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19 10:30
수정 : 2016.12.19 10:30

알자스 와인 가도(街道) 크리스마스 마켓 엿보기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중(53)

등록 : 2016.12.19 10:30
수정 : 2016.12.19 10:30

키 작은 시절이다. 산타가 부모님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던 그때,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올려 덮었다.

참 영악했다. 부모님의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콩닥콩닥 뛰는 심장 소리를 들킬까 몸을 뒤척였다. 그 설렘이 마모된 지금, 밖으로 나갔다. 프랑스의 북동부 알자스였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14세기경 독일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의 12월은 모든 신경이 크리스마스에 집중된다. 차라리 크리스마스를 위해 산다고 해도 좋다. 이미 11월 중순부터 자동반사적으로 지갑을 열게 하는 화려한 쇼윈도의 행진이다. 프랑스에선 대부분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지새운다. 멀리 있는 가족이 소환되고, 푸아그라나 훈제 연어 등 가장 비싼 음식 앞에서 반달 웃음을 짓는다. 그 중 크리스마스트리는 화제가 꽃피는 현장이다. 트리 아래 가족 각자가 신는 신발 한 짝이 놓인다. 이날만큼은 선물을 기다리는 특수 신발이다. 선물 수혜자에겐 나이 제한도 없다. 조부모는 당신의 자식과 손자 손녀에게, 부모는 조부모와 자식에게, 형제는 자매에게 등 온 가족을 위한 선물이 신발 앞에 병정처럼 세워진다.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마켓(marché de noël)은 그래서 숙명적이다. '가족을 위해 무엇을 살까'란 행복한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요들송을 부르게 하는 목재 골조. 알자스의 대표 건축 양식, 콜롱바주.

프랑스 알사스 와인 가도

알자스는 프랑스 남부로 쏠리는 여행자를 북부로 돌릴 히든카드다. 와인이 이곳을 먹여 살린다. 리슬링, 피노 블랑 등 프랑스에서 씨가 마른 화이트 와인을 쏟아낸다. 1953년경 와인 가도(Route de Vin d'Alsace)도 만들어졌다. 보쥬산맥이 껴안은, 170km의 초록 융단이 깔리는 종단 코스다. 북부 마를랭과 딴느 사이엔 콜마르, 리크위르, 에기솅, 카이제르스베르크 등 1백여 개의 도시와 마을이 여행의 강약을 채운다.

포도원이 벌거벗은 겨울엔 크리스마스 마켓이 그 바통을 이어받는다. 스산하다 못해 음산해지는 프랑스의 겨울도 여기서만큼은 포근하다. 알자스 특유의 건축 덕분이다. 중세의 콜롱바주(colombages, 목재 골조)가 오색 벽을 불규칙적으로 뻗어 나가고, 들장미 소녀 캔디가 뛰쳐나올 듯한 집은 겨울 장식으로 부럽게 단장했다. 단, 사진을 펼쳐두고 어느 마을인지 구분하는 질문은 최고의 난센스. 독일과 기나긴 영토 분쟁에 시달린 이곳은 현재, 동화를 3D로 재현한 어여쁜 마을로 채워져 있다.

12월 초 알자스는 이미 크리스마스에 압도당했다. 노엘~ 노엘~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 사이로 가는 종소리가 굳은 심장 속으로 슬그머니 걸어왔다.

▦이유 있는 옹고집 마켓, 카이제르스베르크-비뇨블 (Kaysersberg)

에이요~ 크리스마스 왔나? 카이제르스베르크 상점의 거만한 루돌프.

'황제의 산'이란 권위적인 이름의 마을이다. 알버트 슈바이처의 고장으로 으쓱대는 곳이다(1875년 당시 이곳은 독일령이었다). 마켓 부스를 기웃거리는 순간, 어중이떠중이 상인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 탄생은 1987년. 당시 동네 사람들이 우리만의 전통 크리스마스 마켓을 만들자는 의기투합 하에 시작됐다. 상인 선정은 엄중한 심사를 거친다. 자치단체의 눈썰미로 고른 29명의 장인만 팔 권리가 있으니까. 덕분에 정체성이 확실한 아이템 구경에 숨이 차다. 시청 앞과 교회 언저리 등 광장이란 곳엔 어김없이 부스 행렬이다.

*2016년 1월 1일 이후 카이제르스베르크는 이웃 마을과 합병해 ‘카이제르스베르크-비뇨블’이 공식 명칭이다.

파리로 가는 길보다 독일 국경을 넘는 게 더 쉬운 알자스. 전통 맥주병 수집가의 천국이다.

마을 초입의 타운홀. 15~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집이 발걸음을 종용한다.

트리처럼 세워놓거나 주머니로 사용하거나. 지퍼의 혁신, 아이디어 브랜드 Zip Me.

마을을 관통하는 바이스(Weiss) 위 다리에선 캐럴이 메아리친다. 타 마을과 구분되는 결정적 랜드마크.

▦펑펑 터지는 장식 아이디어, 리크위르(Riquewihr)

고개 들어! 구경하다가 무조건 앞사람과 충돌사고가 벌어지는 메인 로드.

별 기대 없이 방문했다가 선물 줄 사람을 애써 떠올리게 하는 곳, 리크위르다. 순례길인 양 언덕으로 안배된 자갈길 위로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역사의 포스가 빈틈없이 이어진다. 주말 장사에 그치는 와인 가도 마을 중 주중 활기가 넘치는 편. 1년 내내 여는 크리스마스 숍(la féerie de Noël)도 문전성시요, 크리스마스 마켓도 광장과 골목 등 틈나는 대로 들어섰다. 골목은 훔치고 싶은 아이디어 지뢰밭이다. 집이든 상점이든 별별 인테리어 아이디어로 발목을 꽉 잡는다.

이 크리스마스 마켓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너그러운 시식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걸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곳이 왜 '미니 디즈니랜드'란 풍문이 있는지.

메인 로드의 지하. 와인과 치즈, 소시지 창고(Cave d'Affinage de Riquewihr).

1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숍(la féerie de Noël). 한번 들어가면 ‘지름신’이 강림하는 악마의 장소다.

▦돌고 돌아 제자리, 에기솅(Eguisheim)

30명의 장인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는 에기솅 크리스마스 마켓의 부스.

사실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에기솅을 넣기엔 송구스럽다. 수적인 열세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에기솅 자체가 굳이 크리스마스 시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곳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뽑힌, 국내외 다수 수상 경력이 이를 반증한다. 에기셩은 둥근 미로다. 마을의 핵심은 3개의 동심원 길, 덕분에 다음 행선지가 끊김 없이 연결되어 정신을 놓고 걷게 된다. 절제된 장식, 유니크한 소품 등 거리는 귀티가 좔좔 흐른다. 그 길 위 2개의 큰 광장(Place du marché aux Saules, Place Monseigneur Stumpf)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스치듯 구경한다. 멀리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코 앞인 환상, 멀리 온 줄 알았는데 어느새 제자리다. 길을 잃어도 좋은 곳이 세상엔 있었나 보다.

광장 마켓 중 하나(Place Monseigneur Stumpf). 주말에 활기가 솟는다.

절제된 크리스마스의 아름다움. 무심한 듯 툭, 어마어마한 아우라다.

교회가 오히려 화려하다. 11세기 교황 레오 9세의 생을 그려낸 이곳(St. Leo Chapel).

좌로 갈까, 우로 갈까? 어디라도 좋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수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이어집니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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