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 기자

등록 : 2017.01.07 04:40
수정 : 2017.01.09 10:23

불법 번식장에서 실험실로… 벼랑 끝 강아지들


등록 : 2017.01.07 04:40
수정 : 2017.01.09 10:23

[동물과 사람이야기] 15년간 인간 대신한 15만마리 실험견, 21마리만 새 삶

비글은 성격이 유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데다 암에 잘 걸리는 습성이 있어 실험견으로 많이 활용된다. 비글프리덤프로젝트 페이스북

충남 논산에 있는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실험에 쓰이는 동물들을 구조하는 일을 한다. 대부분의 실험 기관들은 실험이 끝나면 사용한 동물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대신 폐기 처분한다.

혹시 실험동물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실험 기관에 이런 동물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해 보호한다.

하지만 보호 요청을 제대로 들어주는 곳은 많지 않다. 비글구조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 15년간 실험에 동원된 15만 마리의 개 가운데 구조된 개는 21마리뿐이다. 지난달 한 대학도 실험에 사용된 개 다섯 마리를 안락사 시키는 대신 비글구조네트워크에 보내 주기로 약속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보내주지 않았다. 비글구조네트워크의 유영재 대표는 “대학병원의 연구자들은 실험에 동원된 개들을 살리고 싶어하지만 상부에서 폐기 처리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워했다.

이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은 관련 법 내용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훈령인 동물실험지침 11조는 ‘실험자는 실험동물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 가능한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살 수 있도록 우선 고려해야 한다’며 고려 대상으로만 삼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동물실험시설들은 실험동물들을 적극 살려야 한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물실험시설들은 안전을 이유로 실험동물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다. 국내 유수의 실험동물생산업체 A사 대표는 “실험동물들은 법에 따라 절대 밖으로 유출하면 안 된다”며 “정해진 절차에 따라 모두 폐기 처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설명은 다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실험동물을 다른 실험이나 실습에 재활용하는 게 아니라면 실험종료 후 실험실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법을 잘못 이해하거나 악용해서 빚어지는 일들을 막으려면 실험이 종료된 동물에 대한 반출규정 등을 보다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 실험견으로 사용되는 비글이 철창 밖을 응시하고 있다. 비글프리덤프로젝트 페이스북

미국에서는 실험동물 은퇴법인 ‘비글법’이 미네소타, 캘리포니아 등에 이어 지난 해 뉴욕에서 통과됐다. 이를 통해 공공연구기관에서 실험목적으로 이용된 개와 고양이 등은 실험 종료 후 일반 가정이나 주 동물보호소에 입양하도록 규정했다.

2012년 이탈리아에서는 미국 최대 실험동물 생산업체 중 하나인 ‘마샬 바이오 리소스’가 사육장에서 동물을 학대한 실상이 알려지면서 2,500여 마리의 실험견이 몰수됐다. 몰수된 실험견들은 모두 새 가정을 찾았다. 이형주 동물보호활동가는 “국내 정부기관들이 먼저 의학적으로 입양이 가능하다고 판단된 실험견들에게 새 삶을 찾아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실험동물 생산업체 마샬 바이오 리소스의 이탈리아 사육장에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이 구조한 비글을 안아보고 있다. 애니멀 이퀄리티 페이스북

국내에는 실험동물법이 따로 있지만 실험동물의 생산·수입 또는 판매자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실험동물을 공급받는 자에 대한 내용이나 처벌 규정이 없다. 그렇다 보니 지난 해 6월 비글구조네트워크가 실험동물법 위반으로 총장, 수의대학장, 관련 교수 등을 검찰에 고발한 K대학의 경우 무허가 번식장의 개를 공급받아 내과 실습과목수업 중 실험동물로 사용했지만 관련 처벌 규정이 없어 처벌을 받지 않았다.

실험동물법은 실험동물운영위원회, 동물보호법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실험 기관에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검찰에 고발당했던 K대도 수의사, 동물보호단체 추천인이 1명 이상 포함된 동물실험윤리위를 설치해 실험을 승인 받았다. 법무법인 한울의 권유림 변호사는 “불법 무허가 시설에서 동물을 공급받아 실험해도 처벌규정이 없어 실험자를 처벌할 수 없다”며 “명백히 법이 갖춰지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윤리위 역시 감독 기관 지정이나 처벌 규정이 없어서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법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5년간 한 대학의 실험실에서 의학용품 유해성 실험에 동원되다 구조된 '사랑'이 눈을 감고 있다. 고은경기자

더욱이 전체 실험동물의 30%를 사용하는 수의대는 교육용 실습 시설이어서 식약처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식약처의 입장이다. 식약처는 식품, 의약품, 화장품 개발 등에 필요한 실험용 동물과 해당 실험 시설을 등록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한정애 의원은 “동물실험은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 희생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며 “허점이 많은 관련 법의 조속한 개정이 필요하고 실험이 종료된 동물들이 일반 가정에 입양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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