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준 기자

등록 : 2017.01.10 04:40
수정 : 2017.01.10 04:40

PD들 가요기획사 릴레이 이적... 방송가는 권력 재편 중


[딥 포커스]

등록 : 2017.01.10 04:40
수정 : 2017.01.10 04:40

KBS2 '트릭 앤 트루'(위로부터·FNC)와 MBC '미씽 나인'(SM), SBS '꽃놀이패'(YG)는 대형 가요기획사들이 제작에 참여해 지상파에 편성된 프로그램들이다. KBS·SBS·SM C&C 제공

새해 벽두부터 방송가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방송사 PD들이 대형 가요기획사로 잇달아 이적하며 방송 지형도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종편) 개국과 2015년 중국 진출로 인한 방송사 이탈 흐름에 이은 제3의 이적 물결이 방송가에 넘실대고 있다.

꼬리 무는 기획사 PD영입… “YG, 100억대 규모로 추진”

PD를 영입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업계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가요기획사의 움직임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가수 윤종신이 세운 미스틱엔터테인먼트는 최근 MBC ‘무릎팍도사’와 JTBC ‘아는 형님’ 등을 기획한 여운혁 PD를 영입했다.

그룹 빅뱅 등이 속한 YG엔터테인먼트(YG)는 더 큰 ‘판’을 구상 중이다. 9일 방송관계자들에 따르면 YG는 ‘라디오스타’등을 총괄한 조서윤을 비롯해 ‘무한도전’의 제영재, ’진짜 사나이’의 김민종 등 MBC 간판 예능 PD와 ‘프로듀스 101’등을 제작한 한동철 Mnet PD를 영입하기 위해 한창 물밑작업 중이다. MBC 등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한 방송작가는 “YG가 100억원대의 돈을 들여 10여 명의 PD를 영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방송가에 파다하다”고 귀띔했다. YG는 ‘해피선데이’와 ‘프로듀사’ 제작을 총괄한 서수민 전 KBS PD도 지난해 영입하려 했다는 후문이다.

그룹 엑소 등이 속한 SM엔터테인먼트(SM)와 그룹 AOA의 FNC엔터테인먼트(FNC)는 좀 더 발 빠르게 움직였다. SM과 FNC는 2015년에 KBS에서 ‘안녕하세요’를 기획한 이예지 PD와 SBS에서 ‘시크릿가든’을 연출한 신우철 PD를 각각 데려와 자체 콘텐츠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

SBS 출신 신우철(왼쪽부터) PD와 MBC 출신 여운혁 PD, KBS 출신 이예지 PD는 모두 가요기획사로 소속을 옮겨 방송 콘텐츠를 새로 기획한다. KBS· MBC·JTBC 제공

지상파 방송사에서 가요기획사로 ‘문화 권력 이동’

가요기획사들은 PD를 영입해 ‘몸집 불리기’에 주력하려는 모양새다. 소속 스타의 연예 활동을 통한 간접적 수익 내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매출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여기엔 ‘한류열풍’을 주도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야심이 담겨 있다. 해외 한류 시장에서 가장 수요가 높은 이들은 K팝 아이돌이다. 이들을 바탕으로 방송사나 외주제작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출을 올리고 콘텐츠 시장에서 영향력을 극대화려는 전략이다.

스타를 거느린 가요기획사가 PD를 영입해 제작 능력까지 갖추게 되면 방송사와의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양측의 권력 관계는 대형 가요기획사들이 유명 배우와 방송인들을 영입하면서 더 빠르게 뒤바뀌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에는 이미 대형 가요기획사 자본이 깊숙이 침투해 있다. 방송 중인 KBS2 ‘트릭 앤 트루’(FNC)와 SBS ‘꽃놀이패’(YG)를 비롯해 18일 첫 전파를 탈 MBC ‘미씽 나인’(SM) 등 가요기획사들이 제작에 참여한 프로그램들이 주요 편성 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다.

지상파 PD들의 가요기획사로의 이직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방송사의 권력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이다. 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PD들이 지상파를 떠나 가요기획사로 적을 옮기고 있다는 건 문화 권력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드라마 외주 제작사에 일하는 한 기획 PD는 가요기획사들의 지상파 PD 영입을 “온라인 콘텐츠 시장 선점 목적”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섭외 스트레스도 없고”… PD들이 떠나는 이유

방송 콘텐츠 유통 플랫폼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PD들의 가요기획사 이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TV가 아닌 온라인 유통을 통해서도 승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가요기획사에서 새로 둥지를 트도록 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지상파에서 대형 가요기획사로 옮긴 한 PD는 “요즘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시간 맞춰 집에 들어가 ‘본방 사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나도 방송사에 다닐 때 다른 프로그램은 인터넷 ‘짤방’으로 봤다. TV 채널이 없어 내가 만든 콘텐츠를 사람들이 안 보겠네란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종편이나 케이블이 새로운 조직이라고는 하나 어차피 방송사”라며 “방송사가 아닌 조직에서 섭외 스트레스 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어 가요기획사로 이직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한령’ 등으로 중국 진출 ‘먹구름’ 영향도

조직에 대한 불신도 PD들의 방송사 이탈에 한 몫하고 있다. MBC는 2012년 파업에 참여한 PD와 기자들을 직무와 관련 없는 부서로 배치해 조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상태다. 한 방송 관계자는 “회사 인사 문제도 있고, 믿고 따르던 선배 PD들이 회사를 떠난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중국 시장 진출에 ‘먹구름’이 가득 낀 탓도 있다. MBC에서 ‘나는 가수다’를 제작한 김영희 PD와 ‘놀러와’의 신정수 PD 등이 중국에 외주제작사를 차려 현지 방송사에 내보낼 새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으나 ‘한한령’ 등으로 방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최근 5년여 동안 한국 PD들과의 협업으로 제작 능력을 키우면서, 거액을 들여 국내 제작진을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띄게 줄었다. 중국에서 온라인 예능프로그램을 기획한 한 PD는 “종편 및 케이블 이적과 중국 시장 진출 같은 ‘큰 장’은 이미 닫혔다”며 “가요기획사로의 이적을 큰 돈 받고 방송사를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YG 등으로 PD들이 잇달아 이탈하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규 프로그램 기획 및 제작 등을 받쳐줄 ‘허리급 PD’들이 사라져 방송사의 전력 손실이 불가피하다. 한 예능프로그램 외주제작사의 고위 관계자는 “KBS 예능국도 2010년대 초반 이명한, 나영석, 신원호 PD 등이 줄줄이 CJ E&M으로 옮기며 홍역을 치렀다”며 “MBC에서 또 한 번의 대형 이탈이 이뤄지면 여파가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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