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10 11:00

21세기 로빈슨 크루소를 위한 몰디브의 리조트


[박재아의 섬 타는 여자]최고의 친환경을 추구하는 '길리 랑칸푸시'

등록 : 2018.03.10 11:00

길리 랑칸푸시 리조트 숙소 앞 해먹.

부정하고 싶지만 여행은 본질적으로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낭비를 부추긴다. 그러나 여행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행은 사치고 낭비고 호사라는 선입견을 깬 리조트가 있다. 설립 초기부터 유기농 텃밭, 음식물 분쇄기, 해양보호센터, 산호 심기 등으로 환경보호에 앞장서 세계적으로 칭송을 받았다. 몰디브의 ‘길리 랑칸푸시(Gili Lankanfushi)’ 이야기다.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은 인류 역사상 섬 생활을 가장 잘 즐긴 사람이다. 영국 요크 태생의 그는 어느 날 폭풍우에 배가 난파되면서 무인도에 홀로 남는다. 그는 마냥 구조를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기로 결심한다. 난파된 배에서 쓸 수 있는 물품을 가져와 자신이 살아갈 환경을 정비하기 시작한다. 28년여간 홀로 무인도에 살면서 집을 짓고 살림살이를 만들고 땅을 경작하고 가축을 기르며 나름의 질서와 법칙을 제정하고, 스스로 총독ㆍ제독ㆍ재판관이자 왕으로 군림한다. 무인도를 '로빈슨 왕국'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일상에게 잠시 도망치고 싶을 뿐, 로빈슨 크루소처럼 나만의 왕국을 차리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 없는 세상'을 갈망하면서도, '타인과 함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양가감정을 가진 현대인은 ‘21세기 로빈슨 크루소’다.

어찌됐든 섬을 꿈꾸는 것은 단 몇 일이라도 나만을 위한 왕국을 꿈꾸기 때문이다. 외딴 곳에서 내 취향에 딱 맞는 음악과 책, 건강한 음식과 귀한 술,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별이 흐드러지게 반짝이는 곳, 그리고 새벽이건 늦은 밤이건 필요할 때 언제나 다가와 나를 극진히 아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는,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 늘 곁에 있다면…. 인도양에 위치한 몰디브의 랑칸푸시(푸시는 ‘작은 섬’이란 뜻)는 21세기형 로빈슨 크루소가 꿈꾸는 섬이다. 그리고 길리 랑칸푸시는 이 섬에 있는 단 하나의 리조트다.

섬의 모든 객실은 수상 방갈로다. 이동은 자전거로.

숙소 앞에서 그물질.

45개의 모든 객실이 워터방갈로인데, 그 중에서도 7채뿐인 ‘로빈슨 크루소’는 배로만 갈 수 있어 섬 안에 또 섬이 있는 셈이다. 무려 1,700㎡, 5개의 건물로 이어진 ‘프라이빗 레지던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워터방갈로다. 길리 랑칸푸시는 올해 트립어드바이저가 몰디브에서 첫 번째,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좋은 리조트로 선정했으며, 세계 친환경 인증기관인 어스체크(EarthCheck)로부터 2년 연속 실버 등급을 획득했다.

비싸고 현대적인 것만이 ‘럭셔리’가 아니다

길리 랑칸푸시의 분위기를 가장 잘 아우르는 표현은 ‘러스틱-럭셔리(Rustic-Luxury)’라는 합성어다. 러스틱은 ‘시골(풍)의, 소박한, 꾸밈없는’이라는 뜻의 형용사다. 나무ㆍ구리ㆍ파피루스 종이의 다소 거칠고 투박함은 그대로 간직한 채, 성의가 덜하거나 부족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수묵화처럼 의도된 여백이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감이 더해진다. 떠나올 때 즈음엔 정말 내 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곳에서 쓰고 만지던 물건들이 진심 새록새록 그리워질 것만 같다.

리조트의 모든 소품은 ‘러스틱-럭셔리’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고급스러운 욕실 용품.

자연친화적 고슴도치 장식.

몰디브의 다른 리조트처럼 후광이 비치는 에메랄드 바다 위 흰 건물들과는 대조적이다. 정말 로빈슨이 지은 판자집처럼 해류를 타고 떠내려온 물건들을 오랜 시간 모으고 다듬은 것 같은 소품들로 가득하다. 일부러 바랜 멋을 내려고 기교를 부린 앤티크와는 또 다르다. 자연에서 나고 자란, 시간과 손의 마찰로 보드라워진 물건들이 마냥 신기하다. 아버지 댁에도 분명 이런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 어린 시절도 잠시 떠올려 본다.

천국을 오감으로 맛보다

한 치의 오차 없이 각을 잡아 놓은 듯한 어메니티(욕실 용품처럼 무료로 제공하는 물품들)를 보며 ‘천국’을 외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수백년간 가꾼 남프랑스 귀족 집 같은 분위기에 감동하고 흠뻑 젖는 사람이 있다. ‘몰디브까지 와서 왜 그런 분위기를 찾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에게는 굳이 권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그러나 소위 시장에서 '잘 먹히는' 방법이 있음에도 이런 선택을 한 주인의 속내를 알고 나면 냉정하게 취향의 잣대를 댈 일만은 아니다.

오가닉 가든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주스.

오가닉 가든에서 재배한 어마아마하게 매운 몰비디안 고추.

맛과 건강에 자부심까지 갖춘 리조트 요리들.

조식 풍경

건강한 점심. 샐러드가정 말 맛있다.

길리 랑칸푸시는 음식이 참 야무진 곳이다. 특히 야채가 이렇게 달고 꽉 찬 맛을 가졌는지 태어나 처음 알았다. 비결은 ‘오가닉 가든’이다. 몰디브에서 최초로 텃밭을 만든 리조트답게 이곳에서 나고 자란 것만을 대접한다. 채소뿐이 아니다. 직접 잡은 해산물, 한 켠을 뚝 떼어 걸어놓은 벌집에서 흐르는 꿀, 재료의 특성에 따라 적절히 숙성된 장아찌, 수제 잼과 다양한 맛의 신선한 올리브 오일, 생과일 스무디, 허브로 만든 건강음료들....

이곳의 음식 컨셉트는 ‘모던 지중해-몰디비안 퓨전’이다. 정통 일식당도 있어서 음식에 관한 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2주에 한 번씩은 38명의 셰프들이 자신만의 창의성을 발휘해 자유 주제로 요리를 내놓는다. 가짓수만 많고 모양만 그럴듯한 호텔 뷔페와는 격이 다르다. 세련되고 예쁜 것들이 늘어날수록 핸드메이드, 아날로그,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것에 더 눈이 가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인공조미료 맛이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장아찌가 아삭아삭 부서질 때마다 입안에서 천국의 소리가 들린다. 주위를 360도 휘감은 물빛이 이미 비현실적이라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데, 먹는 것까지 이러하니 행복의 수치가 상승할 밖에.

정상급 친환경 리조트에만 규칙들

길리 랑칸푸시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플라스틱은 사용하지 않는다. 가져온 플라스틱은 되가져 간다. 둘째, 음식물 쓰레기는 100% 퇴비로 활용한다. 셋째, 건강한 여행자는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되려 가꾸고 돌아간다. 물을 비롯한 모든 음료는 유리병에 담아 밀봉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더 로켓'이라는 몰디브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장비를 통해 퇴비로 가공한다. 모양도 정말 로켓처럼 생겼다.

지난해 5월에는 ‘해양생태실험실(Marine Biology Laboratory)’이 문을 열었다.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을 나가기 전 해양동식물학자들이 해양생물들의 가치와 종류, 왜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아무 것도 모르는 바다 속을 볼 때 더욱 절실하다. 지나가는 물고기의 색이 마냥 화려하다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을 때와는 또 다른 경이감이 밀려온다. ‘코럴라인(Coral Line)’은 산호를 양생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꽤 많은 리조트가 실천하고 있지만, 길리 랑칸푸시는 2014년부터 이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올해까지 180줄(5미터 길이의 밧줄에 50개의 산호를 심어 배양한다)을 깔았다. 3년마다 웹사이트에 결과를 올려 직접 산호를 심은 고객들이 발달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해준다.

섬 안에서는 자전거로 이동한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

플라스틱은 가져가 주세요. 이 가방에 담아서.

배에 올라타면 반갑게 인사를 한 후 가장 먼저 신발을 벗긴다. ‘No News, No Shoes’라고 쓴 에코백 재질의 봉투에 신발을 담고, 돌아갈 때 다시 꺼내 신는다. 어떤 큰 사건이나 신발도 전혀 흔적을 남기지 못하는 무인도, 로빈슨 크루소의 섬으로 들어가는 필수 절차다. 마침 여벌의 여름용 신발을 가져가지 않았는데 다행이다. 페디큐어는커녕 발톱도 제대로 안 다듬은 못 생긴 발이 좀 부끄럽긴 했다. 나흘 동안 모래와 산호에 자극 받은 덕분인지 부쩍 건강해진 것 같기는 하다.

소설 속 프라이데이는 로빈슨 크루소가 가르치는 '문명'을 배우고, 그를 보필하는데 사력을 다하는 가장 좋은 친구이자 하인이었다. 이 리조트의 ‘미스터(혹은 미세스) 프라이데이’는 자신이 담당한 빌라의 손님을 24시간 모시는 집사이자 관리인이며, 고객을 사랑하는 부지런한 친구다. 뭘 해주지 못해 안달이 난 정이 많은 좋은 친구 말이다. 나를 위해 24시간 존재하는 한 사람, 엄마 말고는 처음이다.

몰디브와 길리 랑칸푸시 가는 방법

가장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은 좀 비싸지만 대한항공을 이용하는 것이다. 스리랑카 콜롬보를 경유, 몰디브 말레까지 운항한다. 중국동방항공과 스쿠트항공을 이용하면 다소 저렴하다. 이 외에도 싱가포르항공, 실크에어, 에어아시아 등이 말레에 취항한다.

말레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리조트에서 마중을 나온다. 나무 판에 큼지막하게 쓴 ‘길리 랑칸푸시’를 찾아 본인의 이름을 확인한 후 바로 보트를 타러 이동한다. 몰디브 여행 구조는 너무나 단순하다. 공항에 내려 리조트 직원을 만나 여정을 즐기면 된다. 다시 공항으로 올 때까지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박재아 여행큐레이터 DaisyParkKorea@gmail.comㆍ사진제공 드림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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