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준 기자

등록 : 2017.03.14 17:39
수정 : 2017.03.14 17:39

'방랑가객' 전인권은 어떻게 '촛불가객'이 됐나


양승준의 ‘악담(樂談)’

등록 : 2017.03.14 17:39
수정 : 2017.03.14 17:39

가수 전인권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후 첫 주말인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차 촛불집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김종진 인턴기자

“아이고, 잡혀 가면 어쩌려고 저기(촛불집회)에 섰어요?” 백발의 택시기사가 차에 탄 손님이 가수 전인권(63)이라는 걸 알아보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전인권이 지난 11일 오후 11시경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마지막 정기 촛불집회 공연을 마치고 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벌어진 일입니다.

택시기사의 연배는 전인권보다 많아 보였습니다. 1970년대 유신정권의 문화 탄압을 지켜 본 세대인 만큼, 현 정권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노래하는 일이 걱정됐을 겁니다. 노인의 기우라고만 볼 수도 없습니다. 무려 40여 년이 지나 박근혜 정부에서도 ‘문화 검열’은 진행형이었으니까요. 확인되지 않은 정치적 성향으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창작 활동에 들어갈 ‘돈줄’을 정부 입맛대로 통제하며 예술인을 길들이려 했으니 말입니다.

산전수전을 겪은 노장답게 전인권은 여유롭게 택시기사의 말을 받았습니다. “제가 살 면 얼마나 산다고요, 하하하.” 외부의 압력이나 눈치를 걱정하며 해야 할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진 않겠다는 얘기였습니다. 전인권은 택시기사에 두 번 인사를 하며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곤 기자와 광화문 모처로 가 촛불집회 공연 관련 얘기를 자정까지 이어갔습니다.

촛불집회를 기획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 따르면 20주 동안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 공연에 가장 많이 선 가수는 전인권입니다. 지난해 11월19일(4차)과 12월30일(10차) 그리고 지난 11일(20차) 세 번이나 무대에 올랐습니다. 촛불집회 공연엔 출연료가 없습니다(덜 알려진 가수에겐 교통비를 지급했지만, 유명한 가수엔 돈을 한 푼도 주지 못했다고 합니다). 무대에 서기 위해 필요한 의상과 분장 그리고 교통 비용을 모두 가수가 부담해야 합니다. 촛불집회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처참히 무너진 민주주의의 근간을 바로 잡기 위한 장이라 할 지라도 ‘적’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한 연예인의 입장에선 참여하기 부담스러운 무대일 수 있습니다. 정작 전인권은 세 번이나 촛불집회에서 노래를 한 일에 의미를 두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러게요, 절 세 번이나 불러주더라고요. 하하하.”

전인권이 선 세 번의 촛불집회에서 가장 파격적인 무대는 지난해 11월 광장에서 ‘애국가’를 불렀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오르간 반주에 맞춰 ‘애국가’를 불러 촛불을 든 시민들에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전인권은 “촛불집회에서 처연하게 ‘애국가’를 부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전인권은 ‘애국가’를 직접 선곡했습니다. 그가 ‘애국가’를 불렀던 시기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막 세를 올리던 때였습니다. 일각에선 ‘애국가’를 국가주의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전인권은 민감한 시기에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애국가’를 촛불집회에서 왜 불렀을까요? 그는 “세월호 참사 추모 공연을 기획할 때부터 ‘애국가’를 부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지닌 이를 위로할 노래는 ‘애국가’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리곤 ‘애국가’에 얽힌 긴 얘기를 털어놨습니다.

“2014년 안산에 가서 유희열, 장기하와 얼굴들 등과 세월호 추모 공연을 하려고 했어요. 공연은 무산됐지만, 내가 거기에 가면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란 고민을 많이 했죠. ‘걱정말아요 그대’를 부를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게 무슨 위로가 되겠어요. 유족들은 고등학생의 하얀색 신발만 봐도 억장이 무너질 텐데.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목소리로 ‘애국가’를 불러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용서를 말하기엔 섣부르지만, 나라에 대한 용서를 마음에 들일 수 있다면 유족들이 조금이나마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였죠. 그게(‘애국가’를 부르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흘러 이번(촛불집회)에 부른 거고요.”

전인권은 촛불집회에서 ‘걱정말아요 그대’를 두 번이나 불렀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OST에 실려 다양한 세대의 주목을 받은 만큼, 촛불 시민의 ‘떼창’(단체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일)도 가장 컸다는 게 퇴진행동 공연 연출팀 관계자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란 노랫말 속엔 누군가가 상처를 받아 힘들어 하는 과정과 아픔을 이겨내는 얘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촛불 시국’과 맞물려 더 큰 공감을 얻은 이유입니다. ‘걱정 말아요 그대’는 전인권이 아내와 이혼한 뒤 우울증에 빠져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나를 찾기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한 개인이 삶의 나락에 빠져 만든 노래가 거리에 나와 시민들과 호흡하며 시대의 노래로 거듭난 겁니다. ‘걱정 말아요 그대’는 대학 졸업식에서도 인기 곡으로 통합니다. 지난달 아주대 학위수여식에선 ‘걱정 말아요 그대’가 식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졸업생에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불러줬다고 합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학생들을 위해 총장이 위로의 노래로 작별을 고한 겁니다. 전인권은 “‘걱정 말아요 그대’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같아 정말 고맙다”고 했습니다.

가수 전인권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후 첫 주말인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차 촛불집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김종진 인턴기자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지금 전인권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일까요. 워낙 굴곡이 많은 가수가 세월의 역경을 딛고 부른 노래라서 더 울림이 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동률과 이적이 부른 ‘거위의 꿈’보다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이 청중의 가슴에 더 깊이 스며든 것과 비슷한 이유겠지요.

전인권의 ‘반전사’도 큰 몫을 했다고 봅니다. 1985년 밴드 들국화의 멤버로 데뷔해 대마초 흡연 등으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던 ‘반항아’는 이제 시대의 아픔을 보듬는 ‘어른’이 돼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것 만이 내 세상”이라고 외치며 어디로 튈 지 몰랐던 ‘방랑 가객’은 땅에 발을 딛고 그 어느 때보다 현실에 천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전인권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노래 ‘너와 나’(2015)를 만들었고, 후배 이승환과 함께 ‘길가에 버려지다’(2016)를 불러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을 지켜 보며 실의에 빠진 이들을 위로했습니다. 전인권은 “절망이란 말 뒤에 희망이 있다”며 역경의 터널을 지나온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정신병원에서 1년 4개월을 살았어요. 그곳 한 할머니한테 ‘나 알아요?’라고 물으니 ‘사노라면’이라고 답해주시더라고요(웃음). 그 땐 이도 빠지고 힘도 없어 도저히 노래를 부를 상황이 아니었죠. 그러다 어느 날 팔을 들어보니 팔이 들리더라고요. ‘아 힘이 있네’란 생각이 들었죠. 그 이후 하나씩 날 찾아갔던 것 같아요. 적지 않은 사람이 반 정도 죽을 각오를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생을 버티잖아요. 저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버텼던 것 같아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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