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수 기자

등록 : 2017.04.18 17:00
수정 : 2017.04.18 17:00

봄바람 일렁, 가슴은 출렁…고창 3가지 푸르름


학원농장 청보리밭ㆍ고창읍성 대나무숲ㆍ선운사 녹차정원

등록 : 2017.04.18 17:00
수정 : 2017.04.18 17:00

봄이 흐드러지는 4월, 꽃 보러 갔다가 녹색에 끌렸다. 파릇파릇 초록도 아니고 짙은 녹음도 아니다.

그런데도 분명한 색깔과 매력으로 시선을 잡는다. 학원농장 청보리밭, 고창읍성 대나무숲, 선운사 녹차정원 등 전북 고창의 3가지 푸르름을 소개한다.

고창 학원농장 청보리밭에 바람이 일자 이삭이 팬 보리가 물결처럼 춤을 춘다. 고창=최흥수기자

맥파(麥波) 일렁이는 학원농장 청보리밭

공음면 학원농장을 찾아간 14일, 고창에는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까지 심술을 부렸다. 가장 먼저 취수탑을 개조한 전망대에 올랐다. 경관용으로 심은 노란 유채와 보리밭의 대비가 선명하다. 아직 전체적으로 이삭이 패지 않았지만, 전망대 주위 언덕배기의 보리는 까끌까끌한 수염을 제법 길게 내밀었다.

유채와 조화를 이룬 청보리밭.

바람에 일렁이는 유채 꽃

드라마 ‘도깨비’에서 메밀 밭 배경이었던 곳에 남은 세트장.

공유, 김고은과 찰칵!

보리밭에 간간이 유채가 섞여 더욱 이채롭다.

봄바람이라 하기엔 바람이 거칠었다. 유채꽃은 노란 방울을 매단 것처럼 머리채를 흔들었고, 보리밭에는 희끗희끗한 물결이 일렁거렸다. 잔물결처럼 살랑대다가 때로는 거센 파도처럼 넘실댄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바람 따라 춤추는 맥파(麥波)에 가슴도 출렁인다. 보리밭에 일렁이는 물결을 보기에는 바람 부는 날이 오히려 제격이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좋은 흔적은 또 있다. 학원농장은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한 신(神), 도깨비’에서 메밀 밭으로 등장한 곳이다. 실제 6월경 보리 수확이 끝나면 해바라기와 메밀을 심어 여름과 가을 들판은 노랗고 하얗게 변신한다. 촬영이 끝난 후 세트는 모두 철거했지만, 농장에서 자체적으로 모형을 만들었다. 허름한 세트 한쪽 벽면은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공유와 김고은이 환히 웃는 모습으로 장식했다.

유채와 어우러진 보리밭 사잇길만도 충분히 좋지만, 올해 학원농장은 3개의 걷기길 코스를 추가했다. 보리밭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도는 길은 전구간이 포장이 돼 있어 누구나 편히 걸을 수 있고, 뒤편 ‘가로수길’은 일부 비포장이지만 학원농장의 초창기 시설을 볼 수 있는 산책로다. 아름드리 튤립나무가 멋진 이 길은 1960년대에 닦았다. 진영호(69) 학원농장 대표는 “당시 신작로보다 넓은 6m 폭으로 농로를 냈으니 주변으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농장은 그때만 해도 얕은 산자락에 8개 마을을 끼고 있는 구릉이었다. 물을 댈 수 없어 버려진 땅을 개간한 것은 진 대표의 어머니 이학 여사다. ‘학이 노니는 들판’이라는 의미의 ‘학원(鶴苑)’도 모친의 이름에서 따왔다. “어머니가 대장부였어요. 모두가 농촌을 뜰 때 반대로 농장을 가꾼 거죠. 도시로 가는 주민들이 내놓은 땅을 당시 평당 2원 정도에 사들였다고 들었어요.” 진 대표도 모친의 권유로 농대를 졸업하고 농장을 시작했지만 경험 부족으로 실패했다. 그 후 대기업에서 이사직까지 올랐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1992년 귀농해 보리밭을 일궜고, 이태 뒤에는 관광농원으로 지정 받았다. 모두가 보리농사를 포기할 때 새로 시작했으니 모친과 닮은 꼴이다.

22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는 다양한 체험행사를 곁들인 ‘청보리밭’ 축제가 열린다. 입장료는 따로 없다. 진 대표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마음은 알지만, 산책로를 벗어나 보리밭에 들어가는 것만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한다. 농사 망치는 안타까움은 관광농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해 11월경 파종해 지금은 ‘청보리밭’이지만 5월 하순이면 ‘황금보리밭’으로 변신한다.

고창읍성의 숨겨진 보물 ‘맹종죽숲’

고창읍성은 주민들에게 보물 같은 존재다. 조선 단종 원년(1453) 왜의 침입을 막고 호남 내륙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지만, 지금은 아침저녁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 더 없이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고창읍성 맹종죽 숲은 규모는 작아도 대 숲의 기운은 그대로다.

벚꽃이 흐드러진 고창읍성 내부

고창읍성은 오후 10시까지 경관조명을 밝힌다.

고창읍성 북문 야경.

어느 봄날…성곽 길 외부의 흐드러진 벚꽃 아래서.

1,684m 둘레의 자연석으로 쌓은 성곽 길 안쪽으로 솔숲이 울창하고, 동헌과 객사 등 내부 건축물을 연결한 산책로도 아늑하기 그지 없다. 고창의 옛 지명을 따 모양성(牟陽城)이라고 부르는 고창읍성은 남문이 없고, 북문이 정문 역할을 대신한다. 북문으로 들어서서 대개는 왼편으로 오른다. 동문 바로 위 치성에서 내려다보면 탄탄하고도 단아한 성곽 외벽과 고창읍내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읍성의 대표 사진을 찍는 곳도 이곳이다. 하지만 운치로만 따지면 반대편 서문 쪽이 한 수 위다. 객사와 동헌, 팔각정 등을 연결하는 산책로는 성(城)의 내부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노송이 멋들어진 자연공원이다.

특히 팔각정 인근 맹종죽 숲은 읍성의 숨겨진 보물 같은 존재다. 고개가 아플 정도로 하늘로 쭉쭉 뻗은 대나무가 빼곡해 비밀의 숲에 들어선 느낌이다. 담양 죽녹원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지만, 대숲의 선선한 기운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굵기나 밀도에서 양보다 질이다. 이곳 맹족죽이 숲을 이룬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38년 유영하 스님이 이곳에 보안사(普眼寺)라는 사찰을 짓고 경관조경수로 심은 것이 오늘날 황홀한 대숲으로 성장했다.

고창읍성은 규모가 크지 않아 성곽 길과 내부 산책로를 모두 걸어도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오후 10시까지는 경관조경이 붉을 밝혀 야간산책을 즐기기에도 운치 있다.

선운사, 동백보다 은은한 차(茶) 정원을 거닐다

봄 선운사는 동백이다. 그것도 개화가 늦은 춘백(春栢)이다. 벚꽃 잎이 날리는 요즘도 사찰 뒤편 산자락이 발갛게 물들어 있다. 후두둑 떨어진 꽃잎도 바닥을 붉게 장식했다. 그 강렬한 색에 끌리는 건 당연하지만, 사실 선운사 경내 수목의 8할은 차(茶)나무다.

선운사 녹차정원.

선운사 늦 동백은 붉은 꽃송이를 달고 있다.

노 스님의 처소 인근도 온통 녹차밭이다.

자연에 가깝게 관리하는 차 숲.

선운사 녹차(황차). 색이 맑을수록 좋은 차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백제 위덕왕(554∼598년 재위), 혹은 신라 진흥왕(540~576년 재위) 때라는 설이 전한다. 어쨌거나 1,500년 가까운 셈인데 선운사 차 밭의 역사도 이때부터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선 천왕문 앞에서 도솔암에 이르는 약 500m 두 갈래 산책로 사이가 전부 차 밭이다.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석상암과 템플스테이 주변 밭도 모두 차나무 차지다. 가지런하게 정리된 차 밭을 오르내리는 길은 노(老) 스님들이 신선처럼 산책을 즐기는 비밀의 정원이다. 이렇게 정원으로 관리하는 것만 약 20만㎡(6만평)이고, 부도전 참당암 도솔암 인근의 야생 차 밭도 3만평에 이른다.

선운사에서 차 밭을 본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자칭 ‘차 숲 디자이너’, 박시도씨가 들어오면서 관리를 이원화했다. 관광객의 발길이 많은 곳은 ‘차 정원’으로, 야생 차 밭은 자연에 가깝게 가꾸고 있다.

차 정원은 이랑을 따라 깔끔하게 다듬어 관람객의 마음도 정갈해진다. 물론 밭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도 무방하다. 야생 차는 보기 좋게 다듬지 않고, 한해 두어 차례 덩굴만 걷어낸다. 큰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고 그늘을 드리워 생태의 균형을 이룬 숲이다. 얼핏 보기에도 번들거리는 찻잎이 한결 싱싱해 보인다. 가격도 당연히 정원에서 따는 차보다 비싸게 받는단다. 추사가 선(禪) 논쟁을 벌였던 백파선사로부터 이곳 차를 선물로 받고 최고라 극찬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박시도씨는 차의 대중화를 위해 까다로운 차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률적으로 다도(茶道)를 적용하기 보다, 사찰에서 수행의 과정으로 여기는 선차(禪茶)와 커피처럼 누구나 즐기는 기호성 차로 이원화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도솔암으로 가는 길 중간의 작은 오두막에 들르면 관리인이 직접 우려낸 차를 맛보고 구입할 수 있다. 첫물 차는 이달 27일경부터 수확한다. 남부지방에서 곡우(20일) 전에 수확하는 우전 차에 해당하는데, 맛과 향은 선운사 차가 오히려 뛰어나다고 자랑한다.

고창=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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