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 기자

등록 : 2017.10.17 14:19
수정 : 2017.10.17 15:48

[고은경의 반려배려] 돌고래 한 마리, 대수 맞습니다


등록 : 2017.10.17 14:19
수정 : 2017.10.17 15:48

지난 5월 서울대공원 해양관에서 큰돌고래 태지가 사육사와 스킨십을 하고 있다.

또 큰돌고래 ‘태지’(17세·수컷) 얘기다. 똑 같은 주제라고 지겨워할 수도 있고, 뭔데 그렇게 집착하냐고 물을 수 있다.

이제 주변 사람들은 ‘태지’라고 하면 가수 서태지가 아니라 큰돌고래 태지를 먼저 떠올릴 정도다. 서울대공원에서 9년간 쇼를 하다 제주 퍼시픽랜드에서 지내고 있는 태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일종의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 5월 초 제주 앞바다 방류가 결정됐던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의 먹이훈련을 보러 갔다가 홀로 분리된 태지를 만났다. 당시 태지는 어느 정도 울산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으로 거취가 정해져 있었는데 동물단체들의 의견을 종합해 태지를 다시 좁은 수족관에 가두는 데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설마 이슈가 된다고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이 태지의 위탁을 거부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려는 현실이 됐다. 보도가 나가면서 (이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안 그래도 ‘고래 무덤’이라고 비난 받고 있던 고래생태체험관은 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태지는 갈 곳을 잃었다. 차라리 태지를 조명하지 말 걸 그랬나, 울산으로 이송된 다음에 관리 문제를 지적하는 게 나았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5월 금등이와 대포가 방류되기 전 서울대공원에 모여 있는 태지(왼쪽 첫번째), 금등이, 대포.

서울대공원에서 한 달간 혼자 지내던 태지는 스트레스로 인해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고, 서울대공원은 6월 중순 결국 태지를 5개월 한정으로 위탁을 자처한 제주 퍼시픽랜드에 보냈다. 하지만 제주 퍼시픽랜드는 지금도 수중 돌고래쇼를 하며, 수족관 내에서 남방큰돌고래와 큰돌고래를 번식시켜 혼혈 돌고래들이 태어나고 있는 곳이다. 이대로라면 태지는 오는 11월 말 퍼시픽랜드의 소유가 되며 남은 생을 쇼를 하는 것도 모자라 안전 장치도 없이 관람객들과 사진까지 찍어야 하는 신세에 놓이게 된다.

태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지난 7월 18일 금등이와 대포가 제주 고향으로 돌아간 날이다. 서울대공원은 태지에 대한 취재 요청을 거부했지만 무작정 퍼시픽랜드를 찾아갔고, 현장에서 관계자를 설득해 수조에 떠 있는 태지를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관계자가 뻗은 손을 탁 쳐내는 등 예민한 모습을 보였지만 3개월 가량이 지난 지금은 다행히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9년 간 함께 했던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가 제주 고향으로 돌아간 7월18일 태지는 제주 내 수족관 뒤 수조에 떠 있다.

태지의 위탁기한 종료가 다가오면서 동물보호단체들은 지난주 태지의 위탁기간을 연장하고, 해양보호소인 바다쉼터 건립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서울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으며, 계약을 변경하기 위해선 쌍방간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는 그 동안 2013년 제돌이와 삼팔이, 춘삼이를 고향으로 돌려보낸 데 이어 2015년 태산이와 복순이, 지난 7월 금등이와 대포를 방류하면서 동물에 대한 책임감 있고 선진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태지가 쇼돌고래로 살아가는 걸 방치한다면 ‘돌핀 프리‘(dolphin free· 돌고래가 없다는 뜻)를 위한 서울시의 노력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돌고래 방류, 관리에 드는 세금이 얼만데…’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무분별하게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수입한 정부, 돌고래쇼를 보고 싶어했던 우리도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9년간 쇼를 했던 태지에게 주어진 5개월의 시간은 짧다. 그 동안 태지를 위한 어떤 방안도 실제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 서울시는 우선 태지의 위탁기한을 연장해야 한다. 이는 또 서울시 문제만은 아니다. 야생동물, 해양동물 주무부처인 환경부, 해양수산부도 서울시와 바다쉼터 설립 등 구체적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글·사진= 고은경 동그람이 팀장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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