없으면 틀림없이 문제가 될) 출입국 스탬프가 귀찮아진다. 게다가 때론 어렵고 미치도록 알쏭달쏭하다.

니카라과에서 코스타리카로 갈 땐 강 한가운데에서 국경을 넘었다.

공포의 줄서기를 감내해야 하는 코스타리카 로스칠레스 출입국관리소. 보이는 것만큼 한가하지 않다.

여행한지 10개월 째, 우린 육로로 국경을 넘고 있었다. 중남미 중 코스타리카는 입국 시 출국 티켓을 강력히 요구하는 나라다. 한 독일인은 다른 나라는 몰라도 코스타리카 입국 시엔 모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출국 티켓이 없는 여행자가 입국 금지 당하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다는 증언이었다. 언제 어디로 돌아갈지 모르는 우리에게 출국 티켓이 있을 리 만무했다. 조작 외엔 방법이 없었다. 벨리즈 국경 사건 이후 불법과 한결 친해진 내가 아닌가. 이탈리아 출장 시 한 여행사를 통해 발권한 인보이스를 현재 티켓 스케줄과 비행기편까지 맞춰 정교하게 꾸몄다. 서류상 우린 한달 뒤 한국으로 돌아갈 몸이 되었다.

드디어 니카라과 산카를로스(San Carlos)에서 배를 타고 넘은 코스타리카. 산후안 강(Rio San Juan)에서 탑승한 보트가 정글 한 가운데에서 코스타리카 국기로 바꾸면서 입국 사실을 알렸다. 국경을 먼저 넘고 판자집 같은 코스타리카 로스칠레스(Los Chiles)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섰다. 이곳에서 입국 금지 당하면 환상적인 대낮에 실연당한 기분일 것 같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서 다소 허탈했다. 그들은 출국 티켓 자체를 묻지 않았다. 금쪽같은 작업 시간은 어디로? 나의 포토숍 기술은 유명무실해졌다.

“과테말라 온 걸 환영해! 그리고 2달러 입국세 내!” 벨리즈에서 과테말라 국경지인 멜초르데멘코(Melchor de Menco)로 걸어가는 길.

깨알 같은 국경 넘기 가십은 과테말라에서 꽃을 피운다. 과테말라는 원래 출입국세가 없다. 그런데 어느 국경이든 심사관은 1~2달러 이상 내키는 대로 출입국세를 요구한다. 너무 자연스러워 정신 안 차리면 자동으로 지갑이 열릴 분위기.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대부분 그냥 가라고 한다. 때론 거짓 영수증을 만드는 불굴의 의지를 보이거나, 지금은 안 내면 출국 시 내야 한다며 다른 동료의 주머니 사정까지 생각하는 우정을 뽐내는 공무원도 있다. 국경은 때로 그 나라를 응축해 대변하는 법. 과테말라의 부정부패를 뼛속같이 익힌 셈이다.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한 이 현장에서 누구는 당하고, 누구는 당한 사실조차 모른다.

페루의 라발사. 출입국관리소(오른쪽)가 덩그러니 산 아래 있다.

페루의 라발사와 마주하는 에콰도르의 줌바도 마찬가지. 스탬프를 찍어줄 관리 직원은 부재중. 오매불망 기다렸다.

에콰도르 툴칸(Tulcan)에서 콜롬비아로 국경을 넘을 땐 출국을 저지 당했다. 프랑스인인 탕탕도 마찬가지였다.(속으론 동지가 생겨 다행이라 생각했다). 페루에서 에콰도르를 넘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게으른 국경이라 생각한(출입국관리소 직원이 근무 시간에 포커 게임을 하고 있었다) 페루의 라발사(La Balsa)에서 입국 도장을 받았다. 문제는 그곳과 이곳 출입국 정보를 연결하는 시스템 체계가 없다는 거였다. 입국 도장을 받은 페이지와 신분 정보 페이지 복사본 3장을 요구했다. 다시 줄 서면 척 봐도 2시간은 찜 쪄 먹게 생겼다. 탕탕은 출국 스탬프 없이 그냥 콜롬비아로 건너가겠노라며 ‘크레이지 도그’가 되어 갔다. 사실 나도 미친 개가 될만했다. 그들의 문제를 왜 우리 책임으로 돌리는가?

정말 모르겠다. 늘 알고 싶은데 답이 없는 곳이 국경이다. 고로 우린 이렇게 말할 수 밖에. “국경은 '넘사벽'이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린 국경 삼각지대 ‘대마왕’과 만나게 되었다.


※콜롬비아-페루-브라질 국경 넘기가 이어집니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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