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6.06 11:00
수정 : 2017.06.06 11:00

[애니북스토리] 사육곰은 철창 밖 구조자의 손을 꼭 잡았다


등록 : 2017.06.06 11:00
수정 : 2017.06.06 11:00

동물보호단체 애니멀스아시아재단의 질 로빈슨 대표가 15년 간 철창에 갇혀 산 사육곰 재스퍼를 구조하는 순간 재스퍼가 쇠창살 밖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애니멀스아시아(Animals Asia)

한국에는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처럼 이 땅에 존재하지만, 존재를 들키지 않고, 존재를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의도적인 무관심 속에, 존재하는 동물이 있다.

사육곰이다. 웅담채취만을 위해 사육되는 곰을 일반적으로 사육곰이라고 부르는데 최근 그들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3년간 진행되던 중성화수술이 마무리되면서 660마리 남은 사육곰의 개체수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맞춰 사육곰 문제 해결을 위해 주도적으로 뛰었던 시민단체 녹색연합은 한국 사육곰 백서인 ‘사육곰, 36년의 이야기’를 펴냈다. 사육곰 문제는 전형적인 국가 정책의 실패가 동물학대로 이어진 참극이다. 사육곰이 우리나라에 오게 된 건 36년 전인 1981년이다. 정부가 농가소득증대와 재수출용으로 곰의 수입을 허가하고 장려했다가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종인 곰 보호 여론이 높아지자 1985년 곰 수입을 전면 금지한다. 그 사이 수입된 496마리의 곰은 한때 1,500여 마리로 불어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웅담 소비 감소, 값싼 중국 웅담의 수입, 학대 논란이 겹치면서 사양 산업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1999년 곰 사육 관련 법령을 처음 만들면서 정부는 곰 사육 정책을 허용했고(현재 세계에서 곰 사육을 합법화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뿐이다), 2013년에는 환경부 장관이 사육곰을 도축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기도 해서 논란을 키웠다. 멸종위기종인 사육곰 문제의 해법이 고작 도축이라니. 사육곰 논의 과정은 한 국가의 생명의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국에는 사육곰 660마리가 살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녹색연합의 활동가를 만날 때면 늘 사육곰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 물었다. 2013년에는 한 마리의 사육곰이라도 구조하기 위한 사육곰 구출작전 프로젝트가 진행됐는데 사육곰을 받아줄 공간이 없어서 무산됐다고 했다. 농장주에게 사육곰을 샀을 경우, 그 가격이 이후 곰을 일괄 매입할 때 기준 가격이 되는 부담도 작용했다고 하니 사육곰 문제 해결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알 수 있었다. 참혹한 환경에 갇힌 곰의 눈빛을 직접 현장에서 마주한 활동가들의 좌절에는 비할 것도 아니어서 나의 안타까움은 내색도 못했다.

곰은 맹수임에도 인간 세상에 끌려와서 온갖 고초를 당하고 있다. 관람객에게 인기가 많아 동물원의 고정 멤버이고, 동물 쇼에서는 공을 굴리고 두 발로 선 채 춤을 추고, 웅담을 빼앗긴다. 한 때는 토템으로 인간이 숭배하기도 했는데. 베른트 브루너는 ‘곰과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은 동물의 의지를 꺾고, 동물이 인간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월성을 느끼고, 인간과 다른 종 간의 경계를 각인하려는 것이라며, 곰과 인간의 역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애증관계라고 설명한다.

철창 속 사육곰이 울부짖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이제 한국에 사육곰은 660마리만 남았다.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최선은 정부가 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전부 매입해서 관리하는 것인데 이미 정부는 매입을 거부하고 중성화수술 사업을 선택했다. 중성화수술 전에 마지막으로 태어난 2015년생 곰들이 열 살이 되어서 도축이 가능해지는 2024년에 곰 사육을 금지하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다시 말하면 10년을 기다렸다가 모두 죽이겠다는 것이다. 660마리의 생명에게 10년 간 철창 안에 갇혀 죽을 날만을 기다리라니. 종국에는 죽이기 위해서 긴 시간 동안 논의하고, 곰들을 수술대에 올린 것인가.

하긴 2013년에 사육곰 단 한 마리를 구조하는 것도 포기한 마당에 수백 마리의 곰을 어디에 풀어놓을까.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그보다 더 좋은 생명교육 현장은 없다. 동물원의 작은 우리에 갇혀 이상행동을 하는 곰 보다 인간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구조되어 자유를 찾은 곰의 곰다운 행동을 보는 것이 백만 번 교육적일 테니까.

중국 청두에 위치한 곰 보호소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재스퍼. 애니멀스아시아(Animals Asia)

중국에서 활동하는 동물보호단체 애니멀스아시아재단은 사육곰 300여 마리를 구조해서 보호한다. 산 채로 웅담을 뺏기는 고통을 겪으며 살던 곰들은 그곳에서 비로소 곰처럼 산다. 애니멀스아시아재단의 질 로빈슨 대표는 한국의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재스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5년 평생 좁은 철창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누운 채로 웅담을 뺏겼던 재스퍼를 구조하는 날, 재스퍼는 쇠창살 밖으로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고. 우리도 660마리 곰에게 죽음이 아닌 손을 내밀 수 있기를 바란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사육곰, 36년의 이야기’, 녹색연합

‘곰과 인간의 역사’, 베른트 브루너, 생각의 나무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이형주, 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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