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선 기자

등록 : 2017.07.11 18:00
수정 : 2017.07.11 18:00

거북이 지키는 영롱한 보물섬...필리핀 보홀


인천공항에서 4시간30분...필리핀항공 직항 운항

등록 : 2017.07.11 18:00
수정 : 2017.07.11 18:00

필리핀 보홀 섬은 현란한 석양으로 유명하다. 알로나 해변의 유난히 길게 누운 수평선으로 해가 지면 온통 노을의 세계다. 보홀=최문선 기자

몸과 마음을 보양하는 곳, ‘휴양지’의 요건. 분잡하면 안 된다. ‘멍때리기’가 21세기형 휴양이라지만, 그게 전부여도 곤란하다.

일주일이 보통인 ‘을들’의 휴가. 가고 오는 데 쓰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파울로 코엘료는 “여행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고 했던가. 그러나 먹고 자는 게 비싸면 마음이 불편하다. 무엇보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워야 한다.

그런 요건에 들어맞는 곳, 필리핀 보홀(Bohol)이다. 섬나라 필리핀에서 열 번째로 큰 섬인 보홀. 크기는 4,117㎢로 제주도의 두 배가 조금 넘는다. 위치는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약 700㎞, 널리 알려진 세부 막탄 섬에서 동남쪽으로 약 70㎞. 외따로 떨어져 있는 덕분에 사람 손을 덜 탔다. 그래서 덜 비싸고 덜 붐비고 더 곱다. 연평균 기온은 섭씨 27.8도로, 동남아 휴양지다운 기후다. 보고 먹고 즐길 것은 보홀 본섬과 다리로 연결된 작은 섬 팡라오에 몰려 있다.

바다 거북과 눈 마주치다…‘에코 투어’

다이버의 천국,보홀 발리카삭 섬. ‘에메랄드 빛’이라는 수식어로 모자란 영롱한 바다다. 최문선 기자

‘청정 자연’을 내걸지 않은 휴양지가 있을까 싶지만, 보홀의 자연은 문자 그대로 맑고 깨끗하다. 보홀이 필리핀의 숨은 보석이라 불리는 이유다. 팡라오에서 필리핀 전통 배인 방카를 타고 30분 나가면 다이버의 성지로 불리는 발리카삭 섬이다. ‘에메랄드 빛’이라는 흔한 수식어는 발리카삭의 바다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캔디바 아이스크림 같기도, ‘봄베이 사파이어’ 칵테일 같기도 한 영롱한 물 속에서 바다 거북을 만났다. 30분 만에 일곱 마리씩이나. 중생대 트라이아스기부터, 가장 오래 지구에 산 파충류인 거북. 알록달록한 열대어 사이에서 평화롭게 바닷말을 뜯던 거대한 바다 거북이 수면으로 올라왔다. 스노클링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심하고 게으른 표정으로. 거북은 하얀 배를 보이고 물 밖으로 머리를 잠시 내밀더니 이내 다시 잠수했다.

“바다 거북을 볼 수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여행지 가이드의 약속이란 실망으로 끝나게 마련이므로. 보홀에선 진짜였다. “돌고래를 만나러 간다”는 것도 빈말이 아니었다. 영화 ‘프리 윌리’ ‘그랑 블루’의 그 장면이 이른 아침 팡라오 앞바다에 있었다. 돌고래 수십~수백 마리가 여기저기서 수면 위로 뛰어 올랐다. 가이드는 “날씨 좋은 날 서식지를 제대로 찾아 가면 거북과 돌고래를 못 보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포카리 스웨트’ 광고 촬영지인 버진 아일랜드도 보홀 바다에 있다. 모래톱이 매일 나타나 바다를 둘로 가른다.

발리카삭 섬의 바다 거북. 30분 간 스노클링하면서 일곱마리나 만났다. 필리핀관광청 제공

돌고래 꼬리 하나 보면 다행인 돌고래 투어가 아니다. 수십~수백 마리가 바다 위로 거푸 뛰어 오른다. 필리핀관광청제공

청정한 건 보홀 섬도 마찬가지. 반딧불이는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만 살아남는 환경지표 곤충이다. 본섬의 아바탄 강은 반딧불이 서식지다. 해 저문 뒤 카약을 타고 맹그로브 나무 숲을 따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노 젓는 소리 말고는 온통 암흑과 정적이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들어 오면 그게 바로 반딧불이다. 먹이가 있는 나무에 몰려든 수만 마리가 조용히 반짝이는 마법. 사진엔 담기지 않는다. 오직 마음에 새겨 두는 장관이다. 필리핀 사람들에겐 프러포즈 명소라고 한다.

팡라오 알로나 해변에선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600m 길이의 넓은 해변, 산호초가 부서진 하얀 모래, 청록색 물빛에 낮은 수심. 필리핀 사람들이 해수욕하다 잡은 성게를 바로 발라 먹을 정도로 깨끗하고 순박한 바다다. 무위와 평온이 알로나의 정체성이다. 동네 개들도 백사장 곳곳에 널브러져 낮잠을 즐긴다. 숙소와 식당, 상점이 알로나 해변에 몰려 있다. 식당들은 저녁마다 백사장에 테이블을 내놓는다. 노을빛이 사라지면 양초를 켠다.

매일 모래톱이 나타나 청록색 바다를 둘로 가르는 무인도 버진 아일랜드. '포카리 스웨트' 광고 촬영지다. 최문선 기자

키세스 초콜릿을 닮은 오름, 초콜렛 힐. 해 뜨고 질 때가 제일 예쁘다. 필리핀관광청 제공

심심해지면 보홀 곳곳을 돌아 보자. 휴양지의 볼 거리에 큰 기대를 하는 건 허무한 일.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곳은 본섬의 초콜릿 힐과 로복 강이라고 한다. 초콜릿 힐은 제주 오름을 닮았다. 120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키세스 초콜릿 같은 크고 작은 원뿔 모양 오름 1,268개가 눈이 닿는 곳까지 펼쳐진다. ‘거인이 짝사랑한 나머지 납치해버린 여인을 너무 세게 안다가 죽이고 만다. 거인이 흘린 눈물이 초콜릿 힐이 됐다’는 신화는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지만, 마음과 눈이 달콤해지는 곳이다. 전망대에 오르는 계단은 밸런타인 데이를 상징하는 214개다. 보홀에서 제일 큰 로복 강엔 크루즈가 있다. 소박한 뷔페 음식을 먹으며, 투박한 라이브 공연을 들으며, 울창한 원시림을 둘러 보며, 사늘한 바람을 맞으며 3㎞ 구간을 오간다.

인천 직항으로 개통…치안은?

보홀 알로나 해변의 석양. 어제의 노을과 오늘의 노을이 다르다. 최문선기자

보홀 가는 길은 그간 멀고 험했다. 한국에서 출발해 마닐라에서 국내선을 갈아타거나 세부에서 페리를 타고 들어가는 데 한나절이 걸렸다. 지난달 인천공항과 보홀을 잇는 필리핀항공의 직항이 개통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보홀에 취항한 첫 국제선이다. 비행 시간은 약 4시간 30분. 인천공항 출발 시간(14일부터)은 새벽 2시45분, 보홀 도착 시간은 아침 6시 15분이다. 귀국편은 보홀에서 오후 5시5분 이륙해 밤11시 인천공항에 내린다. 피로만 감수하면 출발일과 도착일을 알뜰하게 쓸 수 있는 여정이다.

보홀 주민은 관광으로 먹고산다. 필리핀관광청 관계자는 “관광은 우리에게 빵과 버터”라고 했다. 그런 보홀에 개발 광풍이 닥치지 않기를, 해운대 닮은 그저 그런 바다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홀을 여행한 모든 사람이 품고 있을 터. 하지만 보홀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듯하다. 인천~보홀 직항편이 뚫린 것이 그 시작이다. 이르면 내년 연간 수용 인원 200만명의 팡라오 국제공항이 들어선다.

로복 강 크루즈. 물이 맑지 않지만 깨끗하다고 한다. 보홀 명물인 민물 진흙 게 ‘알리망오’가 난다. 최문선 기자

있는 그대로의 보홀을 보고 싶다면 앞으로 몇 년 안이 적기라는 얘기다. 문제는 치안이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 계엄령, 한국인 납치…. 올해 들어 보홀을 비롯한 필리핀 여행객 숫자가 확 줄었다. 6월 말 방문한 보홀은 그러나 평화로웠다. 한국인이 핵과 장사정포의 공포를 전혀 모르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세사르 몬타노 필리핀관광진흥청장은 “보홀에선 테러나 반군 활동이 감지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관광청 관계자는 “계엄령으로 여행 금지 지역이 된 민다나오 지역은 보홀에서 비행기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여서 직접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필리핀항공은 보홀 항공권 가격 인하, 더블 마일리지 적립 프로모션으로 여행객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선택은 개인의 몫. 보홀은 11일 현재 외교부가 ‘여행 유의’를 권고한 지역이다. ‘여행 유의’ ‘여행 자제’ ‘철수 권고’ ‘여행 금지’ 등 여행 경보 4 단계 중 가장 낮은 수위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네팔, 몰디브,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의 북한 국경지역 등과 같은 단계다.

보홀(필리핀)=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알로나 해변에서 딴 성게를 손질하는 사람들. 최문선 기자

산 미구엘. 스페인 통치 시절 맥주 양조 기술을 배워 만든 필리핀 산 맥주다.최문선 기자

수심이 얕은 바다에 장이 서기도 한다. 최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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